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문화 건설’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성에 대한 책임과 직결되는 생명
임신·출산에 남성 역할 중요
낙태한 여성도 사목 지원 필요
출산 통해 축복받는 문화 절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죽음의 문화’라고 말했다. 이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이하 생명윤리위)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기 위한 정기 학술세미나를 매년 열고 있다. 교회가 생명 존중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생명윤리위는 11월 17일 오후 2시 서울 방배4동성당 4층 성전에서 ‘여성과 생명’을 주제로 제17차 정기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특히 이날 생명윤리위 총무 이동익 신부(서울 방배4동본당 주임)는 가장 약한 여성 중 하나인 미혼모를 위한 캠페인에 동참을 호소했다.
■ 화두는 ‘낙태’와 ‘미투’
생명윤리위원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의 인사말과 주제발표, 패널 토의 등으로 구성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여성과 생명, 그 중에서도 ‘낙태’와 ‘미투’(#MeToo)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김세서리아(체칠리아·이화여대 외래교수) 위원은 ‘한국가톨릭교회의 낙태 담론에 대한 성찰과 재정교화’,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박은미(헬레나·가톨릭대 외래교수) 총무는 ‘여성친화적인 교회를 향한 시대의 징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은미 총무는 “‘미투’는 새로운 시대적 징표”라며 “가정폭력과 여성 혐오 범죄, 성폭력 등은 여성이 직면한 도전이고, 이는 교회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긴급한 일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총무는 1995년과 2004년, 2013년에 각각 진행된 한국 천주교 여성신자들의 의식조사 결과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박 총무는 공통점에 대해 여성들이 ‘의사결정 과정 참여’와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로의 변화’를 교회에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총무는 “여성 문제는 가정 문제와 분리해 논의하기 힘들다”며 “위기 상황에 직면한 여성에 대한 교회의 보살핌은 곧바로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에 대한 보살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여성친화적인 교회를 수립하는 일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 “죄는 반대, 죄인에겐 자비”
주제발표에 이어 마련된 패널 토의 시간에는 생명윤리위 위원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원장)를 비롯해 유주성 신부(수원교구 사무처 차장), 김수정(루치아·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유혜숙(안나·대구가톨릭대 인성교육원 교수) 총무가 패널로 나섰다.
정재우 신부는 “‘죄에 대한 반대, 죄인에 대한 자비’가 교회의 기본 정신”이라며 “낙태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신부는 “낙태와 관련해 교회가 관심 기울여야 할 부분은 성과 생명의 잉태,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신부는 “「생명의 복음」 59항에서도 명시적으로 여성에게 낙태하도록 압박하거나, 임신 문제에 여성을 홀로 내버려 두는 아기 아버지의 책임을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명에 대한 책임은 성에 대한 책임과 분리될 수 없다”며 “남성에 대한 교육, 아들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유혜숙 총무도 “국가와 교회는 낙태한 여성을 위해 정책·사목적으로 지원해야 하지만, 낙태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선 죄로 평가한다”며 “죄인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가 행한 행위 자체가 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 고통받는 이들 예수님 마음으로 안아줘야
이날 유주성 신부는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생명의 복음”이라며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이 생명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신부는 “처녀의 몸으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낳으셨던 성모님의 두려움과 고통, 그 곁에는 양부로서 아기를 지키고 양육하신 요셉 성인의 용기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유 신부는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 겪는 이들이 많다”며 “그리스도인은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꼭 안아줘야 한다”고 했다.
김수정 교수 역시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어머니가 출산을 통해 축복받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할 책임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며 “엄마는 아이의 영혼과 육체가 자랄 수 있도록 양분과 보살핌을 제공해 주는 베이스캠프이자,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언제든지 올려다보면 갈 길을 인도해주는 밝은 별”이라고 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적 시각”
이날 생명윤리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교회의 낙태 담론과 미투 논란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며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낙태를 해선 안 된다는 게 교회의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생명윤리위 총무 이동익 신부도 “생명윤리위는 사회에 생명이 꽃피는 문화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활동해왔다”며 “가장 큰 목표는 사회에 생명 존중 의식을 드높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신부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적 시각이고, 복음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는 생명”이라며 “스스로 복음적 시각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 신부는 “생명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때문에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