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주교회의 성명서] 안락사로 인식되는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합니다

관리자 | 2009.07.10 10:05 | 조회 2232

안락사로 인식되는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합니다

 

최근 인공호흡기 제거를 대법원으로부터 판결 받은 김 할머니와 관련하여 ‘존엄사’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제거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이지 그분의 죽음을 의도한 판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과 의료계는 이를 ‘존엄사’ 판결로 기정사실화 하였고, 인공호흡기 제거를 ‘존엄사’ 시행이라고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이른바 ‘존엄사’ 시행 후에도 김 할머니는 자력으로 호흡을 유지한 채 생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 사회의 반응은 놀랍게도 김 할머니가 “왜 빨리 죽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반응을 직시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금까지의 ‘존엄사’ 논의는 결국, 환자의 죽음을 의도하는 안락사를 목표로 하고 있음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최근 일고 있는 ‘존엄사’ 논란과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존엄사’에 대한 법률 제정을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존엄사’라는 그럴듯한 명칭은 안락사를 아름답게 포장한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락사란 “모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저절로 혹은 고의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 또는 부작위(不作爲)로 이해되며”(교황청 신앙교리성 「안락사에 관한 선언」) 따라서 안락사의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죽음을 의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의료계와 언론이 김 할머니에 대한 판결을 존엄사로 규정짓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에도 생명이 유지되자 매우 당황하였으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가 곧 의도적인 죽음을 초래하는 안락사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락사법의 또 다른 이름인 존엄사법 제정을 적극 반대합니다.

 

2.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존엄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존엄사’라는 단어의 무게 중심은 죽음을 의도하는 데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죽음을 의도하되, 그 윤리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존엄’이라는 어휘로 위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존엄사’라는 단어는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에 안락사를 용인하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죽음을 직접 의도한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되거나 합법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3. 삶의 마지막 시기를 맞이한 환자가 자력으로 호흡할 수 없게 되어 인공호흡기로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환자가 인공호흡기 부착을 거부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미리 밝힌 의사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를 위해 어떠한 치료법을 동원해도 회생이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환자 자신은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 수단으로서의 기계적 처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에 관한 선언」) 이러한 거부는 죽음을 의도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인공호흡기의 제거는 죽음을 의도하는 행위로서의 존엄사 시행이 아니라,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말기 환자에 대한 기계적인 연명 치료의 중단입니다. 그러나 비록 인공호흡기까지 제거한 말기 환자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간호는 중단되지 말아야 하며, 영양 공급이나 수분 공급 역시 당연히 베풀어져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행위입니다.

 

4. 환자 자신의 의사에 따른 ‘연명 치료의 중단’이 허용되는 조건은 환자 자신의 생리적 기능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자발적 호흡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통해 기계적 호흡을 하는 것은 자연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주입되는 영양분, 수분을 소화시키고 흡수할 생리적 기능이 있다면 그 환자가 의식이 있든 없든,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은 지극히 자연적인 수단이 됩니다. 이때에 영양과 수분 공급의 중단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5.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에게 있어 참된 의미의 존엄이란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면서 편안히 눈을 감는 것입니다. 곧 죽음의 과정이 자연적이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죽음을 의도하는 치료의 중단은 당연히 말기 환자의 자연적 죽음을 방해하고,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므로, 이를 국가가 법률로서 지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죽음의 문화 속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락사를 조장하는 존엄사법 제정에 대하여 선의의 모든 사람과 함께 연대하여 적극 반대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2009년 7월 8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 봉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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