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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의료진이 본 김수환 추기경 마지막 159일

관리자 | 2009.02.24 09:54 | 조회 4533
의료진이 본 김수환 추기경 마지막 159일
 
인공호흡기 절대 안 돼 … 약속해 달라
의식 회복 뒤엔 웃으며 “나 부활했어”
작년 9월 입원 뒤 “절대로 나를 특별 대접하지 마세요”
 17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동(東)병동 6010호는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주인 잃은 6010호 명패에는 ‘쾌유를 빕니다’라는 글귀만 남아 있다. 병실 곳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침대에는 추기경이 쓰던 환자복과 이불이, 병실 한 켠에는 추기경의 발이 됐던 휠체어가 놓여 있다.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김 추기경의 손때 묻은 성경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방에서 주치의 정인식(소화기내과) 교수, 김영균(호흡기내과) 교수가 5개월여 동안 추기경을 보살폈다. 주천기(안과) 교수는 추기경의 안구를 적출했다. 세 명의 의사를 통해 추기경의 마지막 159일 병상일지를 기록한다.

#장면1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하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9월 11일 6010호에 입원했다. 그 전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9월 입원이 마지막 입원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김 추기경은 정인식 교수에게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말아 달라”면서 “인공호흡기도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게 “약속할 수 있느냐. 꼭 지켜 줬으면 좋겠다”고 다짐을 받았다. 정 교수와 김 추기경은 36년째 인연을 맺은 사이다. 그런데도 한 번으로 못 미더웠던지 몇 차례 다짐을 더 받았다. 존엄사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절대 나를 특별 대접하지 마세요.”

김 추기경은 두 번째 당부를 했다. 정 교수는 ‘정도 이상의 진료는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난감했다. 현행 법에 따르면 연명 치료 중단은 불법이다. 의사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정 교수는 교구청에 공증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진석 추기경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나서면서 부담을 덜어 줬다.

#장면2 세 차례의 위기를 넘기다

김 추기경이 병실에서 보던 성경이 환자복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오종택 기자]
입원 20여 일 만에 1차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4일 주말에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기관지염으로 가래가 찼고 잘 뱉어 내지 못했다. 호흡 곤란 때문에 혈액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비상 연락을 받은 김영균 교수가 가래를 뺐다. 이 상황에서도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 추기경은 의식을 회복했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활짝 웃으며 율리안나 비서 수녀에게 농담을 던졌다. “여보게, 나 부활했어.” 김 추기경은 그 후 식사를 잘했고 물리치료실까지 내려가 치료를 받을 만큼 병세는 호전됐다. 11월 초와 12월 말에도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상황은 1차 때와 비슷했다. 김 교수는 “극적으로 회복한 뒤 성탄절 미사 때 두 시간 이상 앉아 계셨는데 우리가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3차 위기 이후 추기경의 기력이 극도로 떨어졌다. 운동량이나 식사량이 크게 줄었다. 

# 장면3 새해 세배를 받다

김 교수는 1월 1일 추기경에게 세배를 올렸다.

“오래 사십시오.” (김 교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세요.”(김 추기경)

김 추기경은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덕담을 했다.

“아름다운 소녀 같아요.”(김 추기경)

“추기경님 덕분에 아름다운 소녀가 됐어요.”(홍현자 수녀)

“내가 언제 그랬나요?”(김 추기경)

김 추기경은 그날 병실을 지킨 홍현자(마리아아눈시아) 수녀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홍 수녀는 17일 “추기경님은 집에 가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 집에 한 번 가보지 못하시고 선종하신 것이 너무 마음에 아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 장면4 마지막 일주일 의연히 맞다

추기경은 선종 3주 전부터 침대에서 내려와 식사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병실에서 추기경은 수프·고기국물 등 유동식(流動食)을 주로 먹었다(김진경 수간호사).

이 병원 외과 이명덕 교수는 “추기경님이 하루에 1400∼1600㎉의 열량을 섭취하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봤다”며 “입원 초기엔 음식으로 1200㎉를, 나머지는 정맥 영양주사로 공급했는데 점차 섭취량이 줄어 300∼500㎉만큼 드셨다”고 전했다. 9일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 폐렴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15일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이때는 오른쪽 아래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기계로 가래를 뽑았지만 혈압이 떨어졌다. 산소 농도가 정상 밑으로 떨어졌고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선종 하루 전 상황이었다.

# 장면5 마지막 육성 "감사합니다”

16일 아침 김영균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이 심상치 않다는 긴급 호출을 받았다. 오전 9시쯤 6010호에 도착했다.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었다. 물이 차면 숨을 쉬기 힘들어진다. 물을 빼기 위해 이뇨제를 주사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혈압이 계속 떨어졌다.

김 교수는 ‘오늘 내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병실을 지켜온 율리안나 수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 추기경의 의식은 있었다.

“눈 좀 떠 보세요.” 김 교수는 추기경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추기경은 가늘게 눈을 떴다. 김 교수는 “많이 힘드시죠”라고 말을 이었고 추기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것이다.

김 교수는 오후 5시쯤 다시 병실을 찾았다. 의식은 가늘게 남아 있었다. 혈중 산소 농도가 빠르게 떨어졌다. 90%→80%→70%. 94% 이상이 정상이다. 오후 6시12분 추기경은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추기경은 일주일 전 “감사합니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김 교수가 들은 추기경의 마지막 육성이었다.

# 장면6 안구 기증 약속을 지키다

“추기경님이 위독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김수환 추기경이 1990년 직접 작성한 장기 기증 신청서.

16일 오후 4시 주천기 교수는 수술실에 있었다. 긴급 호출이 들어왔다. 주 교수는 우선 “급하게 안구 적출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김 교수는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곧 선종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고 말했다. 잠시 넋을 잃었다. 추기경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후 6시25분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후배 전문의 3명과 함께 급히 6010호로 올라가 잠시 대기했다. 보통 안구 적출은 전공의가 하지만 이번만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다. 20분 후 수술 세트가 도착했다. 잠시 기도를 한 뒤 집도에 들어갔다. 6개의 근육과 시신경을 절단하는 큰 수술이었다. 40분 만에 끝났다. 안구가 없는 자리에 의안(義眼)을 넣었다. 주 교수는 수술하는 동안 계속 주기도문을 외웠다. “제가 가톨릭 신자이고, 평소 존경하던 분입니다….”

주 교수는 추기경의 안구를 ‘웻 체임버(안구보관 용기)’에 보관했다. 그리고 각막을 검사했다. 각막의 신생혈관 여부, 내피세포 수치 등 이식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는지를 평가했다. 주 교수는 “추기경께서 2001년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각막 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추기경의 각막은 1주일 내에 두 사람에게 이식된다. 기증받는 사람의 기준은 없다. 순서에 따른다. “누구한테 이식될지 비밀입니다. 그것이 추기경님의 뜻입니다.”

고종관 의학전문기자·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강기헌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조인스]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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