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생명윤리도서관

여성 고통 줄이되 태아 생명 살리는 데 초점

관리자 | 2019.06.24 11:10 | 조회 2174

특별기고 - 낙태법 개정안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 배정순 에스텔(프로라이프여성회 대표)



지난 4월 11일, 여성과 의료인만을 처벌하던 현행 낙태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면서 낙태법은 1년 반이라는 기간 내에 개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시한부 법안이 되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인류가 진보된 이래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2012년 헌재의 합헌 판결과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낙태법에 대해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현실적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낙태법 개정안이 무분별한 낙태를 조장하기 보다는 부디 여성과 태아를 함께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낙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이 낙태를 결코 좋아서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여성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위험할 수 있고 상처를 남긴다는 것’, 그리고 ‘태아 생명은 소중하다’ 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에게 상처가 되고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낙태에, 수많은 사람이 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낙태는 찬반논리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 차별적인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히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특히 임신과 출산, 양육에서 공동의 책임이라는 당연한 형평성이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낙태는 우리 사회의 사회구조적인 여러 가지 문제를 담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병리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임신과 출산, 양육에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무책임한 남성과 국가에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낙태할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통스러운 여성들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결코 선택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태아의 생명권은 버려지게 되었다. 누가 그 여성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는 낙태법 개정안을 통해 여성과 태아를 모두 구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게 되었다.

낙태법 개정안 마련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낙태가 현행법상 불법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올바른 현실진단이라는 의미에서 신뢰할만한 실태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피임인지, 양육인지, 낙태인지, 사회적 지지인지, 경제적 지원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원은 여성들의 욕구를 충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낙태의 98%가 사회경제적 이유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결혼하지 않아서, 혹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직 아기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이미 하나의 아기를 키우는 가정은 추가적인 양육의 부담을 이유로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

낙태율이 낮은 국가들은 대부분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남성의 책임과 국가적 지원을 제도화함으로써 낙태를 예방하고 있다. 상담과정을 제도화하여 임신과 출산, 낙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들을 제공하며 아동수당이나 양육비는 아이의 기본권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로 제공되고 있다. 양육에 대한 충분한 지원은 사회경제적 이유의 낙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임신과 출산, 낙태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 성교육이 콘돔 교육이나 피임교육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생명 가치관을 가르치고 양육 책임법을 가르쳐야 한다. 성은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책임이 동반함을 알려,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적극 예방하고, 임신한 경우 책임지는 용기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태 개정안은 어떻게 법적 테두리 안에서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안전한 낙태란 없다’ 라는 전제하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여성을 보호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 도나해리슨은 ‘안전한 낙태란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17살의 나이로 낙태를 경험했던 아일랜드 낙태휴유증 치료전문기관 대표인 버나데트 굴딩은 ‘낙태는 문제 해결이 아닌 모든 문제의 출발이었다’ 고 증언한 바 있다.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매우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도 경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미 여러 국가에서 낙태를 하나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치료하고 있다. 낙태한 여성들이 겪고 있을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도 관심을 기울여 치료의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여성들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는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낙태예방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지막으로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의사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현행 의료법 제15조에서는 특별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낙태 시술은 의사들에게도 매우 끔찍한 시술이다. 의사들의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선택한다고 한다. 아이와 산모둘의 생명을 책임지는 산부인과의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다.

자칫 낙태법 개정이,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책무를 뒤로 하고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무책임한 사회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울 용기를 주는 세상, 준비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세대에게 임신과 출산, 낙태와 양육에 대해 과학과 사실에 기반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생명존중을 가르치고 배우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낙태개정안은 여성의 고통을 줄이되, 태아의 생명은 보호하는, 둘 다 보호하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차별 철폐의 목소리나 평등과 공정의 욕구가 강한 지금, 적어도 크기와 역할, 능력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인 차별 조건이 생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이라면 국민들에게 낙태가 아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선진국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 될 것이다. 생명존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언론사 : cpbc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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