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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평화] 저출산 문제–다둥이 가족을 만나다

관리자 | 2017.05.25 10:34 | 조회 142
    
기획특집
[이 땅에 평화] 저출산 문제–다둥이 가족을 만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인생의 선물이죠
2017.            05.            28발행 [14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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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웃음소리가 인생의 선물이죠

요즘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다자녀 가정을 만났다. 여섯 자녀를 둔 박상근(시몬, 수원교구 안양 중앙본당)ㆍ박옥희(프란치스카 로마나)씨 가정과 전북 순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섯 자녀를 둔 김기열(이냐시오, 전주교구 순창본당)ㆍ전명란(클라라)씨 가정이다. 두 가정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자 소중한 생명인 자녀들을 통해 더욱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평신도 선교사 아빠, 평범한 가정주부 엄마와 여섯 자녀–박상근ㆍ박옥희씨 가정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박상근(시몬, 49)씨는 “일하다가도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져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부엌가구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20여 년 전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안양에 와 아내를 만난 것부터 IMF 시절 큰 빚을 내 시작한 사업이 승승장구한 것, 여섯 자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것 등이 주님의 은총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고해성사를 보고 7년 넘게 이어오던 냉담을 풀고 미사에 참여하고 나오다 아내를 만났다. 이후 그는 아내와 함께 청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며 사랑을 키웠다.
 

결혼 후 남편은 부엌가구 공장을 차렸다. 많은 회사가 줄줄이 부도로 쓰러지던 때였지만, 사업은 날개가 달린 듯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낳았다. 셋째, 넷째…. 부부가 아이를 계속 낳자 친척들이 아내에게 낙태수술을 권했다. ‘무식한 여자’라는 소리까지 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하느님 뜻대로 낳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론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박씨는 7년 전 수원교구 하상신학원을 졸업하고 평신도 선교사가 됐다. 현재 수원교구 성령쇄신봉사회에서 자신의 신앙체험을 전하는 ‘말씀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 온 가족이 함께 아침ㆍ저녁 기도를 바치고, 사순 시기에는 매일 ‘십자가의 길’을 봉헌한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에 힘입어 유치원 교사인 장녀 슬기(마리아, 21)씨는 4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고, 지금은 평일 미사 반주자로 봉사한다. 미사 때 복사를 서는 넷째 비오(비오, 중1)군은 사제가 꿈이다.
 

아내는 “하느님께선 나약한 존재인 저를 아이들을 통해 엄마로서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면서 “덕분에 제가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고 감사해 했다.
 

남편은 “큰딸이 첫 월급을 받고는 ‘하느님께 감사헌금을 봉헌하겠다’고 했을 때 자녀를 신앙의 길로 이끈 큰 보람을 느꼈다”며 “자녀를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면 하느님은 아이들을 당신 뜻대로 이끄신다는 것을 늘 체험하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장녀 슬기씨에게 결혼해서 자녀를 몇 명 가질 것인지 물었더니 “마음으론 3~4명을 낳고 싶은데, 현실적으론 2명 정도일 것 같다”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다섯째 민희(오틸리아, 초5)양은 “우리 집엔 언니 오빠, 동생이 모두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고 밝게 웃었다.
 



귀농한 뒤 자식 농사도 풍년–다섯 자녀 둔 김기열ㆍ전명란씨 가정 

순창군 풍산면 두승리에 있는 미나리 농장인 ‘가이아 농장’ 공동대표 김기열ㆍ전명란씨 부부는 도시에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김씨는 20여 년 전 서울 방이동에서 학습지 영어 교사였고,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전씨는 서울 강남의 건축설계사 사무소 직원이었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영어 교사를 그만둔 김씨는 친구의 권유로 전주의 한 식물원에 입사했다가 농장에서 일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이 무렵 두 사람은 각자 떠난 보길도 여행길에서 만났다.
 

2000년생인 맏딸 예진(파우스티나, 고3)양이 돌이 됐을 무렵, 부부는 순창으로 귀농했다. 순창은 김씨의 고향. 두 사람 다 전라도 출신이긴 하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초보 귀농인이었다. 그런 부부에게 하느님은 수확의 기쁨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3300㎡(1000평) 땅에 고추 농사를 지었지만 4~5년간 실패만 거듭했다. 섬진강 변의 축축한 땅에 고추를 심으니 여름이면 물이 넘쳐 썩어 문드러졌다. 다시 도시로 가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있었을 정도였다. 2002년생인 둘째 고은(로엘라)양과 셋째 민서(임마누엘)양이 4년 터울인 것도 그만큼 그 시절이 어려웠다는 증거(?)다. 보다 못한 이웃 어르신이 습지에서도 잘자라는 미나리 농사를 권했다. 다행히 이듬해 봄, 새싹이 돋아났다. 부부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미나리 농사를 지으면서 농장은 번창했다. 집안에선 아기 울음이 계속 이어졌다. “원래 하나나 둘만 낳으려 했어요. 그러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낳자고 마음을 바꿨지요. 시골에 오니 자연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마음도 넉넉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아내가 아이를 무척 좋아해요. 막내는 우리 집 활력소입니다.”(남편)
 

부부는 가족을 ‘가장 작은 사회’라고 말한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작은 사회 속에서 서로 배운다. 소소하게 싸우고 양보하면서, 마음에 상처도 주고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연습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것도 공부가 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을 쪼개고 나눠 받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양보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방법도 체득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공동체 일원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 부부의 경험이다.

 

부부는 신앙적으로도 큰 체험을 했다. 2011년 부부가 트럭에 미나리를 가득 싣고 납품을 가다 차가 미끄러졌다. 낭떠러지에서 차가 떨어지려는 순간, 마주 오던 본당 신자 차량과 부딪쳐 목숨을 건졌다. 차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남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아내는 골반을 다쳐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입원해 있는데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도 문병을 와 주셨지요. 성경을 읽다가 ‘하느님의 은총’이란 말씀이 뇌리에 박히더라고요. 앞으로 전과 다른 삶을 살라는 하느님의 경고 같았지요.”(아내)
 

사고 이후 부부는 완전히 새롭게 거듭났다. 완전히 냉담했던 남편도 애령회장(연령회장)과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은 전주 가톨릭농민회 순창분회장으로도 봉사했다.
 

형제자매가 많은 것에 대해 둘째 고은(중3)양은 “요즘은 시골에도 자녀가 거의 한두 명인데 혼자인 친구들은 집에서 스마트폰을 주로 하고 놀지만 우리 집은 언니 동생들과 함께 물놀이도 하며 재밌게 지낸다”고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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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아래의 본문은 위 링크의 기사의 일부분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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