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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상처와 후유증 생각한다면 과연 ‘나를 위한 걸까요?’(2020.11.29)

관리자 | 2020.11.25 13:41 | 조회 2086

낙태… 상처와 후유증 생각한다면 과연 ‘나를 위한 걸까요?’

[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 (3) 꽃동네 ‘천사의 집’ 원장 이미경 수녀





“자신을 사랑한다면 낙태를 쉽게 할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녀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고 해요. 저는 아기를 안 낳아봤지만 낙태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이 사람들을 대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있는 꽃동네 ‘천사의 집’에서 만난 이미경(야고보,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수녀는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친언니가 어렵게 임신이 됐는데 자연유산이 돼서 아기가 뱃속에서 죽었거든요. 그 아기를 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낙태도 아니었고 자연유산이었는데도 고해성사를 여러 번 하더라고요. 낙태 후유증은 죄책감으로 평생 갑니다.”

창밖에는 가을 낙엽을 다 떨어뜨린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빼곡했고, 넓은 잔디밭에 자리한 놀이터가 보였다. 코로나19로 학교에 드문드문 다녀야 했던 천사의 집 아이들은 하늘을 벗 삼아 잔디밭에서 뛰놀았다.


▲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있는 꽃동네 천사의 집에서 직원이 신생아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입양을 기다리다 커버린 아이들


천사의 집은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이사장 오웅진 신부)이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영유아를 비롯해 초등학생까지 50명의 아이가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입양해줄 가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 신생아 때 들어왔지만 입양 부모를 기다리다가 훌쩍 커버렸다. 천사의 집은 별도로 입양기관을 운영하고 있어, 입양 업무도 함께 하고 있다. 이미경 수녀는 올 3월 천사의 집 원장으로 부임했다.

“2010년 입양특례법이 제정되기 전에 근무했던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는 신생아를 하루에 많게는 5명씩 받았어요. 지금은 저희가 안 받는 게 아니라 낙태를 많이 하니까 확연히 줄었죠. 지난 4월부터 6명의 아기가 들어왔으니까 지금은 한 달에 한 명꼴로 들어오네요.”

천사의 집에 들어오는 아기들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생명의 집’에서 온다. 생명의 집은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운영하는 미혼모자시설이다. 생명의 집에서 아기를 출생한 미혼모가 입양을 결심하면 천사의 집 수녀들이 입양 서류를 챙겨 아기를 데리러 간다.

“만감이 교차해요. 아기를 데려올 때 95%의 엄마들이 울거든요. 그 엄마들은 아기를 우리에게 보냄과 동시에 그 시설에서 퇴소하는 거죠. 인간적으로 입양을 보내는 게 낫겠구나 싶은 엄마도 있고, 충분히 마음만 먹으면 키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이 수녀는 2012년부터 6년간 청주교구 새생명지원센터에서 다양한 생명운동 활동을 펼쳤다. 당시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가 새생명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시범 교구로 청주교구를 선정했고, 이 수녀는 출산을 선택한 미혼모를 돕는 활동에 함께했다. 단순히 낙태를 반대하는 운동에 머물지 않고, 미혼모에게 병원비와 양육 용품을 지원하는 등 구체적인 생명운동을 펼쳤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코로나19는 입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말마다 봉사자들이 천사의 집에서 아기를 돌봐줬지만 코로나19로 봉사자들을 받지 못했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직원 40명에게 온전히 맡겨졌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입양 문의 전화도 줄었다. 현재 6명의 아기가 입양이 확정돼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900여 명의 아기가 이곳을 통해 입양됐다. 대부분 장애가 없는 여자아이가 선택됐다.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법적으로 만 18세까지 머물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떠나야 한다. 꽃동네는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동양육시설로 허가를 받았다.

“아이들이 입양되지 않는 이상, 성인이 되면 나가서 독립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컸다는 것을 심어주는 게 저희의 바람이에요.”

지난 8월에는 24명의 10살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통해 신앙을 선물 받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는 아이가 언제 입양될지 몰라 유아 세례는 주지 않는다.



생명을 낳고 키우는 건 사업이 아냐

이 수녀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을 보며 “우리나라가 완전히 죽음의 문화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며 “사법 기관이 생명을 죽이는 일을 허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낙태 영상을 의외로 못 본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우리 인간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어요. 내가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벌지는 계획이 필요하죠. 생명에 관한 부분은 이것과 연결지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경제적이고 사업적인 논리로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명을 낳고 키우는 건 사업이 아니에요.”

이 수녀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낙태할까 말까 고민하는 엄마들은 자기 자신부터 챙기고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낙태를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보는 건데,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낙태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기를 지웠을 때의 죄책감이 평생 가거든요. 무의식중에 이 생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8주 태아든, 14주 태아든 그 생명을 부정할 순 없어요. 과연 낙태하고 나서 죄책감 없이 살 수 있을까요?”

그는 “임신 14주 태아를 보호해야 할 생명의 기준으로 본다면 13주 6일은 무엇인지, 주수로 태아의 보호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논리로밖에 생각이 안 든다”고 거듭 비판했다.



생명의 문화 담은 미디어 콘텐츠 만들어야


이 수녀는 이미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상황에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잘못된 성 인식을 갖게 됐다면, 반대로 좋은 생명의 문화를 가진 미디어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다면, 그 한 청소년이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저는 수도자로서 맡겨진 일을 하지만 생명운동을 하는 평신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평신도로서 생명운동을 한다는 것은 가톨릭 신자로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령 유산이나 낙태 경험이 있더라도 일상에서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부터가 일생생활에서 할 수 있는 생명운동입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언론사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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