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생명복제, 언제까지 관망하고만 있을텐가

관리자 | 2008.12.15 22:44 | 조회 5233

 

 


▲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책표지

[서평] 정혜경의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인류 문명의 진보는 끝도 없이 발을 굴리며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인류는 불을 발견했고, 또한 날 수 있는 기계도 만들었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우주에서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인류는 결국 많은 것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불가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생명 복제, 복제 인간의 탄생이 그것이다.

남자의 체세포와 여자의 난자를 채취해서 대리모 자궁에 착상한 후 탄생시키는 이 복제인간 문제는 그동안 숱한 학자들과 언론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그 우려가 제기되었다. 예컨대 책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1998년 영화 〈가타카〉의 상황이 그러하다. 빈센트의 부모는 클리닉을 찾아가 유전적으로 완벽한 그의 동생을 만들려고 한다.

영국의 유명 록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가 2000년에 낸 음반 〈KID A〉역시 복제인간이 판치는 세계를 디스토피아 분위기로 다룬다. ‘복제 인간들의 그 낙천주의란/그들의 특성은 시장원리에도 적용되었지/경제 침체기에 튀어나온 이 괴물은 인건비를 떨어뜨리고/가축의 사료로도 전락하여/동물 농장에서 살게 되지’(Optimistic)라는 가사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의 정체성이나 인권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앨범 첫 번째 곡인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에서는 모든 만물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며 짐짓 무게를 잡고 읊조리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이랴. 수없이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커다란 벽을 세워놓으며 복제에 반대해왔다.

하나 같이 판에 박힌 비판을 하고, 그렇고 그런 두려움을 표출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의견이 사실처럼 둔갑하고, 예측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제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복제인간 문제를 그저 무서워하고 기피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생명공학 기술과 관련된 예측에는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라는 개념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생명에 관한 인간의 개입이 초기에는 부분적으로만 허용되더라도 점차 그 범위가 늘어나면서 마침내는 전면적으로 허용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안타깝겠지만 생명공학 시대의 기술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발전을 거듭해나가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세계 최초로 시험한 아기와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혼합 배아의 사용을 허용해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이미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외면한다고 해서 다 되는 시대는 저물었다. 생명공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뒤흔드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바로 사람들이다. 아직도 인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시각 제시하는 생명공학 시대의 윤리 찾기

책은 초반부 〈가타카〉를 비롯한 그동안 회자되어 온 SF 영화는 물론, 다양한 상황 제시를 통해 알기 쉽게 생명공학 시대의 문제점을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생물학사를 전공한 사람이기 이전에,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으로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과학 도서이지만 복제라는 중대한 사안을 다양하게 다루기 위해 철학, 윤리 등의 문제도 살펴본다.

또한 어느 한 쪽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인간성 훼손이나 경제적 문제로 인한 계급 사회 발생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줄기 세포 등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병의 치료가 가능해지고 더 넓은 세상으로의 통과라는 긍정적인 측면 역시 놓치지 않는다.

책은 실제로 철학(정체성), 세계관(자연의 조화), 의료윤리(희생), 제도관리(통제가 대안인가), 사회정의(민주주의에의 위협) 측면 등 다양한 시각에서 찬반론을 골고루 제시하며 쉬우면서도 넓고 깊은 수준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구성 또한 다채롭다. 우화 소개는 물론이거니와 가상 인터뷰(각 의견 대표자)를 실어 흥미를 유도하고, 생명공학 관련 과학 개념 또한 쉽게 설명해준다. 때문에 청소년 논술 교양 도서로 봐도 무방하고, 교육 목적이 아니더라도 흥미차원으로라도 어느 정도 볼 가치는 있다.

물론 아기의 잉태에 과학기술이 개입하는 것에 우려가 없을 수는 없다. 태어날 복제아기의 정체성 문제, 인간이 인간을 만든다는 신과 자연에 대한 도전, 경제적 격차로 인한 계급 시대(복제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등은 충분히 검토해야할 부정적 영향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고려하고 대화해서 개선하거나 극복해내야 할 사안이지, 당장 외면하고 짐짓 읊조리면서 무작정 비판한다고 해결될 종류의 일은 아니다.

변화는 이미 우리의 앞에 왔다. 이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세계와 문명의 변화는 거침없이 그 질주를 계속할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은 인류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것은 핵폭탄처럼 절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디스토피아 사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견을 사실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다. 너무 많은 미디어와 사람이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미끄러운 비탈길에 선 우리의 자세


인간 정체성 문제는 이를테면 일란성 쌍둥이를 살펴본다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들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삶 위에 놓인 것은 아니다. 미래 역시 같지 않다. 과학자들은 복제 인간 문제가 일란성 쌍둥이 문제와 비슷하면 비슷했지, 결코 심한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몇몇은 똑같은 아이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을 상상하며 공포에 떨겠지만, 현재 생명공학이 연구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복제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유전자 복제는 줄기세포를 위한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아기를 갖지 못한 이에게는 또 하나의 생명을 부여하는 소중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복제 인간이 태어나더라도 무작정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또한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이나 사회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생명공학 기술이 새로운 카스트 시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적 여유에 따라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공정한 평등을 위해 기술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의 지적처럼, 무조건 막기보다는 가격하락이나 그 외 개선책을 찾아 애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복제 인간 문제는 기술의 목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패나 희생, 안정성 여부 등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된다고 해서 이미 시작된 미끄러운 비탈길의 행로를 주저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게다가 줄기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모에게 생명을 안겨주는 긍정적 측면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여러 우려와 문제점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개선해나가면 된다. 저자는 책에서 ‘가속과 제동’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의 진보를 이용할 줄 아는 가속과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는 윤리적 측면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장도 아니고 권고도 아니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일종의 제안이다. 그러니 생명공학 시대에 선 우리들의 고민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그 순간부터가 진짜다.

노윤영 (nn2u)

[오마이뉴스] 2008.11.26

-> 오마이뉴스 기사 원문 바로가기 클릭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