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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입맛따라… 태아산재법 ‘통과’ 낙태죄 개정은 ‘방치’ (21.12.25)

관리자 | 2021.12.23 13:58 | 조회 1090

정치 입맛따라… 태아산재법 ‘통과’ 낙태죄 개정은 ‘방치’

일명 ‘태아산재법’은 최근 통과시킨 국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보완입법 기한 2020년 12월 넘어 1년간 공백상태로 흘러,, 정치적 유·불리만 따져 입법하는 행태



▲ 국회는 최근 ‘태아산재법’을 통과시켰으나, 낙태죄 관련 보완입법은 1년간 방치하고 있어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사진은 국회 모습과 낙태 관련 영화 ‘언플랜드’의 한 장면.



국회가 최근 이른바 ‘태아산재법’을 통과시킨 것과 달리 낙태법 입법 공백 상태를 1년간 방치하는 등 정치적 유ㆍ불리에 따라 관련 법안 처리를 선별적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는 9일 유해한 업무 환경에 노출된 근로자가 선천성 질병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태아산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장철민ㆍ박주민ㆍ송옥주 의원, 국민의힘 이영,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각각 발의한 5개 개정안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통합해서 만든 안이다.



통과된 태아산재법 내용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업무상 사고, 유해인자 노출 등으로 출산 자녀에게 질병,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할 경우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장례비 및 직업재활급여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 또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거나 법원의 확정판결로 보험급여지급 거부처분이 취소됐거나 법 시행 기준 과거 3년 이내 자녀를 출산한 경우 등 법안 시행일 이전 과거 피해자들에게도 산재보험 수급 자격의 길이 열렸다.

이 법안은 임신 중인 여성이 유해환경에 노출돼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을 경우 엄마뿐 아니라 유해환경으로 자녀가 건강이 손상된 상태로 태어났을 때에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보험급여 청구권을 준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통상적으로 태아의 심장은 임신 5주 3일 정도면 뛰기 시작하고 임신 10주까지 태아 장기와 뼈가 형성된다. 따라서 태아가 성장할수록 낙태 합병증 위험은 커진다.

법안 발의자인 장철민 의원은 “제주의료원 대법원 판결이 문제가 된 후 이번에 일명 태아산재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남성 근로자도 태아산재를 신청했는데 이런 분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앞으로는 아버지의 유해요인노출, 생식독성물질 관리 강화 등 후속 법안 개정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9년~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 일하던 15명의 간호사들은 임신 후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간호사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요양신청을 했고, 대법원은 2020년 4월 병원 내 약품 분쇄작업이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간호사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보완입법 필요한데 1년 되도록 감감 무소식

하지만 국회가 ‘태아산재법’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달리 형법 낙태죄 폐지 후 무방비로 낙태되는 태아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 낙태죄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보완 입법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지난 1월 1일부터 시작된 법률 공백 상태는 만 1년을 앞두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낙태죄 관련 개정안 6개가 계류되어 있지만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정안 중 정부안과 국민의힘 조해진·서정숙 의원이 발의한 안은 낙태죄를 유지하자는 것이지만 내용상 차이가 있다. 정부안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의사에 의해 의학적인 방법으로 14주 이내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15~24주 이내에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자는 것이다. 조해진 의원은 임신 6주차까지 낙태를 허용하되 임신부 건강이 위험하면 20주차까지 임신중절을 허용하자는 것이고, 서정숙 의원은 낙태 허용기간을 임신 10주차로 제한하자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박주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의 안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임신 전 기간의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장기간 법안을 방치하고 있는 국회와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화여대법학전문대학원 정현미 원장은 최근 대한산부인과학회 제107차 학술대회 낙태죄 정책세션에서 "현재 낙태죄와 관련해 입법 공백 상태가 됐다는 점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생명문화전문위원회도 11월 총회에서 △태아도 생명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낙태죄 불합치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 △낙태죄 완전 폐지 개정안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방관하는 국회의 속내는

국회는 일명 ‘태아산재법’과 ‘낙태죄 관련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태아와 관련된 내용인데도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태아의 생명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ㆍ불리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태아산재법’은 재정적 부담을 져야 하는 사용자(경제계)를 제외하면 정치권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면 낙태죄 관련 법안을 만들면 일부 여성계의 반발을 살 여지가 크다. 그래서 정치적 실익이 없는 낙태죄 관련 법안은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태아산재법’ 보호 대상인 유해 업무 환경에 노출된 근로자, 선천성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 임신한 여성들은 투표권이 있지만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는 투표권이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런 정치적 사정을 이해한다고 쳐도 낙태죄 보완 입법을 1년간 방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국정을 책임진 정부ㆍ여당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과반이 넘는 169석의 의석을 갖고 있어 어떤 법안이든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여당은 지난 2일 2022년 예산안을 단독 통과시켰고 이달 내 임시국회를 소집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을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재계가 반대하는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행사에서 평등법 처리를 강조하는 등 관심 법안에 대해서는 처리를 촉구했지만 낙태죄 보완 입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야당도 모든 책임을 정부ㆍ여당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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