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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합작’ 사회도 병원도 모르는 척

관리자 | 2008.12.15 22:33 | 조회 5640

 

 

'낙태 합작’사회도 병원도 모르는 척


중앙일보| 2008.04.24

정지현(37·가명)씨는 결혼한 지 9년 된 주부다. 정씨는 현재의 남편과 5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그는 남편과 연애할 때 임신중절수술(낙태)을 두 번, 결혼 후에 한 번 했다. 혼전 임신 때는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낙태를 했다. 1999년 결혼한 뒤의 낙태는 임신한 줄 모르고 감기약을 먹고 주사를 맞은 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 후 자연유산을 한 번 한 뒤 아직까지 임신하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피임만 제대로 하고 주의했다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한국에서 낙태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전문가들은 낙태에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와 수익을 위해 낙태를 권하는 의료계의 '합작품'이라고 진단한다. 청소년의 잘못된 성 지식도 원치 않는 임신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낙태에 무감각한 사회=형법에는 부녀가 낙태를 한 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낙태 수술을 한 의사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합법적인 낙태는 모자보건법이 정한 경우만 가능하다. 법은 ^산모가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거나^강간에 의해 임신과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2005년 34만여 건의 낙태가 이뤄졌고 이 가운데 대부분은 불법으로 추정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낙태는 전체의 5% 미만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낙태가 불법인 것조차 모르고 있다. 낙태를 한 여성 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가량(49%)이 낙태죄가 있는지 몰랐다고 응답했다. 또 낙태죄를 안다고 응답한 사람의 94%가 낙태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장석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현실과 법이 너무 괴리돼 있다"며 "시대 변화를 반영한 제도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10대 임신=성경험을 하는 청소년이 크게 늘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청소년도 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 사이에 낙태계가 등장하고 청소년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산부인과가 있을 정도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전국 800개 중·고등학생 8만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00명 중 5명(5.1%)이 성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성관계 시 피임했다는 응답은 38.1%에 불과했다. 그만큼 임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서울의 한 여고 보건 교사는 "10대는 준비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레 하는 경우가 많아 피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낙태 권하는 병원=서울의 B산부인과 원장은 지난 2월 인터넷 포털 등에 낙태 광고를 일삼다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이 병원은 각종 포털에 '낙태' '인공임신중절' 등을 입력하면 이 병원 광고가 뜨도록 했다.

대구의 A산부인과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낙태 수술 후기를 통해 불법 낙태를 조장하고 있다. '원장 얼굴 안 보고 수술하니 편하다' '약국 가서 창피하지 않게 약도 병원에서 준다' ' 원장이 알아서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라고 진료기록에 써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이모(44)씨는 지난해 '산부인과' 간판을 내리고 '여성의원'으로 바꿔 달았다. 그는 "불법적인 낙태를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자 낙태를 원하는 많은 산모가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며 "낙태를 뺀 산부인과 진료로는 더 이상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분만비로 받는 돈이 건당 28만원이지만 불법 낙태는 건당 30만~250만원에 달해 많은 의사가 유혹을 받는다"고 말했다. 수술 시간도 자연 분만은 6~7시간 걸리지만 낙태는 10분~2시간에 불과하다.

박성철 한일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낙태는 모호한 법 규정 외에는 표준화된 지침이 없어 의사의 판단에 따라 낙태 권유 수위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글=김창규·김은하 기자 < teenteenjoongang.co.kr > ,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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