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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목적과 수단의 관계

관리자 | 2018.09.12 14:07 | 조회 106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아니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보는 원칙이 있다.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관한 원칙이다.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단이 올바르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원칙이다.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빵을 훔쳐서 준다면 도덕적으로 나쁘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 자체가 나쁜 행위이기 때문이다. 굶주린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5년 형을 선고받은 장발장을 보자. 빵을 훔친 죄로 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렇다고 빵을 훔친 행위 자체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연초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가 있다. 낙태죄 폐지와 존치의 문제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앞세운다. 내 몸 내 마음대로 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물론 ‘내 몸 내 마음대로’라는 표현에는 사람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몸이라고 해서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가치의 우열이 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우선한다. 

인간 생명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병고에 시달린다 할지라도, 여러 장애를 안고 있다 할지라도, 연약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든 인간 생명은 똑같이 존귀하다. 중병에 걸린 만성 환자를 돌보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하더라도 그 환자를 방치해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낙태죄 존폐와 관련해 100만 명 서명운동을 벌여가면서까지 존치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태아를 인간 생명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이어서, 자녀 부양의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어, 나아가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선택한다’는 이유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한다면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심각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헌법재판소가 내릴 판결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태아가 인간 생명이 아니라고 여겨 낙태죄 폐지의 합헌을 결정한다면, 태아가 언제부터 인간 생명인지에 대한 법리적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이유로 낙태죄 합헌을 결정한다면, 자기 결정권이나 행복 추구권을 생명권보다 더 앞세우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어려움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행복 추구권을 생명권보다 앞세울 경우 결국에는 목적을 위해 그릇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게 정말 문제다. 이런 난국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삶에서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의 윤리성, 곧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의 도덕적 측면을 마땅히 강조해야 한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윤리성만이 아니라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벽에 못을 박으려는 데 풍선 망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제대로 된 쇠망치를 사용해야 한다. 풍선 망치와 쇠망치는 각자 고유한 기능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은 목적에 사용되는 수단의 윤리성뿐만 아니라 그 고유한 기능을 존중해야 한다. 풍선 망치로 못을 박으려다가는 못도 박지 못할 뿐 아니라 망치도 버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곧잘 벌어지고 있다. 


*위 칼럼은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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