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나의 사목 모토] 33.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1991년 서품)

관리자 | 2008.12.15 22:08 | 조회 4682

 


[나의 사목 모토] 33.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1991년 서품)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 14)

중고등학교 시절 사제의 꿈을 키우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치셤 신부님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좇아 추기경에까지 이르는 동료 밀리와는 대조적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정의롭게 신념을 지키다가 부당한 오해와 불이익을 당한다. 그는 결국 밀려나다시피 중국으로 가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직, 믿음과 성실함을 잃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온갖 역경을 이겨낸다.

‘천국의 열쇠’를 읽으면서 주인공과 같은 사제로서 살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솟아올라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성인전, 소설, 영화에서 이런 사제의 모습을 접할 때 마다, “왜 굳이 어려운 삶을 택하려하는가”라는 의심으로부터 “이런 삶이 더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다”라는 확신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과 부르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제품을 앞두고 치셤 신부님과 같은 겸손, 헌신, 사랑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정한 성구는 바로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과 함께 남겨주신 말씀이다. 죽음을 앞둔 스승이 마지막으로 제자의 발을 씻겨주신다. 지극한 겸손과 섬김의 태도, 헌신과 사랑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예수님을 닮고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 싶은 것은 모든 사제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사제들의 독선과 권위의식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발을 씻어주기 보다는 예수님의 권위를 등에 업고 대접받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가끔 보기도 한다. 내가 게을러지고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과 정신, 또 그분을 닮은 사제 치셤 신부님을 기억하기를 다짐해본다.

박정우 신부
가톨릭 신문, 2007. 01. 01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