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성탄르포] 외국인 미혼모시설 생명의 집

관리자 | 2011.12.26 11:13 | 조회 5962

[성탄르포] 외국인 미혼모시설 생명의 집

세상 편견·눈초리에 맞서 ‘새 생명’ 택한 이들 아무런 조건없이 미혼모

 

도와주며 생명 살려 정부 지원 받지 못해 후원만으로 어렵게 운영

 
가톨릭신문   2011-12-25   [제2776호, 1면]
 

 

■ 2000여 년 전, 어느 미혼모 이야기

 

만삭의 여인이 있다.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에서 온 이 여인은 혼인 전에 이미 아이를 가진 미혼모였다. 지금은 남편이 곁에 있지만 미혼모인 사실이 알려졌다면 언제 돌에 맞아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혼모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여인은 새 생명을,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가족들 품에서 새 생명을 맞이해야 했을 이 여인은 고향땅에서 100km나 떨어진 베들레헴, 그것도 마구간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

 

용인 장평리의 생명의 집. 집 한편에서 아기의 옹알이 소리가 들렸다. 생후 4개월 안드레의 목소리였다. 인도네시아 출신 미혼모 와티(가명·39)씨의 아이인 안드레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와티씨가 키울 수 없어 인도네시아의 친정으로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안드레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엄마의 품마저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미혼모에게 태어났다는 이유뿐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안드레는 행복한 편이다.

 

모진 수난 끝에 미혼모의 품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갈 곳이 없다. 미혼모의 대부분은 아기를 키울 여건도 경제적 여유도 없다. 가족이라도 있으면 도움을 청하겠지만 외국인들에겐 그마저도 어렵다. 이집트로 피신한 아기 예수님에겐 성모님과 성 요셉이 있었지만 현대의 아기 예수님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결국 갈 곳 없는 아기들은 입양기관에 맡겨진다.

 

하지만 입양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나라의 입양문화는 발달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꺼리는데 최근 저출산현상으로 해외입양이 점차 제한되고 있어 입양기관마다 아이들이 넘치고 있다. 그나마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도 ‘키우는 재미가 있다’, ‘상속문제 걱정이 없다’, ‘시집보내면 소명이 끝난다’ 등의 이유로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남아의 경우 두 돌이 지나도록 입양대기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교회는 낙태가 죄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죽음의 문화에 물든 사회는 미혼모에게 낙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낙태는 한 해에 34만 건, 그 중 14만 여 건이 미혼모 여성의 낙태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정부는 해마다 1만2000여 명의 미혼모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새 생명의 탄생을 선택하는 미혼모는 불과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새 생명을 선택하는 미혼모들에게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 불확실한 장래 등의 이름을 지닌 ‘보이지 않는 돌’을 던진다.

 

이런 어두운 세상 속에서 처녀의 몸으로, 미혼의 몸으로 예수라는 이름의 새 생명을 선택했던 성모님의 결심에 동참하는 미혼모들을 위해 1991년 10월 생명의 집(원장 양 이다마리아 수녀)이 설립됐다.

 

새 생명을 기다리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성모님들이 무사히 또 다른 아기 예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고 있는 생명의 집은 다른 미혼모시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일단 장소부터가 외졌다. 생명의 집 설립 초창기에도 함께해 지금은 원장을 맡고 있는 양 이다마리아 수녀는 지금은 도심에도 미혼모시설이 점차 들어서고 있지만 생명의 집 설립 당시엔 지금보다도 모진, 세상의 뒤틀린 시선을 피해 미혼모들이 이런 시골로 숨어들듯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생명의 집 풍경이 다른 미혼모시설과 다른 이유는 달리 있다.

 

기도시간. 6명의 미혼모들이 성모자상 앞에 모였다. 모인 이들의 절반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인 미혼모들이었다. 서툰 발음으로 혹은 묵묵히 손을 모아 성모자상 앞에서 기도하는 미혼모들은 국적도 종교도 서로 달랐다. 다만 새 생명의 탄생을 선택했다는 숭고한 이유 하나만이 이들의 연결고리였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에겐 새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외국인이 아이를 갖는 경우 대부분 혼인신고는커녕 상대방이나 그 가족이 낙태를 강요하거나 도망가기 급급하다. 또 다문화가정의 경우 팔려오듯 결혼하고 이혼당하거나 이혼도 하지 않은 채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낯선 타지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경제력도 없는 외국인 미혼모들에게 돌아오는 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비난의 손가락질뿐이었다.

 

최근에는 각지에서 미혼모와 그 아이를 위한 시설이 늘어나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혼모시설에서 외국인을 받게 되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외국인 미혼모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생명의 집은 정부의 지원을 포기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새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외국인 미혼모들을 택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생명의 집은 후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하는 산모들은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수녀회가 활동하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의 도움으로 70%의 할인혜택을 받고 있지만 건강보험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경우 이마저도 상당한 금액이다. 또 건강을 위해 보다 영양가 있는 식단을 준비해야 하지만 이 또한 경제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20여 년의 역사 속에 작으나마 생명을 살리는데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은 상태지만, 더 많은 나눔의 실천이 절실한 상황이다.

 

 

■ 우리 시대의 미혼모 이야기

만삭의 여인이 있다. 혜정(가명·23)씨는 나이도 어리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아이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이미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아이의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에 계속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새 생명을 선택했다. 고향땅에서 100km도 넘게 떨어진 ‘생명의 집’에서 새 생명을 기다리고 있다. 미혼모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이 세상에서 부모도 아이의 아버지도 알아주지 않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겠다고 결심했는가 물었다. 그리고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결심이랄 것까지도 없어요. 백 번을 생각하면 답이 나와요.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아기는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생명의 집 미혼모들이 함께 바친 삼종기도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후원 670101-01-438448 국민은행(예금주 생명의집)

※문의 031-334-7168 생명의집

 

- 생명의 집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다.
- 생명의 집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새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외국인 미혼모들을 돌보고 있다.
- 이시도라 수녀(생명의집 사무국장)의 품에 안겨 있는 안드레.
< 이승훈 기자 >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