생명수호체험수기공모전

<언플랜드>와 함께 하는 제5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공모전 장려상 : 기쁨, 환희, 영광이[언플랜드를 읽고]

관리자 | 2020.10.07 11:50 | 조회 101

기쁨, 환희, 영광이 [‘언플랜드를 읽고]

장춘교 바울라(수원교구 동판교)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의 시간이 세 계절을 지나가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그동안 미사 참례가 거의 불가능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한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남편과 고3 수험생이 있는 나로서는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되어 더 무기력하고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성당에서 수험생 100일 기도 모임을 진행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심스레 성당을 찾았다. 오랜만에 동산 안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두 팔 벌려 반겨주시는 성모님을 보며 순간 울컥했다. 코로나 상황이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보니 기도 모임 신청자가 예년보다 많이 줄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여기며 넓은 성전에서 소수 인원이 진행하는 기도모임에 참석했다. 나를 당신께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리며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날 우연히 집어 든 주보에서 생명 수호 체험수기 공모전 안내를 보았다. 불현듯 우리 막둥이가 떠올랐고 언플랜드라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바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책의 주 내용은 낙태 반대와 생명 수호 운동이었지만 나에게는 주인공 애비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부드럽지만 강한 이끄심이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듯하여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생명은 선물이기에 환대와 존중과 사랑을 받아 마땅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주일학교 봉사를 오래 했던 나는 수녀원 입회를 고민하며 기도 중이었다. 하지만 다섯 남매와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의 다정한 가장이셨던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맏이였던 나는 주위 어른들의 권유와 슬픔을 핑계 삼아 급하게 결혼을 결정하였다. 소개팅으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딸 부자 집에 맏사위라는 부담이 컸음에도 친정아버지의 빈자리를 성실하게 채워주었던 남편의 모습이 고마웠기에 결정이 더 쉬웠다. 우리는 함께 혼인교리를 수강하고 관면혼배 성사를 한 후 부부가 되었다. 마치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의 첫아들 기쁨이를 가졌을 때는 새롭고 신비로운 경험에 우리는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공유했다. 나의 체구가 작은 때문인지 오랜 시간 난산으로 고생하였지만 기쁨이는 무사히 우리 품에 안겨 이름 그대로 기쁨이 되어주었다. 3년 후 나는 둘째 환희를 가지게 되었다. 남편은 우리 둘째보다는 형이 먼저 아이를 낳길 바랐는데.’라며 조금 서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남편은 둘째였고, 형보다 먼저 결혼을 했기에 남편이 형에게 많이 미안해하는 마음이구나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환희의 출산이 다가올 즈음에 대단위의 의료 파업이 있었다. 그동안 다니던 병원의 담당 의사가 파업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소개받은 작고 낯선 병원에서 환희를 낳았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로 지적이고 똑똑한 집단이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데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산모의 입장에서 담당 의사는 자신과 아기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존재이다. 목숨을 맡긴 사람들을 놔두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파업을 하다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당연히 그들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었다. 이후 나는 출산 과정의 문제인지, 산후조리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의 뼈가 다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아팠다. 그저 아이들만 바라보며 묵묵히 삶을 살아갔다. 다음 해에 늦은 결혼을 하신 아주버님도 무사히 첫아들을 얻으셨다. 모든 것들이 폭풍전야처럼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조용히 식탁에 앉아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표현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그려졌다.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애비와 같은 주님의 자녀로서 나도 애비가 있었던 그 경계선 울타리의 중간쯤에 있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나이만 채웠을 뿐, 몸도 마음도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부모였다. 내가 이런 후회의 말을 하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한다. ‘누구는 다 알고 부모가 되는 사람이 있느냐, 그냥 저절로 알게 된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결혼하면서 당연히 주님께서 주시는 대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를 자꾸만 익숙하지 않은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두 살 때 발병한 환희의 중증 아토피성 피부병과 새로 옮긴 직장에 적응하느라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남편의 빈자리로 나는 몸도 마음도 메말라가고 있었다. 더구나 그때 내 안에 셋째 아이를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어 혼란스럽고 무서워서 몸이 떨렸다. 친정엄마에게 적지 않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아이 둘을 간호하고 키우는 것도 이미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임신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기조차 망설여졌다. 당연히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던 남편은 지금 우리의 현실적 상황과 미래를 생각하며 나를 조심스레 설득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를 하나 더 키운다는 것은 나의 건강 상태로도, 경제적 상황으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다 보니 문득 예전에 친정엄마가 자신도 이모도 낙태를 한두 번씩은 하셨다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만 했던 시절에 딸만 넷을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얻은 엄마가 그사이에 낙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당시에는 낙태에 대해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바쁘고 힘든 남편도 귀찮게 하지 말고, 엄마도 괜히 마음 쓰시지 않게 나 혼자 감쪽같이 해결하자. 별거 아니야. 다들 하는 건데 뭐!’ 나는 양심의 눈을 질끈 감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내적 갈등 때문에 차마 대놓고 말을 못 해서일까. 의사 선생님은 내 속도 모르고 아기집이 엄마 자궁에 벌써 자리를 잘 잡고 있다고 축하의 말을 전하셨다. 그날 내가 초음파에서 본 것은 작고 말랑해 보이는 작은 동그라미였다. 순간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현실의 고통에 눈과 귀가 먹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곳에 누워 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에게 그 작고 예쁜 동그라미는 이미 기쁨이나 환희와 같은 나의 아기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와 한 몸으로 지금의 내 생각을 다 알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그 죄의 무게로 주님 앞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나는 산부인과를 나오면서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이 아이를 지우게 되면 내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라고. 나의 눈물겨운 결심에 남편은 이해해주었고 다정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알겠노라고. 나의 뜻에 따르겠다고, 가족들을 위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부담감을 갖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의 뜻을 받아들여 준 남편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서는 곳이 바뀌면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고.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에 밝은 빛이 비치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남편과 전화를 끊고 마음속으로 주님께 외쳤다. “저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힘든 현실 앞에 서서 당신만 믿고 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알아서 지켜주시고 키워주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주님!”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나쁜 선택으로 틀어질 수 있음을

 

셋째 영광이의 출산이 가까웠을 때 환희의 증세는 더 나빠졌다. 할 수 없이 출산 때까지 약 100일간 시골에서 한의원 간호사로 있던 둘째 동생에게 환희를 맡기기로 했다. 나는 보내는 순간부터 가슴을 쥐어짜며 매일 울었다. 만삭의 배 속에 있던 영광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아픈 환희를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는 하느님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당신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면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정말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일까?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환희를 데려간 동생은 자신이 믿는 이상한 교리 지식을 내세워 환희를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더 내려놓을 것도 없을 만큼 지쳤고, 오로지 주님만이 이 지옥 같은 혼란에서 아이들과 나를 구해주실 수 있다 믿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마침내 영광이를 무사히 출산하고 바로 환희에게 달려갔다. 환희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하느님의 자녀인 환희에게는 나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될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주님의 자녀인 환희를 더 그곳에 둘 수 없었기에 엄마라는 초인적인 힘으로 싸워 데리고 왔다. 나는 매일 영광이를 업고 환희의 아토피를 치료하느라 산후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온전히 주님께 의지한 상태였기에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힘든 산을 한고비 넘자 주님께서는 남편의 새로운 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셨다. 그때부터 집안 어른들은 우리 영광이를 복덩이라고 부르셨다.

 

나는 그저 하느님이 나의 다음 행보를 보여주시기를 원했다.’

 

우리 집의 세 아이는 모두 아토피로 고통을 받았다. 내가 아이들의 병과 매일 씨름하는 동안 남편도 새로운 직업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서로가 다른 곳에 집중하며 생활하다 보니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그것이 쌓여서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졌고,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어린 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참으로 큰 죄를 짓는 생각이었다. 내가 감히 무엇이라고 이 아이들의 생명을 내 맘대로 거둔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말로 그때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병들어 있었다. 그 긴 곡절의 터널을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 힘만으로는 빠져나오기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주님께서는 꼭 필요할 때 도와줄 은인을 보내주셨고, 숨 쉴 수 있는 구멍 하나는 항상 남겨주시며 당신이 내 곁에서 지켜주시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셨다.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통해 나의 신앙의 뿌리를 단단히 세우셨다. 우리에게 아이 셋을 보내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다음 행보가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그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 희망이 조금 있네!’

 

책이 마지막 장을 향해가자 아이들이 다가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냐고 궁금해하기에 태아와 생명 수호 운동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거의 완치되어 어엿한 대학생이 된 기쁨이와 환희, 그리고 나의 분신 같은 고3 영광이에게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 문제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좋은 기회라 여기고 혼전 순결과 낙태 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태중에서부터 가톨릭의 자녀로 자랐으니 다른 이들보다는 순결에 대해 보수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생각은 훨씬 더 가볍고 개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 또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넘지 말아야 할 울타리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단단히 생명의 존엄함에 대해 새겨두고 싶었다. 다행히 대화의 내용이 깊어질수록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지식과 경험을 이야기하며 진지하게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쁨이가 중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갔던 꽃동네에서 본 낙태 영상을 떠올리며 동생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해 주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변하지 말아야 가치도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정당화되어 변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희망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 애비는 낙태 수술을 권장하는데 한 번도 관심이 없었으나 그곳에 몸담고 있었다. 가짜 지식을 참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본다. 현란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 수면 아래에 있는 참 진리를 보려 하지 않고 수면 위에 올라온 빙산의 일각만으로 자신들만이 진리라 외치는 거짓 예언자들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여 지혜롭게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 자신이 얄팍하게 알고 있는 딱 그만큼 만의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특히나 생명 수호 운동과 같은 참 진리에 관해서는 많은 홍보와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 기쁨이가 꽃동네에서 잠시 배웠던 경험을 기억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참 진리를 위해 애쓰는 애비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한 틀림없이 희망이 있음을 믿는다.

 

80세를 바라보는 친정엄마와 이모는 몇 년 전부터 낙태된 아기들을 위한 기도를 하신다. 자신들이 너무 무지해서 죄를 지으셨다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어느 날 이모가 나에게 물어보셨다. “너는 낙태한 적 있니?”, “아니요, 이모.”

정말 다행이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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