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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중단 2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 (4) 연쇄 살인범 위해 탄원서 내며 사형폐지 앞장서는 고정원씨

관리자 | 2017.12.11 10:46 | 조회 259

“어머니와 아내, 아들까지 죽인 살인자를… 그래도 용서합니다”

세례받은 후 생명 수호 위해 오롯한 한길
사재 털어 범죄 피해자·가해자 장학금 마련
‘바보’라는 비난 들으며 사형제도 반대해와
가족 10주기땐 장기와 신체조직 기증 서약



누구보다 앞장서 ‘생명의 깃발’을 들어온 한국교회와 사형제도 폐지운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법’이라는 미명 아래 생명에 대한 권한마저 폭압적인 권력의 손에 의해 좌우될 때 교회는 복음을 앞세우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모두가 숨죽이고 권력의 처분만을 기다릴 때도 교회는 생명의 십자가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 이러한 그리스도적 실천이 죽음의 그늘이 짙어져가던 땅에 다시 생명의 빛을 불러왔다.

생명을 향한 교회의 길에 빛나는 인물이 적지 않다. ‘영원한 어른’ 고(故) 김수환 추기경, ‘억압 받는 이들의 친구’ 고(故) 이돈명 변호사, ‘사형수들의 대모’ 조성애 수녀…. 그 길에 또 하나의 이름이 더해질 만하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 꼭 따라다니는 인물 고정원(루치아노·75)씨가 바로 그다. 2003년 유영철의 손에 노모와 아내, 4대독자 등 온 가족을 잃고서도 그를 위한 탄원서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고씨. 그로 인해 한국교회, 나아가 한국사회의 사형제도 폐지운동은 새로운 지평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고정원씨는 “인간의 손과 제도를 빌려 사형을 주장하는 것은 주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14년 전 한강. 그는 그 다리 위를 서성였다, 몇 번이고. 눈도, 뇌리도 끔찍할 정도로 깜깜하기만 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벼락같이 그의 뇌리를, 일생을 가르고 지나갔다. 순간 주저앉은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은 후 목숨줄 놓으려 했던 ‘죽음’의 강은 ‘생명’의 강으로 변했다. 그리고 숱한 기적을 낳는 기적의 샘이 됐다. 그 샘에서는 지금도 기적이 솟아나고 있다.

“용서.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들려온 주님 목소리는 ‘용서’였습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삶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그 십자가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급기야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발걸음. 똑같이 생명을 내놓는 일 말고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던 그에게 한순간 기적의 길이 열렸다.

그의 뇌리를 파고들어 가슴 한가운데로 난 ‘용서’의 물길은 하나둘 기적의 길을 열어갔다.

‘2003년 10월 9일’

고씨의 삶은 한동안 이 시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바로 사랑하는 가족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4년여의 세월이 더해졌다.

“바보라는 소리 참 많이 들었어요. 비웃음도 많이 샀지요.”

친척들과 가까운 지인들조차 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용서하지 않았다. 때로는 미치광이 취급까지 했다. 무수한 관계들이 끊겨져 나갔다. 단절됐다.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만큼 그의 상처는 깊어 보였다. 그로 인해 그 사건 이후 수술대에 오르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지금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제가 한 일은…, 제가 했다기보다는 저를 다시 살려주신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까요.”

가족들이 자신의 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던 2013년 고씨는 또 한 번 ‘바보’같은 짓을 했다.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남은 사재를 털어 범죄로 인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가해자 가족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마련해 전달한 것이다.

바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치광이라는 힐난이 난무했다.

그래도 고씨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고백에는 당연히 생명에 관한 모든 권한이 그것을 지으신 하느님께 있다는 진리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손과 제도를 빌려 사형을 주장하는 것은 주님을 거스르는 일이잖아요.”

늦깎이 신앙인의 외침은 불의가 덮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들렸다. 불교 신앙 속에서 자라왔던 그는 6개월간의 교리를 받고 2004년 7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났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생일 없는 소년’, ‘이름 없는 소년’, ‘집 없는 소년’으로 부른다. 태어난 날은 이미 무의미해져 자신의 본명 축일이자 죽은 아들의 생일을 새로 난 날로 삼았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도 허망해 세례명으로 불리길 원한다. 가족과 살던 집을 떠나 홀로 지낸지 오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길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전립선암으로 힘겨운 수술을 받고도 20일 만에 일본 초청강연 길에 오를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간 가족들의 10주기를 맞았을 때 이미 한 각막과 장기 기증에 이어 신체조직까지 기증하기로 했다. 깨끗한 몸을 남기기 위해 술 담배를 끊은 것은 물론이다.

세례를 받은 후 지금껏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이 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먼저 간 가족들을 위해 묵주기도 60단씩을 바친다.

신체적 쇠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씨는 남은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견하는 듯했다. 예전만 하지 못한 기억력 때문에 힘에 부치는 일에 맞닥뜨릴 때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이, 하느님이 마련하신 생명의 길에 조그만 밑거름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조그만 칭찬이라도 들을 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주님께 돌려드려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분이 주신 생명의 기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씨는 ‘사형’이나 ‘사형제도’와 관련해 어떤 거창한 이론이나 깨달음도 들이대지 않았다. 하지만 생명을 향한, 진리를 향한 그의 ‘고백’은 어떤 논리나 언술보다 힘이 있었다.

“주님, 자비로운 당신의 얼굴만은 잊지 않게 하소서.”

요즘 그가 시시때때로 하는 기도다. 희박해지는 기억력 때문에 곤란을 겪으면서도 그가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꼭 한가지다.

주님의 자비로 죽음의 강을 뛰어넘는 기적을 체험한 늦깎이 신자. 고씨는 자신의 체험을 전할 수 있다면, 그래서 좋으신 하느님을 전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쁜 삶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외톨이가 돼 쓸쓸한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새로운 형제를 얻어가는 기쁨이 전해져왔다.

2007년 10월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에서 사형수 아들을 둔 가해자 가족을 만나 울고 있는 고정원씨(맨 왼쪽).



■ 사형제에 대한 교황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95. 3. 25.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는 일은 어떤 개인이나 특정 집단만이 가지고 있지 않다. 생명에 봉사하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을 높이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2001. 1. 1.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벌이든 범죄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절대 말살할 수는 없다. 회개와 갱생의 모든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2013. 6. 15.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5회 세계사형제도폐지 총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번 총회를 통해 전 세계적인 사형폐지는 인류가 범죄에 굴복하지 않고 복수를 거부하며 새로운 희망을 높일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재확인했다.

-2014. 10. 23. 국제형사법협회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의 추구는 도외시한 채, 모든 것을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만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려는 ‘형법적 포퓰리즘’(penal populism)을 거부하고, 사형제는 물론 종신형까지도 폐지해야 한다.

-2016. 2. 21.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과 삼종기도를 바친 뒤
‘살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은 죄 지은 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주님은 범죄자에게도 불가침의 생명권을 주셨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사형제도 반대운동은 ‘시대의 증표’다.

-2017. 10. 11.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tium)」 반포 25주년 기념 연설
창조주의 눈에 사형은 신성한 한 인간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 복음과 상반된다.
법의 이름으로 그 누구의 생명도 제거할 수 없으며, 심지어 살인자조차도 개인적 존엄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위 기사는 가톨릭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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