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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새 삶을 향한 참생명학교 (2)...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을 닮은 나... 오석준 신부(서울 혜화동본당 부주임)(2020.06.14)

관리자 | 2020.07.02 14:21 | 조회 35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새 삶을 향한 참생명학교 (2)...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을 닮은 나... 오석준 신부(서울 혜화동본당 부주임)

생명 공학, 인간 존중하며 선하게 쓰였나


의학과 생명 공학은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줬지만 여러 의문을 갖게 한다. 난임 부부를 도와주는 시험관 아기 시술은 정말 해도 괜찮은가. 갖가지 연명의료로 말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좋은 일인가. 불치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인간 배아를 파괴하고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까. 모든 질문을 관통하는 게 하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의학과 생명 공학 기술이 인간 생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대상이 되는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그 기술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인격적 존재라고 말한다. 이때 인격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고 양도될 수 없는 개별 인간의 독자적인 가치와 존엄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본능이나 충동에 따라 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에 따라 선택하고 움직인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떠한 대상이나 수단으로 취급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한 인격적 의미를 잊고 살아간다. 인간 배아가 무수히 파괴되고 조작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러한 생각은 몸에 새겨진 성(남성, 여성)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첫걸음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친다. 인간이 하느님 모습을 닮았다는 말은 결국 인간이 존엄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인격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인격의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인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인격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존재다.

자유로운 인간은 다양한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 각각의 행위는 구체적 목적이 있는데, 모든 행위 가운데서 공통된 목적이 있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나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 선한 행위는 우리를 인격의 완성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의 완성은 친교 안에서 이뤄진다.

오늘날 생명 공학 분야의 많은 행위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그 행위가 실제로 선한 행동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험관 아기의 경우 불임이나 난임 부부에게 아기를 갖도록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다. 부부 행위와 상관없이 배아를 만들어 내고, 배아를 실험 도구로 사용한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이러한 행위를 선하다고 볼 수 없다. 안락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락사는 환자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지향으로 그 환자를 죽이는 행동을 선택한다.

한편에서는 각자 개인 양심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자의 양심을 존중하는 일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자연법이나 성경이 제시하는 십계명 등에 이미 나와 있다. 인간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교회 가르침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양심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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