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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생명수기 체험수기 우수상 '생명에 관한 이야기'(하)

관리자 | 2016.08.10 13:30 | 조회 240

제4회 생명수기 체험수기 우수상 '생명에 관한 이야기'(하) [1074호][2010.06.27]

 

김현희(아녜스, 미국 뉴저지 성 백삼위한인본당)

 

 

 

희망이 꺼져버리다

 

2년 전, '어머니의 날'(미국 5월 둘째 일요일)에 남편은 새벽 두 시가 가깝도록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마음에 신용카드 고지서들을 열어본 나는 남편이 도박을 다시 하고 있는 기록들을 발견했습니다. 카드들은 이미 한도가 가득 차 있었고, 남편은 그날도 집에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카드 대부분이 한도가 남아 있지 않았고, 남편은 그해 직장을 두 번이나 옮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급한 마음처럼 일자리는 쉬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세탁소에 일자리를 얻어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을 두고 일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들이닥쳤습니다. 쏟아지는 고지서들과 집세는 연체되고 내가 모르던 사이에 사람들에게 진 빚들이 드러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도박으로 남편에 대한 신뢰가 견고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 신뢰는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앉아 그날치 눈물을 다 쏟고 아이들에게 돌아오곤 했지만 내 마음 속 희망의 불이 험상궂은 입김에 '훅…'하고 꺼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와 열살이 된 아들 때문에라도 나는 다시 일어나야 했지만,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었습니다. 집세가 좀 더 싼 집을 찾아 이사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세탁소 말고 오래 전에 일하던 여행사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절망의 늪으로 푹푹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절망과 포기의 쉽고 달콤한 유혹으로 나를 이끄는 괴물에게 그냥 나를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 매일매일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함께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서로를 더 아프게 할퀴고 상처내면서 서로 지쳐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꺼내놓고 엄마 아빠가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토로했더니, 쿠션에 얼굴을 박고 울기만 하던 딸아이가 엄마 아빠 앞으로 편지 한 통을 써놓았습니다. 딸아이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Your family is the only people who will support you throughout your life, even in the most difficult situations. Remember, WE ARE FAMILY. Don't ever forget or doubt that. Peace." (가족은 당신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신 편이 돼줄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절대로 잊지 말고 의심하지도 마세요. 평화)

 

 그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아보려고 용기를 내어보았습니다.

 남편이 했던 무수한 거짓말과 어려웠던 시간의 기억들이 밤마다 재생화면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향한 나의 분노와 증오는 극에 달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비웃듯이 집에 늦게 들어오곤 하던 어느 밤, 내 생각은 자살이라는 미끼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긴 스카프로 목을 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온몸의 무게에 죽음이 바로 앞에 온 것 같아 두려워 목을 매었던 스카프를 풀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정작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서, 나직하고 선한 음성으로 저를 향해 누군가 "그러지마…그러지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잘해보자는 다짐을 비웃듯이, 두 대의 차는 차례차례 은행에서 끌어가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지나갈 용기 대신 비관적인 생각이 나를 압도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얻었던 것들을 잃는 것은 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어렵게 미국에서 얻었던 평화로운 날들은 분노와 증오로 뒤엉켜 도저히 풀 수가 없는 지경으로 엉망이 된 채 두 번째 겨울의 연말, 새벽이 가까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전화기로 작별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더는 이 악몽같은 불면의 밤들과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담고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하실로 내려가 입고 있던 가운의 허리끈에 목을 걸면서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진실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남편에 대한 미움과 복수로 스스로를 자살이라는 올가미에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둘러 돌아온 남편 덕분에 저는 씻을 수 없는 죄를 모면했습니다.

 

 그동안 소중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을 잃고 나니 이상하게도 맑은 가벼움이 느껴졌습니다. 가득 찬 냉장고 문을 열고도 먹을 것이 없다고 푸념했지만, 텅 빈 냉장고에서도 양식이 될만한 게 나와 한끼의 거룩한 식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내 욕심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 결국에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만들어 나를 어두운 죽음의 언저리까지 끌고 갔었던 것입니다.

 

다시 봄

 

 얼마 전 뉴욕은 강풍이 불어서 동네마다 거목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졌습니다. 그때 우리집 뒷마당의 늙은 체리나무는 밑둥치가 꺽여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봄이면 뒷마당에서 흰꽃을 피워내던 나무였는데, 뒷마당에 그늘을 만들어 줄 그 나무가 없어져서 얼마나 허전한지 모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 앞 길가에 그 늙은 체리나무를 잘라서 켜켜이 쌓아놓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마다 봉긋봉긋 붉게 꽃망울들이 맺혀 있습니다. 봄날을 기다리며 꽃망울을 품고 졸졸졸 수액을 빨아올리던 나뭇가지는 꽃을 틔울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중의 가지 몇 개를 뚝뚝 꺾어서 화병에 꽃아 두었더니 어제 식탁 위에서 흰꽃이 희망처럼 피었습니다.

 도박과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우리 부부는 천주교에서 주관하는 한 가정상담소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 말에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절망의 벼랑 위에 있을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마치 그분이 보내준 천사들 처럼 우리를 그 시간에서 건너가도록 징검돌을 놓아주곤 했습니다.

 

 조금 맑은 머리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을 보낸 분은 어리석은 내 곁에서 늘 서성이던 '그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마음 저 안쪽에서 나쁜 생각으로 물드는 제 마음을 향해 "그러지마, 그러지마….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고 조용하고 따듯한 말을 건네던 당신이 제 마음 속 '선한 양심'이라는 자리에 늘 계셨다는 걸 알겠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유용하게 쓰이는 걸로 진심어린 사과를 '그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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