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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삶의 기술’이란 교과목이 필요하다 - 배정순 경북대 교수

관리자 | 2018.03.27 13:45 | 조회 153




한국은 지금 갈등과 투쟁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 80년대 민주화의 운동보다 훨씬 더 진보한 민주화의 물결이다. 정치와 경제의 구태를 벗기 위해 치열하게 앓고 있는 거대한 물결 위에 이제는 인권이라는 큰 배를 띄워 놓았다. 최근 미투(Me Too)운동이 일면서 그동안 권력과 돈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무력 앞에 좌절하고 상처받았던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올 것이 왔다. 사실 놀라면서도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공공의 비밀이 아니었던가. 조금도 알지 못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고 보니 예술이라는 혹은 경제적 이득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한 수많은 폭력을 우리가 수용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유명세를 타고 많은 관객이 보았던 인기 작품,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서 정말이지 이것이 최고의 문화인지, 승화된 예술작품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폭력, 범죄, 잔혹 등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도 경험할 가능성도 없는 스토리와 영상들, 인간 상상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지를 되묻게 되는 다양한 텍스트를 바라보면서 영상물을 대하기가 두려운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 작품을 대하며 폭력성이나 선정성 이야기를 꺼내면 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예술에 문외한이 돼버리기 일쑤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고 참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우리 사회는 그 잔인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니었던가.

최근 이 따른 영화계의 폭로 속에 한 유명배우는 ‘우리(영화인)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비단 영화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번 미투 운동의 본질은 성 대결이 아니다. 성폭력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다 알면서도 방관하고 묵과했던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모른 척한다는 것도 결국은 폭력이고 범죄가 아니던가.

생명 존중은 바로 이러한 폭력과 범죄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동안 전쟁의 폐허에서 못 먹고 헐벗었던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기까지 치러야 했던 대가는 매우 잔인했다. 이제 우리는 진짜 부자 나라,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할 때이다. 물질주의 가치로 평가되는 잘사는 나라가 아닌, 우리의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한 그런 잘사는 나라가 돼야 한다.

결국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교육은 삶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수학도 필요하고 영어도 중요하지만, 삶의 기술은 더 절실하고 중요하다. 과연 우리나라 초중고 대학까지 삶의 기술을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가. 독립된 교과목으로 삶의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타인을 공감하고 나를 표현하는 바람직한 방법, 갈등 상황에서 서로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소통하는 방법,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책임과 용기란 무엇인지 어린아이들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주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을 가르쳐야 한다. 영어 단어를 틀리는 것은 타인을 위험하게 하지 않지만, 자신의 화를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타인에 대한 존중을 모르는 것, 미디어가 주는 것을 무조건 수용해버리면 결국 우리라는 공동체가 상처 입고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 폭력성은 폭로와 처벌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삶이 좀 더 풍요롭고 인간다울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삶의 기술’, ‘인생 공부’라는 교과목 하나 만들어보자. 뿌리 깊은 폭력을 제거하는 방법은 결국 생명 존중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위 기사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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