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조선일보] 초음파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 (전문기자 칼럼)

관리자 | 2009.02.12 11:25 | 조회 4472
[전문기자 칼럼] 초음파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

 

▲ 김철중·의학전문기자·의사
정부가 임신 7개월 후부터는 의료진이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가르쳐 줘도 괜찮은 식으로 의료법을 개정한다고 한다. 지난해 현행 의료법의 태아 성감별 고지(告知) 금지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사실 이 조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기이한 법안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하도 깊다 보니 태아 초음파로 딸이라는 사실을 알면 낙태를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등장했다. 이제 그런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이 조항은 '남아선호 사상'의 유물이 될 운명이다. 현재 신생아 남녀 성비는 딸 100명에 아들 106~107명으로, 자연성비를 이루고 있다. 이 법안이 마련됐던 1990년대 중반에는 아들 수가 115.5명에 이르렀다.
 

이런 희한한 법안이 필요했던 바탕에는 태아 초음파라는 영상장비의 발달이 있었다. 1970년대부터 이용되기 시작한 초음파는 산부인과 진료에 혁명을 일으켰다. 청진기 형태의 장비로 태아의 상태를 뜬구름 잡듯이 알다가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으니 그 효과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초음파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니 임산부와 태아에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단장비이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3차원 영상까지 그려내, 태아의 얼굴 표정이 영화 주인공 '스틸 사진'처럼 잡힌다. 산부인과 병원에선 기념으로 태아 사진을 산모에게 나눠주고, 초음파 회사들은 그걸 갖고 태아 얼굴 콘테스트도 벌인다.

여기까지 태아 초음파는 의사나 산모에게 축복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요즘에는 기실 성감별은 큰일이 아니다. 비극은 초음파가 태아의 신체 기형을 찾아내면서 시작됐다. 태아 초음파로 임신 초반과 중반부터 심장기형, 골격 이상,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선천성 질병을 잡아낸다. 이런 진단 기술이 발달한 것은 태아 기형을 미리 발견해 조기에 치료하거나 대비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태아가 기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은 낙태의 유혹에 빠지게 됐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초음파에서 기형이 보인다고 하면 상당수의 산모가 그 이후에는 병원에 오질 않는다고 한다. 어딘가에 가서 낙태를 한다는 얘기다. 선천성 심장병은 인종과 경제 수준에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서건 200명당 1~2명꼴로 발생하지만, 소아과 의사들은 요즘 그만한 수의 심장병 아기를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임신 도중에 사라졌다는 얘기다.

안타까운 것은 선천성 기형의 대부분이 태어나 수술을 받거나 지속적인 치료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기형'이라는 말에, '장애아'라는 진단에 불법으로 그만 아기를 포기해버리곤 한다. 물론 많은 산모들은 산통을 느끼며 출산을 하지만 거기에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태아 초음파는 이처럼 우리 사회의 수준이나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가부장적 문화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면 '성감별 금지'도 없을 것이고, 장애에 대한 의식이나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면 '기형아 낙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제 '기형아 고지(告知) 금지'를 법으로 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태아 초음파는 행복과 불행이 함께 튀어나오는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김철중·의학전문기자·의사 doctor@chosun.com 


[조선일보]  2009.02.10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