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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피해자 가족 김기은씨

관리자 | 2008.12.15 22:08 | 조회 4671

 

 


▲급작스런 딸의 죽음에 신앙마저 포기하려 했던 김기은씨. 그는 살인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며 사형반대를 외치고 있다.

살인 피해자 가족 김기은씨


“‘널 용서한다’ 말하고 싶은데…”
딸 죽음에 좌절했지만 ‘용서’ 의미 깨달아
피해자 가족 위로하며 사형반대 운동 동참

“안녕하세요? 저는 김기은 마리안나입니다. 2005년 10월 1일은 저희 딸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결혼하려고 했던 남자친구로부터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 남자아이도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세계 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서울 명동성당에 김기은(마리안나·60)씨의 사형반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영철 살인사건으로 가족 셋을 잃은 고정원(루치아노·64)씨의 사연과 김씨의 호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아프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큰 목소리로 그가 사형반대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5년 10월 1일

2005년 10월 1일. 김씨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의 집안형편 문제로 인해 잦은 다툼이 있던 딸.

그 후 핸드폰을 잘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6년간 사귄 남자친구는 먼저 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3주 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딸이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 것이다.

“‘무슨 일이기에 차가 두 대씩이나 가나?’하고 창밖을 내다봤어요. 그 차가 바로 제 딸과 그 남자아이를 실으러 온 차인 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요…. 지금도 전 앰뷸런스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방망이질을 칩니다.”

그날 신문에는 ‘변심한 여자친구 흉기로 살해 후, 인근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녁을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를 나눴던 딸이 싸늘한 주검이 됐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딸의 죽음 후 김씨는 변했다. ‘하느님은 없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하느님이 있다면 우리 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자주 가던 성당도 멀리하고 안방에 고이 모셔놓았던 성모상도 창밖으로 던지고 싶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딸 곁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죽은 남자아이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왜 죽였냐고, 너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빈소가 있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내 딸은 죽지 않았다고, 그 가족을 붙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빈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은 ‘그 가족들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가슴에 딸을 묻고

“어느새 제 발걸음은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어요. 밤새 베갯잇에 눈물을 뚝뚝 떨구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지요. 새벽미사라도 참례해야 주님의 손으로 이 찢어지는 가슴이 어루만져질 것 같았거든요.”

그는 이제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 두 개의 초를 켜고 기도를 청한다. 착하고 예쁘게 엄마 곁에 있어줬던 딸과 가난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그 남자친구를 위해서다. 50일 연미사도 함께 봉헌했다.

“원망하고 따져 묻기도 하고 싶지만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원망을 하더라도 그 아이가 살아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이제 내가 너를 용서한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도 그 아이가 없으니까요.”

딸을 죽인 남자친구가 자살했으니 김씨의 용서가 비교적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용기를 내 이러한 사연을 털어놓고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형은 피해자의 마음을 결코 풀어주지 못합니다. 상대가 있어야 화풀이도 하고,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 그 상대가 없습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자식의 죽음을 지켜본 부모의 입장에서 그 뼈저린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사형을 하면 사형수, 그 부모들도 나 같은 생활을 합니다. 쓰라린 고통과 눈물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해요. 어느 부모가 사람을 죽이라 하겠습니까. 저는 그 남자아이의 부모를 만나 부둥켜안고 울고 싶은데 만나주지를 않습니다.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아요.”

사형반대, 딸과의 약속

김씨는 최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이영우 신부)에서 여는 ‘살인 피해자 가족 피정’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그는 딸의 마음을 만났다.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엄마, 아빠가 잘 살다 오기를 바라는 딸의 마음’을 말이다.

“딸의 마음을 듣고 전 약속했어요. 이 사회의 많은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용기를 나누는 일을 할테니 응원해달라고요. 엄마, 아빠가 아프고 힘들었던 것처럼 더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요.”

김씨가 덧붙였다.

“주님, 당신은 알고 계시지요. 그 고통을…. 사형반대를 계속 외칠 거예요. 그리고 제 마음 속에 살아있는 딸, 요안나와 함께 기쁘게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꼭 행복하게 만날 거예요.”

가톨릭신문, 기사입력일 : 20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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