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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기름유출 피해 입은 태안군을 가다(가톨릭 신문)

관리자 | 2008.12.15 22:06 | 조회 4390

 


[가톨릭 신문 2007.12.23 주일]
사진설명
▲무릎까지 찬 기름을 양동이로 쉴새없이 퍼내고 있지만 오늘내일 끝날 일이 아니다. 군인들이 태안군 기름유출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흰색 작업복)와 자원봉사자들이 태안군 소원면 기름제거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르포] 기름유출 피해 입은 태안군을 가다
재앙의 땅에서 ‘희망’을 퍼올린다

태안본당 피해신자만 400여 명…한국교회 관심·지원 시급
지역민·군인·자원 봉사자 등 10만여 명 기름제거에 구슬땀
“복구하는데 몇 년이 더 걸릴지…” 주민들 생계걱정에 막막

2차선 도로는 원유 폐기물을 실은 육중한 화물차와 군용트럭으로 가득하다. 기름때 절은 옷차림의 노인들이 갓길을 따라 해변으로 향한다. 그늘진 얼굴에 발걸음도 힘겹다.

‘국민여러분, 도와주세요’, ‘바다를 살려야 우리가 산다’,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도움이 희망입니다’

도로 곳곳에 나부끼는 현수막은 태안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준다.

노을 지는 만리포 앞바다 사진을 담은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쯤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꽃과 바다, 태안’은 검은 기름과 사투중이다.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 작고 예쁜 해옥으로 유명해 전시관까지 있던 이곳도 기름의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해안가 그 많은 돌은 온통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반짝 거리는 모든 게 기름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앞이 캄캄합니다.”

해변에서 만난 박광일(레미지오.50)씨는 바다 멀리 떠 있는 유조선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박씨는 벌써 열흘째 어촌계 계원들과 함께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만리포나 천리포 등 비교적 잘 알려진 해수욕장은 자원봉사자들이 많아 작업이 빠르지만 이곳은 봉사자 발길도 뜸하다. 절벽과 높은 파도로 작업도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바위에 달라붙은 기름을 닦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인천에서 작은 슈퍼를 하던 박씨는 IMF로 장사가 힘들어지자 2001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 왔다. 어촌계에서 하루 바지락 60kg를 수확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바다는 열심히 일한 만큼 보답을 줬다. 아내가 경운기 사고로 장애를 입는 아픔도 있었지만 김씨는 그래도 거짓말 하지 않는 바다에서 땀을 흘렸다.
이번 사고는 날벼락이었다.

“바지락이며 낙지 모든 게 씨가 말랐으니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마땅히 이사 갈 곳도 없으니 공사판에서 막노동이라고 해야 할까 봐요.”

딱히 보상받을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돌아서는 박씨의 어깨가 무거워보인다.

흔한 수해조차 없었던 축복의 땅 태안이 재앙의 땅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인재(人災)여서 더욱 말문이 막힌다. 해안가에서 바다를 은행삼아 살다가 기름 유출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박씨와 같은 신자가 태안본당에만 400여명에 달한다.

기름유출 사고가 난 후 열흘이 지난 12월 16일까지 지역주민과 군인, 자원봉사자 등 10만 여 명이 태안 해안지역 곳곳에서 기름제거에 안간힘을 썼다. 바다와 모래사장이 제 색깔을 찾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는 여전히 기름 웅덩이다.

소원면 구름포해수욕장 옆 기름 제거 현장. 승용차가 접근할 수 없어 군용 지프차로 바꿔 타고 이곳을 찾은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복구에 한창인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내내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릎까지 찬 기름을 양동이로 퍼내고 있지만 오늘내일 끝날 일이 아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손으로 퍼내고 닦아내는 방법만이 유일하니까요.”

태안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기름 찌꺼기를 모두 없애고 바다를 숨 쉬게 할 생명체들이 다시 보금자리를 트도록 하는 것뿐이다.

난데없는 인재로 힘겨워하고 있는 태안본당 공동체와 지역주민을 위해 교회의 관심과 따뜻한 지원이 절실하다.

◎교회 기관 단체 봉사활동 동참

기름 제거·배식 봉사하며 피해 주민 위로

‘두 손 놓고 바다만 바라볼 수 없다. 다시 살리자’

12월 14일 오후 만리포해수욕장 공터. 태안본당 신자들과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수도자들이 군 막사에서 간식 준비에 한창이다. 본당은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적립해뒀던 2000 만 원을 긴급 투입해 매일 오후 떡국과 사발면을 군인들에게 배식하고 있다.

본당 신자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기름제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아들 같은 군인들에게 따뜻한 국물이라도 대접해야 했다. 태안본당의 나머지 신자들은 군인들과 함께 해변에 나가 기름을 제거하는 데 나섰다.

만리포 북쪽 의항리해수욕장에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빨간밥차가 떴다. 12월 11일 새벽 투입된 빨간밥차는 이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아 복구에 차질을 빚었던 소외 지역을 찾아 큰 호응을 얻었다. 당초 200명 분 식사를 준비하려 했던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측은 식사 때마다 500명 이상의 봉사자가 몰리자 밥을 두 세 번씩 하며 기름제거 활동을 측면 지원하는 데 힘썼다.

빨간밥차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태안본당 성모회장 권영숙(로사리아)씨는 “미약한 활동이지만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희망을 잃은 이들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교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대전교구를 비롯해 서울.대구.의정부교구 각 본당과 기관 단체가 현장을 찾아 봉사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검은 바다 애타는 어심(漁心)을 달래 줄 나눔의 발걸음은 지금도 서해 바다를 향하고 있다.
[가톨릭 신문,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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