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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포럼] 여성 자살률 1위

관리자 | 2009.04.21 09:59 | 조회 4468

[경향포럼]여성 자살률 1위



 

현재 한국사회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국 가운데 3위이고 그중에서도 여성 자살률은 1위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경제적 구조변화, 즉 경제 위기에 따른 생계 곤란과 빈곤, 그리고 삶의 불안정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여성 자살은 사회적 의미를 잃고 주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고 비가시화된다.

가족의 사회안전망 붕괴 의미

한국사회는 보통 자살이 다른 문제의 한 해결 방식이거나 저항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유명인들의 자살이나 과다한 입시와 시험 중압으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같이 사회적 문제로 전이될 수 있는 자살이 더 주목 받는다. 여성 연예인들의 자살이 남성 연예인들의 자살보다 더 크게 보도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많은 경우 여성 연예인의 자살에는 유명 남성이 개입되어 있거나, 혹은 유명 여성일 경우 그것을 사회적 죽음으로 만드는 더 큰 집단의 의제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위 일반인들의 자살일 경우 아버지의 자살은 사회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어머니 혹은 여성들의 자살은 개인적 비극으로 다루어진다. 생계 부양자로 간주되는 아버지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지만, 사적 존재로 간주되는 대부분 여성들의 죽음은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이란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력 혹은 노동 자원의 상실을 의미한다. 생계의 어려움과 빈곤 그리고 삶의 막막함이 자살의 원인이라면 경제적 독립을 하기가 어렵고, 남성 생계부양자를 모델로 하는 사회보장체제로부터 혜택을 받기가 어려워 더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자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성보다 더 높다. 여성 노동과 빈곤에 대한 현실을 보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이하면서 삶의 바닥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대체 어떻게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지구화 시대 여성의 일과 빈곤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고, 여성노동과 빈곤에 관한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이 회의에 참가한 발제자들과 참여 청중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여성의 문제, 가난이 사방에 있지만 그것이 전혀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 자유와 미래를 위해 이주를 하지만 이주는 곧 부자유하고 불안한 삶이 되어버리는 지구화 시대의 대안은 무엇인가라고 모두 묻고 있었다.

더이상 ‘개인비극’ 취급말아야


빈곤한 한 가족을 22년간 추적한 조은 감독의 <사당동 22>는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돌보는 한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나에게 그 할머니의 죽음은 가족 내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하던 여성의 상실을 의미했다. 많은 여성들은 가족 생계의 어려움과 외부 사회가 주는 불안정성을 껴안으면서 스스로 가족의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 준다.

그러다 이 여성이 죽으면 그것은 곧바로 다른 가족들의 빈곤과 삶의 불안을 가져오게 된다. 자식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죽지 못해 산다는 여성 가장들의 이야기, 서로 빚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는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 아무도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는 이제 자살의 수를 세는 것을 멈추고 살 만한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할 때가 됐다.

<김은실ㅣ이화여대교수 여성학>



[경향닷컴]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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