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호체험수기공모전

<언플랜드>와 함께 하는 제5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공모전 장려상 : 언플랜드를 읽고

관리자 | 2020.10.07 11:48 | 조회 59

언플랜드’(Unplanned)를 읽고...

 

장경민 시메온 신부(서울교구 병원사목위원회 삼성서울병원 원목실)

 

언플랜드’(Unplanned)라는 책을 어느 날 선물 받았다. 관심이 있어 직접 산 책은 보통 금방 읽기 시작하지만, “unplanned”하게 책이 생기면 보통 그 책을 읽게끔 나를 등 떠밀어줄 외부의 계기가 생길 때까지 그냥 책장 한 켠에 던져두곤 한다. 더군다나 표지만 봐서는 이 책이 어떤 장르이고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톨릭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이 책에 대한 광고를 보고서야 , 이 책이 생명수호와 관련된 책이구나~’ 하곤 책을 펼쳐보게 되었고, 거기서 구요비 주교님의 추천의 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교님께서 이 책을 영화화한 것을 보시곤 감동을 받으셔서, 영화 수입을 위해 생명위원회와 백방으로 노력하셨다는 내용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관심과 빨리 읽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고 나서 5일 만에 책을 다 읽었다(내게 있어선 비정상적으로 빨리 읽은 축에 드는 경우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을 한 마디로 정리하긴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선, 이 책 안에 인간 생명 수호라는 주제 외에도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생각해볼만한 묵직한 주제들이 여럿 발견되며 오랜만에 진지한 고민들을 하게끔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이유로는, ‘사회고발처럼 시작하며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책의 이야기가 나중에는 어느새 영성서적처럼 변모되어 내 신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건 좀 무리일 듯 싶지만, 그래도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될지도 모를 다른 분들을 위해 한 번 표현을 해 보자면, 내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보송한 재미와 끈적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고 할까? 주교님께서 이 내용을 영화로 보시고 왜 감동을 받았다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책의 초반부터 중반부까지, 저자인 애비 존슨이 여성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가족계획연맹에서 낙태와 관련된 일을 해가는 장면들에선, 낙태 찬성론자들과 낙태 반대론자들의 첨예한 대치를 보여준다. ‘애비는 낙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낙태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적극적인 낙태를 주장하는 낙태 찬성론자들의 진영에 서 있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반대 진영(낙태 반대론자들)에 서 있는 자신의 어머니, 새 남편, 교회, 그리고 자기 양심과 계속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여기서 들려주는 논쟁들은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계속되고 있는 논쟁들이기도 하다.

 

내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본당에 있었을 때, 청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씩 교회의 생명윤리에 대해 그들이 물어올 때가 있었다. 그때 그 청년들의 질문을 조금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자면 혼전 동거, 혼전 관계, 낙태에 관한 것이었다. 왜 안 되느냐고 순진하게 묻는다. 나는 난처하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답을 해주었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순진한 눈빛으로, 그렇지만 매우 날카로운 현실적인 관점에서 다시 질문들을 해왔다.

강간처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떡해요 신부님? 그래도 아기를 낳아야 하나요? 그렇다면 여자는 무슨 죄인가요?”

동거 중인 젊은 미혼 커플이 도저히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을 때 갑자기 아기가 생겼다면요? 그대로 아기를 낳는다면 그들 모두 가난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불행한 삶이 될 텐데 아기는 무슨 죄인가요?”

그 청년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속 시원한 답을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이 질문들에, 그래도 나름 본당 보좌신부라고 이런저런 답을 제시해 봤지만, 남는 것은 나 스스로도 불만족스럽고 껄끄럽다는 느낌의 대답들이었다. 그나마 그들이 신자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그 논쟁 시간을 공격적으로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에 속으로 고마워하며 자리를 마쳤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태아들에 대한 생명수호 문제, 즉 낙태 문제에 있어선 언제나 교회라는 울타리 뒤에 한 발자국 물러나 숨어 있다. ‘어려운 문제는 교회가 알아서 해주겠지. 특히 생명위원회가 잘 대답해줄 거야~’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내가 그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이고, 우리 자신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에 특별히 낙태 문제, 생명수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올바른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여전히 등을 콕콕 찔러온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이후 세월이 흐르며 여러 곳으로 소임지를 옮겨 다니게 되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 낙태와 관련된 문제를 질문받거나 직접적으로 접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낙태 문제는 아니었지만, 같은 죽음의 문화안에 있는 다른 사건을 현재 소임지인 병원 원목실에 발령받아 왔을 때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갓 원목신부로서 활동을 시작한 몇 년 전, 출근을 하면 처음 방문하는 곳이 중환자실이었다. 30분 동안 중환자실을 돌며 교우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나 경과를 듣고 함께 기도를 하는 일이었다. 소임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어느 노부부가 원목실에 찾아왔다. 당신들의 아들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의식이 없고 위독하니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에, 결혼한 지도 몇 년 안 된 소중한 아들이 갑자기 쓰러졌으니 그 노부부는 얼마나 황망했을까? 계속해서 눈물을 훔치고 계신 자매님과 그런 부인에게 그만 울라며 다그치는 형제님을 뵈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당연히 기도해드리러 가겠노라고 답을 드렸다. 그날 이후 한 달 동안, 출근 후 중환자실에 올라갈 때면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그 노부부가 되었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그 아드님에게 기도하러 다닌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늘 희망적인 모습으로 중환자실 앞에 있던 노부부의 분위기가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씩 중환자실 옆 비상구 계단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도 보곤 하였다. 하루는 중환자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비상구 계단에서 또 말다툼을 하고 있는 그 노부부와 마주치게 되어 왜들 그러시는지, 근래 무슨 일이 있으신지 여쭈었다. 자매님은 울면서 말했다.

며칠 전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들 심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이대로는 얼마 더 못 간다고. 그래서 심장 공여자 나타날 때까지 잘 버텨보다가 심장 이식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회생할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실지 가족들이 결정을 해야 한다고..”

자매님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계시던 형제님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니 신부님! 신부님도 한 번 생각해 보십쇼! 아들놈이 지금까지 한 달이 지나도록 눈알 하나 못 움직이는데, 그걸 살려내겠다고 심장은 언제까지 기다릴 거며, 또 심장 이식받는다고 해도 과연 살아날 가망이 있겠소? 살아난다고 해도 저게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겠소? 지금처럼 우리나 며느리나 맨날 병원 왔다갔다 하며 병수발 해야 할 텐데.. 그 돈은 또 어찌 다 감당하구! ... 어이구~!!”

 

형제님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안타까움보다는 당황스러움과 답답한 불편함이 가슴과 머리를 옥죄었다. 아마도 화가 올라왔던 것 같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본당에서 청년들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머리보다 몸이 더 먼저 기억해내며 반응했다. 몸이 움츠려 들었다.

강간처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떡해요 신부님? 그래도 아기를 낳아야 하나요? 그렇다면 여자는 무슨 죄인가요?”

동거 중인 젊은 미혼 커플이 도저히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을 때 갑자기 아기가 생겼다면요? 그대로 아기를 낳는다면 그들 모두 가난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불행한 삶이 될 텐데 아기는 무슨 죄인가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치 않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들인데, 그 삶과 죽음의 결정을 낳아준 부모가 해줘야 하는 잔인한 상황이었다. 설령 아들이 심장 이식을 받아 생명은 건진다 해도, 노년에 체력도 경제력도 얼마 없는 그 노부부는 중환자 아들을 돌보느라 고통에 시달리며 불행한 여생을 살게 될 상황이었다. 아들은 무슨 죄며 노부부는 무슨 죄인가?

이런 생각들로 소위 멘붕이 왔다. 저 노부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를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을 때, 자매님이 눈물을 흘리며 크게 소리쳤다.

난 끝까지 갈 거야! 며늘애도 심장 공여받자고 했어! 난 쟤 살릴 거야! 신부님 계속 기도해주실 거죠!!”

자매님의 큰 소리에 나는 놀란 눈으로 ! .... 그럼요, 당연히 같이 기도드려야죠!”라고 나도 모르게 대답을 했고, 형제님은 으이구~!!”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 후로 계속해서 그 아드님을 찾아뵈며 기도를 드렸다. 자매님은 불편한 다리로 매일 같이 병원에 나와 아들 곁을 지키며 함께 기도하고, 면회 후에는 내려와서 미사에 참석하고 돌아가셨다. 형제님은 계속해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한 달 가까이 흘렀고, 그 아드님은 기적적으로 심장 공여를 받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다음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가 의식을 되찾는 거였고, 우리는 그렇게 기도를 했다.

어느 날 오전, 그 자매님의 며느님이 원목실로 찾아왔다. 성수를 찍으며 원목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신부님, 어제 저녁에 마태오(가명)가 눈을 움직였어요~!!”

? 정말요??” 나와 원목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반기며 박수를 쳤다. 그 자매님은 계속 말했다. “의사선생님들은 의미 없는 움직임이라고 했는데, 저랑 어머님은 그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이따 어머님 오실 건데 신부님하고 같이 들어가서 보여드리고 싶으시대요~”

오전 면회시간이 되어 자매님을 만나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자매님은 아들의 손을 잡고선, “마태오야~ 신부님 오셨어~ 옆에 계시니까 어제처럼 또 눈 움직여봐~ 너 나았다고 신부님께 보여드려야지~!” 그러자 정말 천장으로 고정돼 있던 눈동자가 좌우로 미세하게 반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적 없던 터라 나 역시 흥분되고 놀라서 아드님 귀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마태오 형제님~ 저 장신부에요. 그동안 어머님하고 계속 기도하러 왔었는데 기억나시나요?” 짤막한 움직임이긴 해도 아드님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왈칵 눈물이 났다. 기쁨에 찬 자매님은 아드님의 팔을 주물러주며 이제 눈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천천히 말도 하고 팔도 움직이고 하자 마태오야~”

 

두 주쯤 더 흘렀을 때, 아드님은 이제 간신히 고개까지 움직이며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입에 삽관이 되어 있어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살짝 움직이며 떨리는 눈동자로도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교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며, 초짜 원목자에게 주어지기엔 너무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저 자매님이 남편과 말다툼 때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면 지금쯤 어떤 심정으로 지내고 계실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때 형제님의 그 모진 말들에도 움츠려들지 않고 아들을 살리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던 자매님의 모습도 다시 생각나 감동스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강력하다는 어머니의 사랑의 힘기도의 힘의 조합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료적 조치를 위해 경제적인 여건을 따져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명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와 단순히 수평적으로 놓고 저울질하는 것은 죽음의 문화에 깊이 관여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죽음의 공여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삶이 시작되는 태아로부터 삶의 종주를 다한 임종 직전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다가 그분께로 다시 돌아간다. 생명은 돈이나 세상 다른 무엇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하느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Unplanned”를 읽고 나서 다시금 마음에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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