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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 : 아기낳는 법을 잊어버린 세대

관리자 | 2009.06.04 10:07 | 조회 4845
사설·칼럼[태평로] 아기 낳는 법을 잊어버린 세대
  • 입력 : 2009.06.02 22:42 / 수정 : 2009.06.03 03:14
김동섭 논설위원
26년 전인 1983년 7월 29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인구 오늘 4000만 돌파'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경제기획원은 남한 인구가 29일 밤 10시51분 4000만명에 달하고 2050년 6131만명이 된 뒤 인구성장이 멈춘다고 예상했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아들 볼 때까지 계속 낳으면 8948만명까지 치솟아 심각한 인구 과잉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놓았다.

정부는 이 발표 뒤 서둘러 서울역·대구 시민회관 등 전국 곳곳에 시시각각 변하는 인구 숫자를 표기한 대형 '인구시계탑'을 세웠다. "좁은 땅에 저렇게 많은 인구를 누가 먹여 살려." 국민들은 숫자를 세며 인구 공포심을 느꼈다. 피임용 '자동 콘돔 판매기'를 극장에 대거 설치한 것도 이때였다. '인구시계탑'은 '인구 폭발 공포'의 효용성을 인정받아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

그러나 무리한 '산아 제한'의 후유증은 깊고 컸다. 당시 예고와 달리 오늘의 한국 인구시계는 거꾸로 돈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한국은 2305년 인구가 500명 남는다는 보고서를 냈다. 세계에서 인구가 소멸(消滅)되는 첫 국가라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1000년 뒤인 3300년에 소멸된다고 한다. 저출산 심각성을 알려면 바로 한국에 와서 보란 얘기였다.

올 들어 4월까지 태어난 신생아는 작년보다 1만여명이나 줄었다. 신생아 수가 작년 46만명에서 43만명대로 떨어져 사상 최악이 될 것이란 통계청의 예측치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의 절반은 신혼부부들의 몫인데 신혼부부 숫자조차 작년부터 줄고 있다.

서울과 부산은 불임(不妊) 도시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인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져 출산율 하락을 부채질한다. 서울 강남·서초구, 부산 영도구, 대구 서구는 최근 3년간 1명을 넘겨본 적이 없다. 부부가 결혼해 2명을 낳으면 인구가 현상 유지된다. 그런데 1명도 채 안 낳으니 인구가 반 토막 나고 또 반 토막 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30대 대졸 여성들은 아기 낳는 법을 아예 잊어버린 세대다. 서울의 30대 여성 가운데 대졸자가 40.5%를 차지한다. 이들 4명 중 1명은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산다. 결혼해도 아예 아기를 낳지 않는 경우가 7명 중 1명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區)는 3년 전부터 15세 이하 어린이의 교육비와 의료비를 전액 구청에서 대준다. 아기가 '짐'이 아니고 오히려 '덤'이 되어 더 낳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투자한 만큼 거두는 셈이다.

출산 장려금은 많건 적건 어느 국가나 지급하는 기본이 됐다. 독일은 산모에게 월급의 80%(최대 380만원)를 14개월간 주고, 호주는 한 달치 월급 정도를 한꺼번에 준다. 그러나 우리는 말로만 저출산 지원일 뿐, 실제는 저소득층 복지 지원책이나 다름없다.

돈타령만 할 게 아니다. 싱가포르는 고학력 여성에 초점을 맞춰 대학에 연애강좌를 개설했다. 폴리테크닉(공대)은 '로맨스, 사랑과 성을 향한 여행'이란 강좌를 개설해 데이트 기술부터 사랑에 빠지는 법까지 가르쳐 결혼과 출산할 분위기를 만든다. 러시아는 매월 12일을 '임신의 날'로 정해 하루 쉬게 한다.

우리는 이젠 '성(性) 박람회'나 '콘돔 폐기' 같은 정책을 써서라도 인구를 늘려야 할 형편에 처해 있다. 사정이 이런데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아기 낳기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방글라데시·타이완에 이어 세계 3번째였던 한국은 인구가 소멸될 골목길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 같은 인구 강국에서 "텅텅 빈 한국으로 이민 가자"고 밀려드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기 낳는 문제를 한낱 개인 문제로 돌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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