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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생명수호 생명사랑' 체험수기 대상 - 엄마가 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다(중)

관리자 | 2016.08.10 13:23 | 조회 253

제2회 '생명수호 생명사랑' 체험수기 대상 -

 

엄마가 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다(중) " "


이정은(에메레타, 서울대교구 해방촌본당)


며칠 후에 남자친구와 나 그리고 엄마 이렇게 우리 셋은 만났다. 엄마가 계속 말씀하시고 남자친구는 고개만 푹 숙인 채 대답만 했다. 다른 여자친구를 정리하고 나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 부모님은 아시냐 등등….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생각을 하라고 남자친구에게 일주일간 시간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일주일 후 남자친구는 그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 없다,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을 해왔다. 엄마는 그쪽 부모님을 만나봐야겠다며 아빠에게 그 집에 같이 가자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빠는 이미 마음이 없는데 가서 무슨 말을 하겠냐고, 무엇하러 가냐고 안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엄마와 단 둘이 함께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가지고 남자친구 집에 가게 되었다. 남자친구 부모님 또한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너희 둘이 벌인 일이니 너희 둘 손에서 해결을 봤었어야지 왜 어른들이 알게끔 일을 벌여놨냐, 우리 아들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기라는 등등 반대하시는 눈치가 역력했다. 두 차례 더 만나 뵙고 엄마의 등살에 못 이겨 혼자서 3개월 정도 꾸준히 남자친구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고 집에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는 집에 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이를 혼자 낳아서 열심히 예쁘게 키우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우리 부모님 마음이 오죽했을까. 사람의 가슴이 이렇게 찢어질 듯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계속 남자친구가 찾아와 아이를 지워라, 아니면 아이를 낳아서 나를 달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남자친구의 다른 여자친구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기 움직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난 아기가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아기를 꼭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두세 번의 만남 후 다시는 남자친구를 볼 수가 없었다. 아기를 생각해서 좋은 생각만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주위의 반대는 점점 심해졌다. 우리 부모님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6개월이 되었을 때 엄마가 아기를 지우고 그냥 새롭게 새출발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실 때 난 너무나 화가 났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낳아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처음부터 낳지 말라고 그러지 6개월이나 됐는데 이제 와서 지우라는 게 말이 되냐며 엄마에게 큰소리를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가슴이 아팠던 사람은 바로 우리 부모님이셨을텐데 말이다. 실망감과 불안감의 교차 속에서 난 울고 또 울었다. 아이에게 정말로 많이 미안했다. 태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기를 불안감 속에서 키워나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난 안된다고 단호히 거절을 했고,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하루는 기도회를 항상 같이 다니는 언니와 함께 동성중ㆍ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청년기도회에 가게 되었다. 일어서서 다 함께 찬양을 하는 순간 아기의 발길질을 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과 설렘을 느꼈다. 아기도 지금 나와 함께 찬양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같이 찬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아기와 난 한 몸이라는 것을…. 
 기회가 생겨서 난 그 언니와 함께 메주고리예라는 곳에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아기에게 안 좋은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욕심으로 2주 정도 성지순례를 가기로 결심했다. 한국을 떠나 성지에 도착 후 호텔 침대에 누웠는데 아기 발길질이 1분여 정도 계속 되었다. 아기도 많이 좋았나 보다. 나 만큼이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하지 않고 조용하고 고요함 속에서 내 심신을 단련하고 좋은 생각만 하고 나만의 많은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도 나는 아무 탈 없이 성지순례를 마치고 뱃속 아기와 함께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아기의 태동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이 작은 생명이, 그 작은 심장이 뛴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기가 얼마나 많이 자랐나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가는 시간이 나에게 가장 설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달이 차면 찰수록 더 불러오는 내 배는 신기했다. 이 뱃속에서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아기 옷들과 아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장만할 때에는 공주님일까 왕자님일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아기를 만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하루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는 반면 그 동안 안 좋은 일들로 아기에게 상처를 주고 했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도 자리 잡았다. 
 3월 9일 새벽 4시경 하혈을 시작하더니 점점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예정일이 남아 있던 터라 나는 불안하였다. 설마 아기가 잘못된 것일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아프다고 하니 엄마가 아기가 나올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 아기를 낳기 전에 양수가 터지고, 양수가 터져야만 아이가 나오는 줄 알고 있었다. 긴 진통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배를 감싸고 병원으로 갔다. 아기를 낳기 전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처음엔 15분, 그 다음엔 10분, 그 다음엔 5분….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기도를 하였다. 제발 아기가 아무 탈 없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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