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호체험수기공모전

<언플랜드>와 함께 하는 제5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공모전 우수상 : 계획되지 않은(Unplanned) 선물

관리자 | 2020.10.07 11:23 | 조회 136

계획되지 않은(Unplanned) 선물

이요셉(수원교구 율전동)

 

"아기 심장 소리 들려드릴게요."

애비 존슨의 책 언플랜드의 첫 장면, 태중의 아기를 초음파로 만나는 그 사건은 책 속에서 애비가 그랬듯이, 나에게도 아기의 생명이 가슴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아기라고는 하지만 이제 수정된 지 불과 몇 주도 되지 않은 아기다. 크기나 형태라고 해봐야 정말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인 '꼬마 곰 젤리'만하거나 그보다도 작은, 정말로 작은 생명. 그래서 어쩌면 나는 콩닥콩닥 거리는 아주 귀여운 소리를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쾅쾅쾅쾅쾅쾅!"

의사가 스피커를 켜는 순간,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혼란에 사로잡혔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어떤 증기기관이 폭발적으로 피스톤을 밀치며 생기는 커다란 굉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 강렬한 소리에 조금 두려움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몇 초가 흐른 뒤 그제서야 이 소리가 아기의 심장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어떤 경외감마저 들고 말았다. 그 소리 안에는 내가 여태껏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살아있다는,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넘쳐흐르는, 생명력에 차오르는 격렬한 소리였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이 일은 내가 아직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마크를 사랑했고 저스틴을 많이 좋아했으며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인생을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돌봐야 할 아이가 추가된 계획을 그려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이 잘될지 알 수 없었다."(언플랜드34)

남성인 나에게는 감히 결혼 전의, 젊고, 미래에 대한 많은 계획이 있는 여성이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을 했을 때의 두려움과 혼란을 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여자친구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었을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붉은 선이 두 줄 그어진 임신테스트기의 사진을 마주하고도, 그리고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자궁에 잘 착상된 아기의 모습을 만나고도 여자친구에게 "축하한다"는 흔하디흔한 그 한마디조차 해주지 못했다.

물론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이미 충분히 혼기에 찬 나이였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도 이맘때 결혼을 하셨다. 그러나 21세기의 20대 중반은 결혼과 육아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철부지에 불과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을 다니던 여자친구에게는 유학이라는 계획도 있었다. 아직 지식도 경험도 부족한 우리에겐 지혜가 없었고, 계획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나도 여자친구도 유아세례를 받고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성당을 다녀온 신자였다. 어려서부터 제 때에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복사나 전례봉사나 주일학교 교리교사 등을 해왔기에, '낙태는 죄'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착상 초기에 자주 발생한다고 하는 자연유산을 조금이나마 기대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일말의 죄책감 없이 당장의 곤란을 벗어나길 바라는 그런 소극적인 책임 회피는 아무래도 하느님의 계획에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낙태'는 미래를 위한 불편한 선택지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책의 전반부에서 애비는 가족계획연맹의 낙태 지원이 고통 받는 여성을 위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나는 애비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아직 만나지 않은 아기보다도 불안과 슬픔에 빠져있는 여자친구가 더 큰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 속에서 최악의, 최악의 경우에는 죄를 짊어지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무지하고 교만한 생각까지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여자친구에게 "낙태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음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며 여자친구가 낙태를 바란다면 나도 그 선택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생각의 방향에는 윤리적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의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여자친구가 웃음을 되찾았으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 이었다. 애비와 나의 차이라면 나의 이 마음은 애비처럼 극적인 변화 없이도 생명을 향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 일 것 같다. 내가 여자친구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 '계획되지 않은' 상황을 두고 나는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낙태는 당장 눈앞에 있는 여자친구의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낙태라는 이 큰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 여자친구를 불행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내가 입고 마는 상처였다면, 나만 감당하면 될 일이라 오히려 쉽게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낙태는 나보다도 여자친구에게 너무도 큰 상처 입히고 짐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여자친구와 나의 이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만약에 어떤 성폭행이나 사랑하지도 않는 성관계에서 이뤄진 임신이라면, 나는 아기를 낳아야만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뱃속에 있는 아기는 우리가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 안에서 생겼어요. 그래서 나는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사랑해서 태어난 아기니까요."

내 표현이나 단어 한 마디에 여자친구의 마음이 다칠 새라 횡설수설 이어진 이야기라 위에 적은 말처럼 정갈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여자친구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다. 여자친구는 "우리가 사랑해서 생긴 아기"라는 말에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그렇게 마음을 정했던 것은 아마 내 언변이 뛰어났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 몇 마디에 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여자친구 중에서 더 적극적으로 생명을 지킨 쪽은 당연히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산더미였다. 어린 우리의 임신 사실은 양쪽 부모님께도 큰 충격이었고 반대에도 부딪혔다. 딸을 둔 부모가 된 지금, 너무도 공감하는 일이지만, 누군지도 잘 모르고, 가진 것도,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안정된 상황인 것도 아닌 20대 청년이 덜컥 임신을 이유로 결혼하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여자친구와 나는 축복 속에서 무사히 혼인성사를 치를 수 있었고, 아기도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 이것으로 해피엔딩! 이라는 결말이면 좋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되지 않은 젊은 엄마아빠인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어느 하나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생겼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모든 일이 계획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며 생각하게 되는 사실은 그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결국 우리가 생명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힘들고 지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필요한 것이 필요한 때에 마련됐다. 마치 애비의 남편 더그가 애비에게 한 말과 같았고, 그것은 그야말로 '야훼이레'(주님께서 마련하신다)였다.

한 번에 미래를 해결하려고 하지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오늘 옳은 이유로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만 집중해. 주님이 길을 가르쳐 주실 거야.”(언플랜드124)

 

"아빠, 여기 하트가 있어요."

딸아이가 그 조그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쳐져 우연히 생긴 하트 모양이 있었다. 딸아이는 언제 어디서든지 무얼 하든지 신기하게도 하트를 찾아내고야 만다. 하트 찾기 대장이다. 아내와 내가 지킨 생명, 우리 로즈마리는 정말 사랑이 가득한 아이다.

여전히 계획되지 않은 시간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딸아이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깊은 지혜를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로즈마리를 지킬 때도 그랬듯이 언제 어떤 곳에서 무얼 하든지 먼저 사랑을 찾는다면, 이 계획되지 않은 지금이라는 시간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함께 지키고 돌봐준 아내에게, 그리고 죽음의 문화로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생명을 선택한 모든 엄마들에게 이글을 빌려 전하고 싶다.

"비록 우리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이 계획되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된 것, 마음을 다해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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