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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생명수기 체험수기 장려상 '정체 모를 힘-삼형제와 오늘을 살아가며'

관리자 | 2016.08.10 13:30 | 조회 305

제4회 생명수기 체험수기 장려상 '정체 모를 힘-삼형제와 오늘을 살아가며'

 

평화신문 [1075호][2010.07.04]

 

정용숙(이레네, 서울 삼성산본당)

 

저는 남(男)하고만 삽니다.

 저는 남자들하고만 삽니다. 그것도 네 명씩이나 말이지요.

 남편하고 아들 셋하고 말입니다.

 남들은 저를 아주 불우한 이웃으로 여기지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해요.

 아들 둘만 키워도 수명이 단축된다는데 어떻게 셋을 키우느냐고…. 어떤 이들은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깡패가 되고, 셋 키우는 엄마는 성인된다면서 위로하기도 해요. 또 어떤 어르신은 달랑 하나만 낳아 기르는 당신 며느리를 빗대며 장하다고 잘했다 부럽다고도 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큰아이는 배낭 지고 막내는 업고 둘째는 손잡고 길을 나서면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걸어오곤 했어요. 엄마는 빼빼해서 힘도 하나도 없게 생겼는데 저 아들들을 어찌 키우느냐고. 재주도 없다고, 아들만 셋이냐고.

 정말 뭣 때문에 아이를 셋씩이나 낳아 이 고생일까 싶을 때는 괜스레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그것도 사내 녀석만 셋이라니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멎는 것 같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저는 제게 아이가 셋이나 생길 줄은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첫째 때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두 힘든 기억밖에 없었어요. 결혼생활에 적응하랴 입덧하랴, 모든 게 준비 없이 처음 겪는 일들이다 보니 더 그랬겠죠.

 첫째를 낳으면서 여자가 아이를 낳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허리를 틀어 낳느라 아프다고 소리치는 제게 간호사는 하늘이 노래져야 아이가 쑥 나온다는 거예요. 저는 하늘이 노래지는 게 아니라 아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죠.

 그 후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을 하며 쓸모가 없어진 유아용품은 바로바로 처분해 버렸지요. 또다시 그런 죽음 같은 고통은 겪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듯 말이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그런 결심도 시간에 묻혀버리고 또다시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어요. 산통은 잠시, 두 번째도 순하고 예쁜 아기가 제게 찾아왔어요. 첫 번째와는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말이죠.

 

 저는 1996년에 세례를 받게 되었어요.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면 엄마들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곤 하지요. 같은 동네에서 오가던 첫째 친구 엄마가 저를 입교도 시키고 대모까지 되어주었지요.

 바로 그 때 셋째가 생긴 거예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가 덜컹…. 남편과 저는 무척 놀라고 당황스러웠어요. 그러다가 예정일을 따져보니 셋째가 착상된 시기가 바로 세례를 받던 때인 거예요. 순간 출산율 저하를 염려하며 아이를 많이 낳아 길러야 한다던 신부님 말씀이 떠오르고, 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말도 스쳐갔지요.

 하지만 막상 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었어요. 사실 그때 저는 임신 사실이 창피스럽기까지 했거든요. 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반응에 더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임신 사실을 축하해주기는커녕 아예 대놓고 성감별해서 딸이 아니면 아이를 지우라고도 하고,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뭐하러 또 고생이냐고도 하고, 초음파 검사를 받는데도 대놓고 뭐가 부족해서 또 아이를 낳으려고 하느냐며 은근슬쩍 아들이란 걸 흘리는 거예요. 누구도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주위에서 그러면 그럴수록 제 안에서는 그런 것들과 맞서는 알지 못할 힘이 생겨났어요. 엄연히 뱃속의 이 아이도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살아 있는데… 뱃속에서도 다 듣고 있는데….

 정체모를 그 힘으로 더욱 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다니면서 또 아들이어도 상관없다고 말하게 되었지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어디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요' 하면서요.

 지금도 가끔 막내에게는 딸이 아니어서 서운했던 마음과 임신 자체를 창피스럽게 여겼던 마음이 미안해서 이렇게 말하곤 해요. "너는 하느님이 점지해준 아들이야!"하고 말이죠.

 

 하느님은 저를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셨어요.

 그분은 제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셨고

 제게 사랑이 많이 필요했다는 것도 말이죠.

 세 아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제게 아이들이 필요했기에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세 아이들을 통해 주시려고 그러셨던 거란 걸.

 하느님의 사랑이 순수하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아이들을 낳고 길러오면서 알 수 있었어요.

 

 한 녀석씩 사춘기를 통과해내면서 빚어내는

 변화무쌍하고 숨가쁜 일상은 또 어떤가요.

 첫째는 사춘기 후기, 둘째는 사춘기 절정, 막내는 사춘기 초기!

 저희 집은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지요.

 그래서 저도 혹독하게 중년기를 맞고 있어요.

 

 한겨울을 이겨내고 물오른 나무들이 틔워내는 새순들도

 바람과 빛과 물이 필요하듯

 생명은 거져 잉태되고 거져 자라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뿜어내는 생명력은

 자기만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몸부림이고

 실컷 흔들리면서도 그 뿌리는 튼실히 내릴 거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삽니다.

 하루에도 골백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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