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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인터뷰] 가톨릭의대 맹광호 교수(생명위원회 학술연구위원회 위원)

관리자 | 2008.12.15 22:24 | 조회 4662


■ 맹광호 교수(생명위원회 학술연구위원회 위원)는
1943년 2월 서울 출생인 맹광호 교수는 1968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예방의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보건대학원 연구원을 거쳐, 하와이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와 의과대학 교무처장, 대학본부 연구 및 국제협력조정처장, 의과대학장, 보건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청소년위원회 청소년 건강자문위원장, 유네스코 국제 생명윤리위원회원,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인터뷰] 지난달 정년 퇴임한 가톨릭대 의대 맹광호 교수

“받은 은혜 나누는 삶 살고 싶습니다”



100여 개 넘는 직책 맡아 봉사의 삶 실천
40년간의 가르침 갈무리… 수필가로 새 삶

맹광호 교수(이시도로, 65,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이력서를 단숨에 읽어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처럼 호흡이 짧은 사람은 읽다가 숨이 막힌다. 현재까지도 맹교수가 관여하는 단체는 그 숫자도 숫자지만 다양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지역보건사업 자문위원장,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부회장, 한국청소년상담원 이사, 보건복지부 금연사업지원단장, 아시아가톨릭의사협회 회장, 국제가톨릭의사협회 아시아지역 부회장,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임기를 마친 활동까지 더하면 100여개 직책을 웃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 자리욕심에 매달린다거나 혹은 천성적으로 부지런해서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그 동안 대통령표창을 두 번씩이나 받았고, 우리 사회는 무수히 많은 공로상과 감사패로 그의 노고를 기렸다.

맹교수는 지난달 22일 정년 퇴임식을 가졌다. 그는 이날 의대와 병원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교육인적부장관표창을 받아 긴 이력서에 또 한 줄을 더 했다. 가톨릭인터뷰가 찾아간 2월 21일. 맹교수는 코앞으로 다가온 정년 퇴임식을 앞두고 교수 연구실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에서 조교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68년 3월입니다. 정년퇴임을 2008년 2월 말에 했으니, 꼭 40년을 이곳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며 살았네요”

‘가대 의대맨’으로 인생의 삼분의 이를 보냈으나, 맹교수가 가톨릭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이 있었다.

그는 196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와 육군사관학교에 나란히 합격했다. ‘문학도’의 길을 걷고 싶었으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을 고려해 육사로 진학했다. 그러나 ‘군인의 길’은 스스로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결국 수개월의 고민 끝에 육사를 나와 가톨릭대 의대로 전향했다. 본래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가톨릭대 진학과 함께 천주교로 개종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의사의 길을 가게 됐는데 그리 기쁘지 않습디다. 그 많은 학비는 도대체 어디서 마련해야 하나가 늘 걱정이었죠. 결국 의대 6년 중에서 4년을 가정교사로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웃으면서 회고하는 그의 표정에 당시 어려웠던 고학생 시절이 얼핏 떠오르는 것 같다. 하긴 그이라고 아픔이 없었을까.

어렵게 의대 공부를 마친 맹교수는 다시 한 번 인생의 큰 기로에 마주서야 했다. 임상의를 마다하고 대부분의 의과대학생들이 외면하는 예방의학을 선택한 것이다. 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는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물론 주위 선배들, 동료들 모두 만류했죠. 임상의사가 되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그것도 예방의학을 전공 하느냐고 말입니다”

197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1979년부터는 하와이대 보건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예방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선택은 빛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길에 들어서면서 미국이나 영국, 일본처럼 예방의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십 수 년 전부터 맹교수는 예방의학의 실천적 활동인 대국민 금연운동과 국민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매진해 왔다. 1988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발족시켰고, 이후에는 범국민 금연운동본부장도 맡았다. 청소년 흡연예방교육을 포함한 청소년 건강 및 약물예방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며 청소년 보호를 위한 자문과 현장 활동도 펼쳐왔다. 본지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며 생명윤리 교육 및 생명의료윤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해왔다.

맹교수는 ‘가톨릭대 의과대학 진학’과 ‘예방의학 선택’에 이은 인생의 세 번째 큰 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그는 시간을 쪼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고 싶고, 외국어도 하나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기회가 허락된다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양과목 차원의 ‘건강과 생명가치’에 관한 강의도 펼칠 계획이다.

무엇보다, 젊은 시절 꿈꿔온 ‘문학도’의 길을 늘그막에 걸으며 아름다운 글들을 많이 써보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표이자 꿈이다. 맹교수는 지난해 5월 수필 전문 문예지 ‘에세이 플러스’가 실시한 제13회 수필 공모에서 신작 수필 ‘남한산성’이 당선되며 수필가로 정식 등단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시나이까?’(시편 8, 5)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바로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았던 ‘그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주시기만 했습니다. 이젠 그 받은 것들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으레 환갑이 넘으면 쉬고 싶어 쉬는 게 아니라 억지로 쉬게 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그러나 65세 정년을 다 채우는 것도 모자라 은퇴 후에도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맹교수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약관 청년의 열정이 느껴진다.

인터뷰를 마치며 맹교수가 책 두 권을 기자에게 선물로 건넸다. 그가 정년퇴임을 맞아 펴낸 수필집 ‘동전 한 개’(선우미디어)와 의학칼럼집 ‘건강가치 생명가치’(도서출판 홍진)다.

은퇴 후가 더 바빠질 것 같다며 엄살(?)을 피우면서도, 기자가 주제를 바꿔 수필집에 대해 질문을 건네자 그는 문학청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역시 ‘꿈’은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곽승한 기자 paulo@catholictimes.org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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