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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게 용기와 희망을] 2. 미혼모들의 현실 - ‘엄마’ 이야기

관리자 | 2018.12.06 14:51 | 조회 2970
낳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남자친구
마음먹은 일이었지만 현실은 현실
하고픈 일도 되고픈 꿈도 포기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문제는 ‘돈’


‘낙태하거나 입양시키지 않고 생명을 지킨 엄마.’ 지난주 이 기획기사는 미혼모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교회 가르침에 따라 생명을 낳고 책임져 양육하고 있는 엄마, 미혼모. 이러한 ‘엄마’들을 위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가톨릭신문,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공동캠페인 ‘미혼모에게 용기와 희망을’을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편에서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엄마는 어떻게 미혼모가 됐는지,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의 일상은 어떠한지를 11월 30일 인천에서 한 미혼모를 만나 들어봤다. 기사는 이날 취재,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했다.

‘엄마’ 서숙희(가명·37)씨가 11월 30일 오후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을 집 앞에서 안고 있다.
■ 예상치 못한 임신

내 이름은 서숙희(가명). 37살이다. 내게는 딸아이가 하나 있다. 3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다. 당시 난 임신 사실을 몰랐다. 배가 불러왔지만 막연히 살이 찐 줄 알았고, 생리를 하지 않았지만 원래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던 탓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막달이 돼서야 알았다. 임신이었다. 2015년 12월 7일이었다. 그때가 출산 20일 전쯤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돌아오자마자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 같이 키우자”고 했다. 14개월 정도 만나다 그해 8월 헤어진 사람이었다. 결혼상대로는 아닌 것 같아 헤어졌지만, 혼자선 도무지 감당할 순 없어 연락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랬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책임 못 진다. 낳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때 나는 34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워낙 엄했던 가정환경 탓에 집에는 털어놓을 수 없었다. 혼자 인터넷에서 미혼모 지원 시설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미혼모 지원 시설들에선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 겨우 한 곳에서 입소 허락을 받았다.


■ 입양 유혹 뿌리쳤지만, 경제적 부담 막대

2015년 12월 29일, 아이를 낳았다. 3.5㎏의 여아였다. 막달에 알아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건강했다. 곤히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꽤 귀여웠다. 날 닮은 것도 같았다.

주위에선 입양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들 했다. 낙태할 수는 없지만, 입양이라도 시키면 혼자서 애 키우는 고생은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내게도 그렇지만,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낙인은 아이를 평생 괴롭힐 것이라고도 했다. 그럴 순 없었다. 몸은 힘들어도, 매일 죄책감에 시달리기는 싫었다.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책임져보겠다고 다짐했다.

마음먹은 일이었지만, 쉽진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괴로웠다. 주변에서는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날 딱하게 쳐다봤다. 나조차도 내 자신이 딱한데, 다른 사람들까지 날 그렇게 쳐다보니 끔찍했다. 창피하고 위축됐다. 피해의식도 생겼다.

혼자서 애를 키우는 건 더 힘들었다. 아이가 맨날 우는데 왜 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죽하면 우는 애를 붙잡고 나도 같이 울었다. 우울했다. 죽고 싶었다. 여전히 내 처지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적응됐다.

문제는 돈이다. 지금 난 돈이 없다.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지만, 90만 원 남짓이다. 일이라도 해서 생계비로 보태고 싶지만, 정부가 인정하는 소득 기준을 넘으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 올해 정부의 소득인정액은 2인 가구 기준 85만4129원 이하다. 소득이 이를 초과하면 기초생활수급비를 못 받는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일하지 않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거나, 기초생활수급비를 포기하고 일을 하거나.


■ ‘엄마’에겐 꿈도, 만남도 사치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아이를 갖기 전과 후 내 인생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내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 모든 시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아니 잠든 이후에도 아이 뒷바라지에 모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깨우고,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데리러 마중 나가고…. 아이가 집에 돌아와 거실을 인형들로 잔뜩 어질러놓으면 그걸 치우다 지쳐 잠드는 게 내 하루고 일상이다.

많았던 꿈들은 사치가 됐다. 바리스타부터 웨딩플래너까지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그런 꿈들을 꿨었는지, 어떻게 그 꿈들을 이루려고 했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아이를 돌보는 데에만 신경 쓰다 보니 다른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더 나아질 것도, 기대할 일도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연락하는 사람은 없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떨고 헤헤거리는 일은 내게는 사치이자 호화스러운 일이 됐다. 이렇게 딱한 내 처지를 알고 인근 주민센터에서는 휴지와 같은 물품들을 챙겨주지만, 고마우면서도 자괴감이 든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누군가보다 불쌍하고 한심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다. 슬프다.


■ 중요한 건 ‘엄마’의 자립

그래도 난 내 딸이 사랑스럽다. 집안을 어질러놓고 고집부릴 때는 가끔 밉지만,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자라고 있는 딸을 보면 고맙고 뿌듯하다.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힘듦의 연속이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한 결정은 내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막달이 아니라, 그 전에 임신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난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을 거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아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만 매일 고민하고 있다.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요즘엔 공부도 한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공부다. 국가장학금을 받아 공부한다. 언제까지 지원만 받고 살 수 없으니, 내겐 이 방법뿐이다. 자립해야 한다.

이렇게 자립을 원하는 미혼모가 나뿐 만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해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사전 연구」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전체 미혼모 2만3936명 중 40세 미만인 미혼모는 59.2%에 달한다. 미혼모들 과반수는 사회에서 한창 일자리를 구하고 자립해 활동할 수 있는 여성들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엄마와 아이에게는 친엄마가 배불러 낳은 아이를 스스로 책임지고 양육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이다. 때문에 나 같은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낙태나 입양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 같은 미혼모가 자립해 혼자서도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시스템과 주변의 응원, 지지다. 미혼모도 엄마다.


◆ ‘미혼모에게 용기와 희망을’ 후원 캠페인에 함께 해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303-571860 (재)천주교서울대교구
※문의 02-727-2352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 위 기사는 가톨릭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언론사 :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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