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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미국과 한국의 낙태 논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22.08.14)

관리자 | 2022.08.10 14:57 | 조회 761

[시사진단] 미국과 한국의 낙태 논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여성에게 낙태가 완전히 보장될 것으로만 보이는 미국에서, 그래서 어떤 반대나 이의도 없을 것 같은 미국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낙태 찬반 논쟁이 격렬하다는 사실이다. 매년 1월 22일이면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생명대행진이 거행된다. 참여 대상도 청소년층부터 어른 세대까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행진에 왜 참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식도 매우 또렷하다.

1월 22일이 특별한 이유는 미국에서 1973년 낙태를 합법화시킨 판결이 나온 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1969년 미국 텍사스주에 살고 있던 노마 맥코비가 18세 나이로 임신하자 1970년 제인 로라는 가명으로 낙태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로 대 웨이드’라 불리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낙태를 헌법상 권리 즉 사생활에 관한 권리의 일부라는 판결을 내리고, 이후 이 판결은 여성의 낙태 권리(낙태권)를 둘러싼 논쟁에서 하나의 상징이자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는다. 노마 맥코비는 이후 당시 자신은 변호사인 사라 웨딩턴에게 속아 낙태권을 얻어내려는 미끼로 이용됐다고 주장하면서 낙태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지지자로 전향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면서도 절대적인 권리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다. 따라서 낙태를 할 수 있는 시기를 태아가 독립적인 생명력(viability)을 갖기 이전까지로 제한한다. 그러나 그 이후 이 시점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임산부의 상황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독립적인 생명력이라는 기준마저도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지켜내기에는 미약했다. 즉 일단 낙태가 허용되면 법적 기준은 늘 도전을 받으며, 사실상 태아의 생명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거의 실현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부터 수많은 연구가 발표되고 낙태규제 문제는 미국에서 헌법의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로 대 웨이드’가 미 연방대법원에서 2022년 6월 25일 폐지되었다. 50여 년 전 낙태를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한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낙태는 헌법상 그 어디에도 권리로서 명시되지 않았고, 헌법상 명시되지 않았지만, 기본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었거나, 질서 있는 자유 개념에 내포되어 있어야 하지만, 낙태의 권리는 전통과 자유 개념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논거가 매우 빈약할 뿐만 아니라 이 판결을 근거로 한 이후 판례를 인용한 모든 다른 결정들이 낙태로 야기되는 도덕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태아의 독립적인 생명력에 대한 기준은 우리나라 ‘낙태죄헌법불합치결정’(2019)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기준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국내에서는 이 결정에 대한 헌법적 논쟁이 매우 미흡할 뿐만 아니라, 지나칠 만큼 특정 계층을 인식한 정치적 계산으로 국회에서는 그 후속 논의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 최근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 기본법안’(국회입법예고기간: 7.26~8.9)은 모든 국민을 위하는 법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지만, 태아를 죽음으로 몰아붙이면서, 이를 국가의 당연한 의무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 법안은 태아 자체가 안중에 없다. 오히려 낙태를 재생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킨 채 낙태로 인해 야기된 도덕적 문제를 가리면서, 오히려 여성들의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타락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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