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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새 삶을 향한 참생명학교 (5)...하느님을 닮은 부부 공동체... 오석준 신부(서울 혜화동본당 부주임)(2020.07.05)

관리자 | 2020.07.02 14:25 | 조회 58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새 삶을 향한 참생명학교 (5)...하느님을 닮은 부부 공동체... 오석준 신부(서울 혜화동본당 부주임)

부부의 사랑은 전적인 ‘자기 증여’


시간이 지날수록 혼인율은 떨어지고 동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상황까지 겹치면서 동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아졌다. 혼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만큼 달라지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혼인의 본래 의미를 짚어보며, 부부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나누고자 한다.

가톨릭교회의 혼인 서약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은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혼인을 맺어주는 이 약속은 평생을 건 약속이기에 그 무게가 상당하다. 아무도 이 약속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면, 이성과 자유를 지닌 인격체가 아니라면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처음엔 남남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가족이 된다. 정말 대단한 결정이다. 혼인 관계는 오직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진 관계다.

남녀의 사랑이 혼인 안에서 온전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사랑이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사랑은 인간의 자유 의지가 함께할 때 완성된다. 책임 있는 선택과 약속은 사랑의 본성과 부합한다. 사회가 혼인제도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이유는 부부의 사랑이 자녀 출산을 통해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낳는 공적 차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눈으로 혼인을 바라보면, 혼인은 하느님께서 제정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한몸이 되기를 바라셨다. 창세기는 두 사람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한몸이 되는 혼인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하느님의 창조 계획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혼인은 사랑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남녀의 사랑은 혼인을 향하고 있다.

혼인 성사는 부부의 서약으로 이뤄지지만, 혼인 성사의 완결은 부부 행위에서 이뤄진다. 즉 부부의 성행위 안에서 사랑은 몸과 마음을 통해 실현된다. 부부 행위는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자기 증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행위는 본능과 충동이 아니라 사랑에 따라서 이뤄져야 참으로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혼인 밖에서 이뤄지는 성관계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하나가 되겠다는 약속과는 상관이 없다. 각자의 몸은 일시적이고 상호적인 성적 즐거움의 체험을 위한 일종의 도구 또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부부는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몸과 마음, 말과 행동으로 ‘오직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부부 사랑의 본질이 이렇다면 교회가 이야기하는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일성은 다른 말로 하면 일부일처제다. 부부의 사랑이 전적인 자기 증여라면 이미 한 번 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불가해소성은 죽을 때까지 혼인의 유대가 풀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가톨릭 교회는 이혼이라는 제도를 두지 않는다.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은 현대인들에게 어려운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고 혼인하도록 힘과 은총을 주신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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