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호 동영상 공모전

제1회 '생명수호 생명사랑' 체험 수기 우수작 - 여성, 생명, 사랑 : 본질의 회복

관리자 | 2016.08.10 13:19 | 조회 1394

여성, 생명, 사랑:본질의 회복



안은경(세레나, 서울 잠원동본당)


새로 태어난 삶: 모성성의 발견

 나는 지금 집에서 12살, 9살 두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 아이를 낳고 1년 반 정도까지는 대학 강사로 일했다. 그 당시 박사과정 준비와 미국 유학 준비, 대학에 시간강의를 나가느라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 도움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아기와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읽고 공부해야 할 책들에 둘러싸여 아기를 아주머니에게 맡긴 채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해야 할 일들에 몰두하고자 애썼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나 자신의 생활에 문득문득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 대학교 때부터 나를 많이 아껴주시던 한 교수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내 일을 한답시고 갓난아기를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사는 내 모습이 안타까우셨던지 "이 세상에 생명을 키우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내 어리석음을 야단치셨다. 그 말씀이 자못 섭섭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왠지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내가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접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다. 그때 남편은 너무 놀라 입을 쉬이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나는 하던 일을 모두 손에서 놓고 집에서 아이를 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3년 만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내 손에는 잠시도 물 마를 날이 없어 살갗이 벗겨지는 주부습진까지 생겼다. 갓난아기와 또 그 위 큰 아이를 보느라 제대로 끼니 챙겨 먹을 새도 없이, 전화 한 통화 제대로 주고받을 여유도 없이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중에도 내 안에 뭔가 뒤처지고 있는 듯한, 그래서 문득문득 왠지 모를 초조감 같은 것이 나를 압도했다. 목욕탕에서 걸레를 빨며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하며 서럽게 혼자 울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21세기에 결혼해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내게 참으로 많은 도전과 어려움들을 가져다주었다. 중매로 만난 남편과의 극한 성격차이로 신혼 초 우리는 단꿈은커녕 많은 시간을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의 혼돈과 아픔의 시간들로 채워가야 했다. 거기에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식구들의 몰이해와 비난, 모욕들은 태어나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라 나는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2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나 온실의 화초처럼 세상 물정 까맣게 모르고 살다가 세상과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그 시간은 내겐 참으로 혹독하면서도 처절한 시간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신념과 가치체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를 이끌어 줄 어떤 큰 절대자에게 의지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인생 여정이라는 힘들고 가파른 산을 손잡아 함께 오르며 동행해줄 아름다운 천사들을 보내주셨다. 그들을 통해 실제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 사랑을 점점 충만히 느껴가기 시작하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토록 고집스럽던 남편 역시 그분의 오묘하신 이끄심으로 입교했고, 아이들도 유아세례를 받았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은 많은 눈물과 간절한 기도 끝에 이뤄진 결실이었다. 돌아보면,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그 시간들이 결국 내겐, 결혼하기 전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래서 나의 전부라 할 수 있었던 일과 공부에 대한 욕심과 성취욕과 같은 모든 허욕들을 비워내고 하느님 안에서 가난한 한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철저히 나만을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또한 받기만 하던 삶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엄마로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내어 주어야만 하는 법을 온몸으로 배워야 했던 치열한 몸부림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거듭나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극한 성격차와 지극히 가부장적이며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끊임없이 억누르며 가슴에 난도질 하듯 온갖 상처를 준 미운 남편을 성경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용서하며 그분 사랑으로 품어 안는 그 시간들은, 말씀과 기도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았으면 결코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었을 인고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나는 진정 행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밝고 환하게 웃으며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집에서 생명을 낳아 키우는 엄마라는 자리는 마치 태양과도 같아, 내가 어둡고 우울하며 불행하게 느끼면 바로 그것이 아이들과 남편에게로 전이되어 집안에 그늘이 생기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린 두 아이에겐 엄마인 내가 전부이고, 맑고 또랑또랑한 두 아이의 눈망울이 엄마인 나만을 믿고 의지하며 지켜보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시련과 아픔 속에서 수없이 넘어져 피 흘리면서도 나는 오뚝이처럼 늘 또다시 일어서야 했다. 
 내게 이토록 강하고도 질긴 생명력과 큰 모성적 사랑이 있었는지 진정 생명을 낳아 키워내는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성의 참된 위대성에 대해 눈뜰 수 있었다. 


한줄기 빛 : 여성 ㆍ 생명 ㆍ 사랑

 나의 전부라 생각했던 일과 공부를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모두 접고,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내어놓는 '희생'과 '헌신'을 머리가 아닌 가슴과 몸으로 배우며, 그렇게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전업주부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10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안타까운 현실은, 내 안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위축감과 사회적 무시 그리고 남편에게서 받은 깊은 모멸감이었음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고백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참담한 개인적 경험이 바로 여성들 전반의 보편적 경험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화만 나면 "밥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며…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는 남편의 말에, 내 인격과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표현하기 힘들 만큼의 깊은 아픔과 상처, '무시'를 느꼈다. 또한 살림하며 살아온 10여 년 세월 동안 지난날 애써 쌓아왔던 학업이나 사회적 능력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이 나를 압도하며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하느님 앞에 참된 나를 찾고 싶은 깊은 열망을 느꼈다. 나 역시 그 분 앞에 소중하고 귀한 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4살, 7살 되는 두 아이를 데리고 그간 포기한 공부를 계속하면서, 잃어버린 나를 찾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늦은 나이에 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어렵게 박사 과정 입학 허가서를 받아내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건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혼자 한국에 남아 생활하던 남편이 많이 지치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다시 모든 것을 접고 돌아왔다. 
 비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접어야 했고, 낯선 타지에서 어린 두 아이와 힘겹게 살며 시댁과 남편 문제로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을 겪어야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내가 아팠던 만큼 더 많은 은총과 사랑으로 채워주셨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셨다. 
 또다시 몇 년이 흐른 지금,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시간들을 통해서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내게 깊은 확신을 주셨다. 즉,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래서 마치 '생명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귀한 하루하루의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하며 밥하고 시장보고 청소하는, 너무 '작고 보잘것 없어' 눈에 띄지 않는 주부로서의 이 모든 일상이 하느님께서 주신 가정이라는 생명체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다시 말해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고귀한 사랑의 소명이라는 것을….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이 지상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오직 한정된 시간뿐이라는 것을 그간 치열했던 삶을 통해 온몸으로 깨달았기에, 지금 내게 주어진 일상의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들을 진정 기쁘게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행하고자 애쓰고 있다. 
 비록 나를 무참히도 아프게 했지만, 하느님 안에서 조금씩 함께 성장해가는 소중한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직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건강과 시간이 허락되어 있음에 오히려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너무 소박해 눈에 띄지 않는 그러한 주부로서의 나의 일상은 어느덧 내겐 기도가 되고 사랑 그 자체가 되어 흐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크고 화려한 것만을 지향하는 지극히 물질주의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 때문에 여성들이 집에서 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은 전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무임금 노동으로 그저 '하찮은 일', '애 낳고 살림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라는 식으로 무시되고 폄하되어 왔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생명을 낳아 키워내는 여성들 자신이나 인류에게 가장 고귀한 창조적 소명인 출산과 양육을 거부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음을 나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사랑의 길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목격되고 있는 여성 폄하적 인식과 평등한 교육의 혜택으로 여성들 안에 자리하게 된 자아성취에 대한 뜨거운 현실적 욕망들, 그러면서 동시에 신앙 안에서 요구되는 자기포기와 비움 및 희생의 요구…. 이렇듯 복잡한 요구들을 지닌 채 살아가는 현대 여성들의 딜레마를 온 몸으로 겪으며 나는 알고 싶었다.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 시대에서 두 생명을 낳아 키우는 엄마와 아내로서, 한 사회 구성원이자 여성으로서, 나아가 하느님 앞에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평등한 교육을 받고 자랐음에도 늘 더 많은 인내와 희생이 엄마인 여성에게 요구되고, 그럼에도 돈과 물질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경력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문화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여성의 일은 이젠 누구도 쉬이 하고 싶지 않은 '하찮은 일'들로 치부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집밖에서 사회적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하고 이러한 자아실현에 장애물이 되는 출산과 양육을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며 내어줘야 하는, 그러면서도 정작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엄마와 아내라는 여성의 자리, 어디까지 희생하고 어디까지 나를 내어줘야 하고 또 어디까지 나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많은 것이 혼돈스럽고 힘겨웠다. 
 이러한 물음과 딜레마를 안고 결국 나는 하느님 앞에 생명을 낳아 키우는 한 여성과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알고 싶은 깊은 갈증에서 서강대 신학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3년간에 걸친 신학적 탐구와 때로 생과 사를 오고가는 치열했던 신앙 체험에서, 생명을 낳아 키워내는 여성들, 나아가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걸어가야 할 진리와 사랑의 길에 대해 희미하나마 이전보다는 더욱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 또한 철저한 인내와 희생ㆍ 헌신을 하고도 무시받고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온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이 땅의 여성들의 삶이 싫어 그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 이 땅 대다수 딸들처럼 나 또한 늘 외쳤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그러나 나의 엄마처럼 나 또한 두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 나의 전부라 했던 것들을 접을 수 있었고, 희생과 헌신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곧 인간이 걸어가야 할 진정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길임을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를 위해 포기하고 접을 수 있는 마음이며, 기꺼이 나를 내어놓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날 그토록 숨가쁘게 추구하고 있는 자아실현의 참된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경력을 쌓으려 더 높이 오르며 성취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워 상대방과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시선을 맞추고 먼저 배려하는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힘들었던 시간들 끝에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촛불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 우리 집

 남편과 나. 우리 둘은 배울 만큼 배우고 공부도 할 만큼 하고 꽤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신앙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몸은 어른이었지만 마음은 자기밖에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그래서 늘 싸우고 할퀴고 짓밟고 피 흘리고…. 그렇게 우리 가정은 잡초도 무성하고 꽃들도 시들어가고, 마치 정성껏 돌보는 이 없이 무심하게 버려진 다 쓰러져가는 폐허처럼 초라하고 삭막한 작은 정원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씨앗이 뿌려졌다. 가정이라는 정원을 어떻게 가꿔가야 할지 몰랐던 나는 그분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따라 다 죽어가는 정원의 꽃과 식물들을 살리고자 정성껏 물도 주고, 땀 흘리며 쉬지 않고 잡초도 뽑아주었다. 또 가뭄이 들거나 너무 추워 꽃들이 시들어가면 까만 밤 하얗게 지새우며 두손 모아 비와 따뜻한 햇살을 청하면서 인내와 눈물과 기도로써 아슬아슬한 세월을 견뎌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함께 하신 그분 손길을 따라 살아온 지금, 우리 집 정원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겸손과 온유 친절 사랑 선행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마치 예쁜 새순처럼 파릇 파릇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시작되고 저무는 아침과 밤에는 우리 집 작은 정원에 예쁜 촛불이 밝혀진다. 개구쟁이 아홉 살 막내까지도 고사리 손을 모은다. 자신을 위해 밥을 먹듯,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먹고 촛불이 흐르는 고요한 기도로 우리 가족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훗날, 이 정원에 살고 있는 우리가족 모두 더 탐스럽고 풍요로운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 척박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 하느님 사랑을 실어 나르는 사랑의 파수꾼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랑의 온기에 우리를 만나는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서 우리가 아닌 하느님의 빛과 얼을, 그 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프고 힘들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은, 남편과 내가 그동안 세상에서 우리에게 덕지덕지 달라붙은 온갖 지저분한 때를 벗고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는 정화의 시간이었다.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고, 아프고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깊고 따뜻하게 열려가고 있다. 
 지금, 숱한 위기와 질곡에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 그분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우리에게 남은 지상에서의 시간 동안 어떻게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것이 어느새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를 위해 오늘도 나는 그분 거울 앞에 서서 쉼없이 나를 성찰하며 우리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고요히 두 손을 모은다. 


평화신문. 가정청소년 
상- 2007. 6. 24 [926호]
중- 2007. 7. 1 [9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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