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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생명수호 생명사랑' 체험수기 우수상 -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하)

관리자 | 2016.08.10 13:26 | 조회 275
제2회 '생명수호 생명사랑' 체험수기 우수상 -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하) " "

둘째아이가 두 돌이 지날 무렵 난 셋째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첫째아이와 둘째의 유대감을 보면서 또 다른 모습의 생명의 신비가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결혼했으니 아이 낳는 게 어떤 것인지 한명 정도만 낳아보면 되고 아이들 키우는 돈을 저축해 잘 먹고 잘 쓰면 된다는 지론을 시어머니는 품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덩달아 나보다 나이 어린 시누이 반대가 워낙 컸던지라 이런 내 생각은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간직한 채 태중의 아이가 5개월이 되어서야 남편에게 알렸다. 둘째아이가 첫돌이 지날 무렵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있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집이 있는 강원도로 내려왔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임신사실을 늦게 알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셋째아이 임신 소식에 좋아한 남편은 내 불안한 속도 모른 채 시댁에 이 사실을 알렸고, 당장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불호령같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별별 말들을 시시각각 쏟아내며 나를 옥죄었다. 태교는 못할망정 뱃속의 아이가 다 듣고 있는데 나는 전화가 올 때마다 건성으로 들으며 차라리 귀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는 이미 임신 5개월 중반에 들어선 나에게 낙태할 것을 강요하셨다. 이유인즉슨 또 딸이면 딸만 셋이라는 것과 아이 셋에게 드는 교육비와 여러 부속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남편이 너무 고생을 한다는 것이었다. 난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통 시부모들은 며느리가 아이를 가지면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한다던데 이미 뱃속에서 발길질하며 잘 노는 아이를 낙태하라니…. 옛말에 태어나는 아이는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같은 천주교 교리를 알고 있는 신자로서 어찌 이런 말들이 오고가야 되는 것에 대한 상실감으로 불과 며칠 만에 내 얼굴은 말할 수 없는 깊은 그늘로 피폐해져 있었다. 난 이 불을 끄기 위해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
 "어머니, 병원에 가려는데 돈이 없어서 못가겠어요."
 "그래? 결심했냐? 얼마 하는데 내가 낼 보내주마."
 "글쎄 얼만지 모르지만 한 30만 원이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맘에 없는 거짓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은행 문 열자마자 30만 원 보냈으니 병원에 갔다 와서 저녁에 전화하라고 하신다.
 우리 집에서 병원을 가려면 40분을 운전해서 춘천까지 갔다 와야되는데도 거기에 따른 어떤 위로의 말도 없이 그저 뱃속에 이상한 거라도 담고 있는 양 취급하는 말투가 무척 마음 아팠다.
 다음날 난 은행에서 그 돈을 찾아 큰아이와 둘째아이, 그리고 남편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두 아이 키우며 임신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드냐며 종종 갈비집에 데려가 고기를 사주던 친구네 가족을 불러내어 동네에서 제일 큰 갈비집에 가서 실컷 먹었다. 그동안 뱃속에서 어른들의 횡포에 마음 아팠을 우리 아이를 위해 더욱더 맛있게 먹었다.
 저녁 늦게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돈이 더 든대요. 한 150만 원 드나 봐요. 그리고 너무 개월 수가 많이 되었다네요. 그리고 제가 위험해질 수 있대요. 그래서 그냥 왔어요."
 이 말에 낙태에 대한 희망을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체념하셨다. 난 마음속으로 간직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꼭 알려 줄 것이라고.
 그리고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기쁨에 있는데 괜히 집안의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만 간직했고, 아직까지 남편은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이 일이 있고난 후부터 난 매일 성당에 가서 그저 앉아 잠깐씩 기도하고 오곤 했다. 
 "모든 것 하느님 뜻이오니 처음부터 끝까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둘째아이의 경험으로 또 병원에서 양수검사 받기를 종용할까봐 임신 7개월부터 출산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았다. 이번에는 단 한시도 생명을 부정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잘 출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세 아이의 엄마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 아이만을 기를 때 마음과 둘 셋을 기르는 마음은 확연히 다르다. 뭐라 할까? 내 경우에는 이웃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고, 아프고 소외받은 이들을 진정으로 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큰아이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나에게 한적 있다.
 "내가 동생들 없이 혼자 자랐다면 나만 아는 굉장히 이기적인 아이로 성장했을텐데, 어린 동생들 때문에 집이 좁아 불편하고 엄마가 힘들지만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인 동생들 주심에 감사해요."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또 엄마가 동생을 낳는다고 해서 창피한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했었는데 만약에 또 넷째 동생을 낳는다면 집을 나갈 거라는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런데 지금이라도 동생 한 명만 더 낳아주면 안될까?"라며 생전 해보지 않는 애교를 다 부린다.
 엄마인 나보다 더 철이 든 큰아이는 두 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고 내 눈에 쌍꺼풀을 만들어준 마이더스 손을 가진 둘째는 사막 한가운데에 내놔도 어떻게 해서든 오아시스를 찾아낼 줄 아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으며, 막내라 모든 것에 조금은 어설퍼보이는 셋째도 영화를 무척 좋아하며 자기 나름대로 영화에의 꿈을 키우며 잘 자라고 있다. 물론 한 아이 키우는 것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 
 며칠 전 막내친구 집에서 몇 명의 반 친구 엄마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된 자리에서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다.
 "난 아들만 둘인데 하나 더 낳고 싶어도 또 아들일까봐 못 낳겠어."
 "맞아 맞아 아들 셋은 좀…. 얼마나 기르기 힘든데."
 "왜 딸 낳고 싶어서? 요즘 3개월만 되면 성별 알 수 있다는데 병원 알아봐 줄까?"
 이 젊은 엄마들이 낙태에 대해 아무렇지않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한가지 소망해본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꼭 생명의 소중함과 부모교육 과목을 필수로 배울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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