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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존엄사 판결 이후 과제는...

관리자 | 2009.05.27 09:31 | 조회 4695
존엄사 판결 이후 과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될 제도 필요
의사협회 차원의 판단 기준도 있어야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첫 판례가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번 판결은 기본적 원칙만 제시한 것이어서 다양하고 복잡한 사례가 발생하는 의료현장에 곧바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또 존엄사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의미와 한계=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21일 “이번 대법 판결은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원치 않는 환자의 의견을 존중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최소한의 기준만 세운 것이기 때문에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의학적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미국의사협회(AMA)가 정한 지침을 따른다. 독일에서도 독일의사협회가 만든 지침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

천주교 이동익 생명위원회 담당신부는 “이번 판결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위험하다”며 “법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각 병원 윤리위원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전 장치 필요=존엄사가 지속적인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선 대법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주요 근거로 삼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환자가 미리 ‘사전의료지시서’를 써놓으면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이번 세브란스병원 환자처럼 사전의료지시서가 없는 경우엔 사실상 환자가 아닌 가족이 생명 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18일 국내 첫 사전의료지시서를 만든 서울대병원처럼 대리인까지 인정하느냐 여부도 논란거리다. 대리인을 정하는 방법도 문제다. 서울대병원은 별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용 가능성을 들어 병원 윤리위원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단국대 법대 이석배 교수는 “이번 세브란스병원 환자는 뇌사자가 아니고 서울대병원이 존엄사 기준으로 내세운 말기 암환자도 아니다”며 “이번 판례로 장기적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까지 존엄사가 남용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환자나 가족의 연명치료 중단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의료진에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국생명윤리학회 전방욱(강릉원주대 교수) 학회장은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치료 때문이라면 존엄사를 허용해도 상관없지만 현실에선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어떻게 막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기획조정실장은 “최근 연구 결과 국내 말기 환자와 가족들의 의견 일치도가 0.4(완전히 다르면 0, 일치하면 1)에 불과했다”며 “환자에게 병 상태를 정확히 알려줘야 환자가 가족 등을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등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병 상태를 정확히 알리는 비율이 10%가 안 된다고 한다. 서울대의대 이윤성(법의학) 교수도 “환자에게 질병상태와 어떤 치료가 남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야 하고, 연명치료의 정확한 의미까지 알려줘야 사전의료지시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일정=입법도 앞으로 남은 큰 과제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법 없이 판례를 따르기도 하지만 생명에 관한 중요한 결정이니만큼 존엄사 관련 법을 만들기 전에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곽숙영 생명윤리안전과장은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만큼 입법은 빨라지겠지만 악용 소지가 없도록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신상진(한나라당) 의원의 존엄사법이 발의돼 있다. 김세연(한나라당) 의원은 22일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다. 이 안은 생전에 유서를 공증하는 것처럼 ‘생명연장조치 거부 사전결정서’를 써서 공증받도록 하고, 이게 없을 경우 가족들의 말을 빌려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안혜리·김은하·허진 기자


[중앙일보] 200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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