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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생명문화 조성이 범죄 재발 막는 길"

관리자 | 2008.12.15 22:31 | 조회 4429

 


▲사진은 2005년 11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사형제도 폐지와 종신형 입법화를 촉구하는 사형제도 폐지 기원미사 모습.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8-04-06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생명문화 조성이 범죄 재발 막는 길”


사형이 빈번한 미 텍사스주 범죄율 높아
지속적인 ‘생명존중’ 의식 교육 실시해야
피해자 가족 위한 사회적 보장·배려 절실

사형제 폐지론과 존치론은 현대사회의 쟁점 중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최근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사건 등 흉악범죄가 터지며 한국사회는 다시 폐지론에서 존치론으로 의견을 기울였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사형제 찬반 논란은 한국사회의 쟁점이 됐었다.

사형 폐지론과 존치론의 상박은 서로가 생각하는 가치판단의 축이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에 대한 논쟁과 같다. 폐지론에 대한 오해를 풀어본다.

■ 사회적 합의로 생명권을 빼앗을 수 있는가?

2004년 유영철 사건이 일어난 직후 투표를 시작한 ‘다음’ 결과를 보면, 8199명 가운데 사형제 폐지 반대가 57.3%(4702명)로 찬성 38%(3118명)를 앞질렀다. 용의자가 발표된 18일, ‘네이버’ 투표에서는 폐지 반대가 62.51%(1만4304명), 찬성은 32.83%에 그쳤다.

안양 초등학생 납치사건 용의자 정씨가 검거된 후 사회 분위기는 2004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2006년 여론조사 결과 폐지찬성이 33.8%였던 것에 반해 2008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에는 22.2%만이 폐지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가족들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하면서도 사형반대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인간의 가치로 판단한 사회적 합의가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생명권을 앗아갈 수 있느냐는 쟁점이다.

■ 범죄자의 인권이냐, 피해자의 인권이냐?

문제는 사형폐지가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범죄를 두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한 네티즌은 “살인사건을 볼 때마다 사형폐지론에 분노한다”며 “폐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망자가 된 피해자와 유가족의 심정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폐지론자들은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아니며 거꾸로 사형이 피해자의 생명권을 보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보상이 사회적 합의로 인한 다른 ‘죽음’으로 갚아질 수 없다는 말이다.

이영우 신부(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는 “사형폐지운동은 죽어마땅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명존중의 가치기준을 심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사회가 아닌 생명의 문화를 만드는 것, 이것은 범죄의 재발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세계사형반대의 날에서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가족 셋을 잃은 고정원(루치아노.65)씨는 사형반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내가 사형을 반대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나를 치켜세우기도,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코 사람이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라며 “저주와 원망 속에서는 아무것도 치유될 수 없다”고 말했다.

■ 사형, 범죄에 대한 억제력은 과연 있을까?

범죄심리학자들은 “살인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발적 살해의 경우, 사형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감추기 위해 목격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철저한 수사망을 통해 잡힌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흉악범죄를 막는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50개주 중 38개주가 사형제도를 채택한 미국의 경우를 보면, 다른 사형폐지국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은 범죄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가장 빈번히 사형이 이뤄지고 있는 텍사스주는 높은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1975년 10만명당 살인율은 3.09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으나 사형폐지가 있기 전 년도 1980년에는 2.41을 기록했고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이다. 2003년 살인율은 1975년 대비 44%가 낮아진 10만명당 1.73을 기록했고 이는 지난 30여년 중 가장 낮은 수치에 해당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본지 ‘사형, 폐지되는 그날까지’라는 기고문에서 “‘사형제도의 존속이 범죄를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추상적 가정”이라며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을 적용하는 것이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 수호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의 책임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족과 싸이코패스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살인이 일어나면서 살인범죄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현상은 분노로 이어지고 사형존치에 힘을 싣는 결과가 됐다.

그러나 “비정상적 범죄자 역시 현대사회의 부산물”이며 “부산물의 제거가 궁극적 치료책이 될 수는 없다”라는 의견이 폐지론의 입장이다.

폐지론은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사회가 책임을 갖고 교육을 통해 ‘생명존중’을 인식시켜야하며 불특정다수에 대한 증오를 키울 수 있는 장치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한다. 범죄로 희생된 피해자가족을 위로하는 부분 또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다.

실제로 2년 전 용산초등학생 살해사건의 피해자 부모는 올 3월, “피해자와 가족의 인권을 보호해 주지 않는 사회 대신 범죄 피해자들을 돕고 싶었다”며 피해자가족을 위한 수호천사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신부는 “살인사건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며 “죽음을 통한 일시적 보상보다는 건전하게 그들의 울분을 표출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회적 보상과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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