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가족’은 자살 막는 가장 큰 인간관계

관리자 | 2008.12.15 22:43 | 조회 4661

문화일보 <문화 초대석> “‘가족’은 자살 막는 가장 큰 인간관계


‘자살 없는…’공동성명 발표 홍 강 의 자살예방協회장

고(故) 최진실씨 등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 경제위기까지 닥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단어 중 하나가 ‘자살’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급등, 자살과 경제난이 무관치 않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올해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 따라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지 않을까 지레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0월17일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시민단체, 각계 원로들이 모여 ‘자살 없는 건강한 사회 만들기’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4일 홍강의(67)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을 만나 유독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와 그 대책에 대해 들어봤다.

―연예인의 자살은 특히 사회적인 충격을 던져줍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연예인들이 중요한 것은 일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연예인들도 자구 노력으로 삶의 방법과 대인관계 등을 배워야 합니다. 연예계 모임 등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살한 정다빈씨는 인기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최진실씨도 활동 재개 이후 힘들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연예인 활동뿐 아니라 인생과 삶에 대한 방향성, 의미, 어려움, 고초를 알려줘야 합니다. 지난번 최씨 빈소를 찾은 최불암씨가 ‘자살은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선배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가치, 의미 등에 관한 성찰이 문화운동처럼 일어나면 도움이 되겠죠.”

―최근 증권사 직원이 경제적 손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등 개인적인 이유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실제 경험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똑같이 불행한 상황이라도 모두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생을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즉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은 어려움을 감내하는 능력과 성격 등 개인의 역량이 좌우합니다. 돈의 중요성과 돈을 통한 사회의 지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실패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번에는 안 돼도 다음 기회를 보자’며 참고 견딥니다. 경제적 실패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하더라도 주위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다면 자살을 감행할 확률이 떨어집니다.”

―건강한 가정과 인간관계가 자살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가족관계가 중요합니다. 자살을 막는 가장 큰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적인 애정이 있는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적 고립이 가장 위험합니다. 관계가 이어지면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 관계를 통해 가정 붕괴를 막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회성 기술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또 사회적 관계를 맺는 능력을 부모가 길러줘야 합니다. 사회성이 부족해 외톨이가 되고 친구도 없는 그런 애들이 자라면서 위기를 겪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됩니다. 특히 우울증은 이유 불문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울한 생각을 하며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죽음을 택하기 쉽습니다.”

―자살의 원인에 개인적인 이유 외에 사회적 이유도 있습니까.

“사회적으로는 경제난 때 자살이 많아집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자살률(10만명당)이 18.4명까지 올라갔었습니다. 이후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1997년보다 더 높습니다. 사회가 물질 만능으로 흐르고 돈이 성공의 가늠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해 내면적인 가치관과 정신적인 것이 퇴조하고 개인적·물질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어떤 일에 큰 가치를 부여했다가 안 이뤄지면 실망하고 좌절해 어쩔 줄 모릅니다. 요즘은 40, 50대 중년에서도 스트레스가 커지며 자살이 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가정이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눈부시게 성장했다 할까요, 압축성장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씀입니까.

“물질적으로 발전했지만, 정신력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혼돈에 빠졌습니다. 잘살게 되면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40여년 전부터 문제가 축적되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자살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또 생명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나 태도가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조상이나 종교 때문에 자살은 절대로 안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요즘은 ‘살면 뭐하느냐’며 생명을 구질구질하게 생각합니다. 낙태도 쉽게 합니다. 애들이 즐겨 하는 게임 내용도 싸우고 죽이고 하는 게 주류입니다.”

―올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률 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2005년에 자살률이 24.7명이었을 때 피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23으로 내려갔다가 2007년에 24.8로 올라갔습니다. 사회적인 배경과 개인적 요소·능력은 서서히 나빠졌을 것입니다. 경제, 외형적인 것 외에 정신적으로 약해진 것도 문제입니다. 회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1997년 못지않은 경제위기로 도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살 방법 1위가 목매기, 2위 농약, 3위 투신입니다. 이것만 잘 관리해도 자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올해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언론, 종교에서 열심히 해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자살을 보도하는 언론의 영향과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에 미치는 언론의 영향이 큽니다. 언론은 소식을 빠르게 전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자세하고 재미있게 흥미 위주로 전달하는 면도 있습니다. 탤런트 안재환씨가 자살했을 때 연탄불을 사용한 자살 방법이 그대로 보도된 뒤, 그것을 흉내 내 자살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언론이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생명 존중감을 전달할 수도 있고, 자살을 미화해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1년에 1만200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데, 심각도가 잘 와 닿지 않아서인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진실씨 자살이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른이 돼도 대처능력이 정지하는 게 아니라 더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도 대인관계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친구를 만들고 평소에 잘해야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분노조절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정서를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조절해야 합니다. 분노는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어렵게 만들고 고생을 사서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 해결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어른이 돼서도 계속 이런 방법들을 배워야 합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교양강좌 등을 통해 어려움이 있을 때 해결하는 능력과 방법을 조언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시민단체, 각계 원로들이 모여 ‘자살 없는 건강한 사회 만들기’를 제안하셨습니다.

“자살이 심각한 국면에 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4위입니다. 네 번째로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대비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사회 전체 문제의 표시로도 봐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캠페인을 벌여야 합니다. 거기에 언론이 앞장서고, 종교계도 팔 걷고 노력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자살률이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자살은 계속될 것입니다.”

-자살예방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살을 예방하는 법입니다. 민간 정부 언론이 협력, 자살 요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자살예방센터 설립 등입니다. 전문가들도 어떻게 자살을 예방하며,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대국민 홍보로 인식을 개선해야 하며, 전문가 교육 또한 중요합니다. 연구, 정책 개발 등은 법이 통과되면 수월해질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자살 예방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나라가 있습니까.

“미국은 자살률이 12~13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8 이하로 낮췄습니다. 비결은 범국민적 전략 때문입니다. 범국민적이고 범정부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자살 문제엔 개인이나 특정 단체가 아니라, 국가가 전면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홍 회장은 누구

지난 2006년 서울대 의과대 교수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그는 현역 때보다 더 활발하게 각종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을 맡아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환기에 매진하고 있으며, 분당서울대병원과 개인 클리닉에서 소아정신과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그가 자살예방협회 회장을 맡은 이유가 궁금했다. 홍 회장은 “정신과 의사가 죽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정년퇴임 뒤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자살예방협회를 알게 돼 내가 아는 것을 봉사 차원에서 써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홍 회장은 국내 소아청소년정신의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워싱턴대 소아청소년과 전임의와 미네소타대 소아정신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79년 국내로 돌아와 서울대병원에 소아정신과 클리닉을 최초로 개설한 뒤 1980년 서울대병원에 처음으로 소아정신과를 세웠다. 국내외 학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국제적인 지명도도 높다. 그는 국내에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를 창설했고 1996년에는 아시아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설립을 주도, 1999년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2004년 국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부회장에 선출됐다.

▲1941년 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의과대(1965) ▲미국 워싱턴대 소아청소년과 전임의 ▲미국 미네소타대 소아정신과 조교수 ▲서울대 의과대 소아정신과 교수 ▲제주대 의과대학장 ▲제주대학교병원 초대병원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인터뷰 = 문성웅 사회부장 swmoon@munhwa.com

[문화일보] 2008-11-05

-> 문화일보 기사 원문 바로가기 클릭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