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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기획] 과학자들, 종교를 이야기하다

관리자 | 2008.12.15 22:07 | 조회 5008

 

 


▲사진설명: 김승호 박사, 윤지섭 원장, 국일현 박사, 정광화 박사

[좌담 기획] 과학자들, 종교를 이야기하다
과학은 ‘하느님 진리’ 앞에 겸손해야



과학자들 사명은 ‘더 나은 삶’ 위한 발견
‘한계’지닌 과학에 ‘절대화’의 근거 없어
신앙은 ‘믿음’으로 성립…‘증명’ 무의미

이 세상 ‘신비’는 하느님 없이 설명 불가능
과학은 하느님 창조하신 세상 ‘기적’ 연구
신앙-과학 종착점은 둘 다 ‘인간행복 추구’


‘과학 읽기’ 붐이다. 지난해 각 대형 서점 베스트 셀러 순위에는 어김없이 리처드 도킨스, 리처드 파인만, 칼 세이건의 저술들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어려운 과학을 대중적 차원에서 쉽게 풀어쓴 국내 저술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동시에 과학과 종교의 상관 관계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최근 저술‘만들어진 신’은 철저한 무신론을 표방,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학은 종교와 화해할 수 없는 것일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신은 과연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문제를 놓고 가톨릭 신앙을 가진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주제 : 과학 그리고 신앙
▨ 일시 : 12월 19일
▨ 장소 : 대전 대흥동 가톨릭문화회관
▨ 사회 : 윤지섭(요셉) 원장.
‘신앙 수학 피정’ 전문 강사. 수학전문학원 원장, ‘신앙의 눈으로 본 수학- 파스칼의 내기’(가톨릭신문사) 저자.
▨ 좌담 참석자
- 물리학 분야 : 정광화(소피아) 박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APMP(아시아태평양 측정표준협력기구) 의장
- 화학 분야 : 김승호(바오로) 박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장.
- 금속공학 및 핵물리 분야 : 국일현(그레고리오)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한국방사선 산업학회장.

과학과 신앙, 만날 수 없는가?

▲사회자(윤지섭 원장) : 최근 무신론을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종교가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학과 신앙은 과연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일까요.

▶정광화 박사 :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은 가톨릭 수도자들에 의해 토대가 쌓이고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을 과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뉴턴 자신은 한번도 자신을 과학자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뉴턴은 스스로 신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역대 교황님들도 과학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과학과 신학, 과학과 종교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일현 박사 : 말은 앞만 보고 달립니다.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면에서 말처럼 아주 좁은 세계에 묻혀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과학자라고 해서 전부 아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전공한 아주 작은 부분만, 그것도 단편적으로 알 뿐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스티븐 호킹은 ‘시간은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보이는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과 산 밑에서 보는 산은 다릅니다.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신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김승호 박사 : 국박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많은 이들이 ‘발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은 원래 있는 것을 ‘발견’할 뿐입니다. 자연이라는 창조물에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발견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모든 생물은 스스로의 미래의 삶을 ‘추구’합니다. 인간이 발견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사명이 이처럼 더 나은 인간 삶을 위해 ‘발견’에 몰두하는 것이라면, 진정한 더 나은 삶이 과연 무엇인지 종교적으로도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인간이 이미 주어진 여러 법칙에 입각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 하느님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과학적 법칙 중 하나가 아닐까요.

과학의 존재 의미

▲사회자 : 과학의 한계와 종교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학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일현 : 물론 과학은 우리 생활의 수준을 크게 향상 시켰습니다. 문제는 잘못하다간 과학을 절대적으로 우상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적 결과물이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일 수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넓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물 입구로 보이는 세상의 변화만 단편적으로 알 뿐입니다. 과학은 인간에게 세상의 법칙과 이치에 대해 단편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뿐입니다. 진정한 삶과 세상의 의미는 하느님으로 부터만 나옵니다.

뉴턴의 법칙은 거시적(우주적) 관점에서는 옳지만 미시적(원자상태의) 대상에서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많이 수정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법칙’이라고 믿고 있는 이론들도 언젠가는 틀린 것으로 판명 날지도 모릅니다. 현재 그 어느 과학자도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의 과학도 200년 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절대화할 근거가 없어집니다. 하느님이 바로 진리입니다. 과학은 이제 진리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 과학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김승호 :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실험하고 측정하고 증명해 내는 자신의 영역에서 충실해야 합니다. 인간이 성령의 도움에 의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명확한 ‘경험적 사실’입니다. 과학이 이 경험에 반기를 들고, 그 삶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인간성이 사라집니다. 과학은 자만해선 안됩니다. 과학은 불과 같습니다. 너무 가까이 하면 뜨겁지만 멀리하면 춥습니다. 신앙과 과학의 관계도 그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광화 : 과학은 ‘측정할 수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과학의 차원에서 볼 때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자기 현상은 지구가 탄생할 당시부터 있었지만, 인간은 불과 200년 전인 1800년대에 발견했습니다. 이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은 이 발견을 이용해 전기, 컴퓨터 등을 만들었고 지금의 눈부신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200년 전 인간이 전자기 현상에 대해 몰랐던 것 처럼, 앞으로 200년 후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발견해 낼 지도 모릅니다. 과학은 이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신앙은 ‘측정’과 ‘객관적 실험’의 결과가 아닌 ‘믿음’으로 성립합니다. 문제는 과학적으로 아무리 신앙을 증명해 보인다고 해도 ‘믿음의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존한 당시에도, 예수님을 보고서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에 따라서 당신을 내보이신 방법을 다르게 하셨던 것 아닙니까.

어떤 뛰어난 과학자가 신의 존재 증명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역시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이 신앙에 도움이 되느냐 혹은 아니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이용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조화

▲사회자 :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 종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과학과 종교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그 접합점은 무엇일까요. 갈릴레오 이후 과학과 종교는 지금까지 긴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과연 가능할까요. 과학과 종교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국일현 : 신앙은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입니다.

과학도 검증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경험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창조하신 하느님도 진리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 아닙니까. 과학도 진리를 추구합니다. 과학도 당연히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망망대해 우주에서 점 하나 보다 작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지구를 사과로 비유하면 인간이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은 사과 껍질 두께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신비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정광화 : 과학의 순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정신병이 있는 사람을 마귀나 악마의 자녀로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으로부터 천벌을 받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아주 잔혹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이들이 마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을 가진 이들은 이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 후, 200년 후가 되면 지금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는 것을 과학의 발전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 논란

▲사회자 : 최근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복제나 배아줄기세포 연구 등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호 : 한국사회는 서양과 달리 아이가 태어난 후 100일에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이 참 묘합니다. 정자와 난자의 착상 후 1년이 지난 시점이 바로 100일 잔치를 할 때입니다. 우리 조상 선조들은 생명의 기원을 정자와 난자의 착상 때부터로 인식한 것이지요. 이점에서 우리 민족은 하느님을 알기 전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생명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 단백질 분야를 전공한 학자입니다. 한 세포를 들여다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세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하느님의 섭리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됩니다.

400미터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선수들의 출발선이 모두 다릅니다. 공정한 출발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200미터를 돌아선 후에는 동일한 조건에 의해 선수들이 한군데로 뭉쳐지게 됩니다. 이때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DNA도 마찬가지 입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조합을 하는데도 수천 수만 수억의 ‘경우의 수’가 생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우연성 조차도 철저히 준비되고 기획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생명의 다양성은 바로 이 철저히 준비된 기본 시스템과 우연성에서 나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놀라운 일입니다.

과학자가 바라보는 ‘종교’

▲사회자 :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과학을 전공한 신앙인으로서 종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

▶국일현 :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에너지는 태양에서 옵니다. 태양은 핵융합에 의해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과학자들은 태양이 어떻게 핵융합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지구에 전달하고, 지구는 또 그 에너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명이 생장해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를 모릅니다. 이처럼 놀라운 우연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선, 우선 태양과 지구가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야 하고, 또 태양이 적당한 에너지를 보내야 하고, 지구 생명체들 또한 정교한 작용을 통해 에너지 대사를 해야 합니다. 신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인간이 호흡할 산소를 배출하고, 초식동물에게 영양소를 제공하는 등의 자연법칙은 철저한 조화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신이 없다면 이 모든 일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소년들이 과학에 흥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기적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김승호 : 정신지체 아이들을 보면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항상 웃기 때문에 암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신지체가 아닌 이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암에 걸립니다.

우리는 자칫 정상인을 자부하면서 정신지체 장애인을 손가락질 하는 것은 아닐까요. 과학을 공부하고 똑똑한 체 하면서 정작 자신은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요. 생명에 대한 존중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시점입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과학이어선 안됩니다. 한 개체에 대한 생명 뿐만 아닙니다. 세포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숨결이 녹아있습니다.

▶정광화 : 문제는 오늘날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좁게는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는 과학자들, 넓게는 모든 과학자들)은 모두 과학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밖에 있는 이들(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 과학을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사회 :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과학과 신앙이 추구하는 도착점은 어쩌면 같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니까요. 지금까지는 과학과 신앙이 평행선을 달려온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 좌담이 과학을 신앙적 관점에서 보고, 신앙을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 신문, 2008.1.1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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