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가톨릭신문] 키워드로 본 성에 대한 교회 가르침

관리자 | 2009.08.07 11:19 | 조회 4775

커버스토리] 키워드로 본 성에 대한 교회 가르침

- 가톨릭 윤리신학 총서 6권 「잃어버린 꽃을 찾아서」 정리 요약
 
 
끈기와 인내 필요한 ‘정결’

단정함이 드러나는 ‘정숙’

절제 수반돼야 하는 ‘욕정’
 

정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었다”(갈라 3,27).

정결은 인간의 성적(性的) 질서를 수호하는 윤리적 능력이다. 정결은 성이 인격 안에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고, 이로써 육체적이고 영신적인 측면이 온전한 통합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행동으로 뿐 아니라, 생각으로도 정결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7-28). 예수께서는 또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가장 완전한 정덕과 동정생활을 권고하셨다(마태 19,10-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애덕 다음으로 정결의 덕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쉽게 획득되지 않는다. 끈기 있는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정결의 덕의 높은 가치에 마음을 두고 자기를 변화시켜야 한다. 정결의 덕에 대한 기본적 자세를 갖고 항구히 노력한다면, 그가 실수를 하고 잘못에 떨어진다고 해도 정결의 덕을 지키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순결을 따르도록 은총을 내리신다. 모든 정결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는 누구나 정결한 인간이 되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신분에 알맞게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숙

정결은 정숙을 통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정숙 없는 정결은 있을 수 없다. 정숙은 정결을 지향하고 목표로 하여 정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우아함을 표출시킨다. 정숙한 인간은 다른 이의 품위를 존중하고, 다른 이의 상황과 분위기를 고양하고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생각과 말, 행동, 복장을 조절하고 절제한다.

정숙한 인간은 늘 하느님 앞에서 거니는 심정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신비와 사랑의 신비를 보호하고 펼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들인 것이다. 이런 의식은 부부 관계 안에서도 크게 기여한다. 부단한 절제와 인내를 실천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결코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 태도를 용납하지 않고, 진정한 희생과 봉사를 전제로 한 자세와 태도를 견지한다. 정숙한 태도를 지향하는 남녀와 부부는 서로를 인격적인 친교 안에서 주고받는 헌신을 생활화한다.

그러기에 정숙한 인간은 외적인 단정함 혹은 반듯함을 유지한다. 이런 태도는 자연히 복장과 외모에서 드러나게 된다. 정숙한 인간은 자신을 과시하여 이목을 끌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광고하거나 우쭐거리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와 본분에 성실하며, 늘 한결같고 변함없는 자세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긴다.

욕정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로마 7,21) 따라서 욕정 그 자체는 악(惡)이 아니다. 욕정은 내 잘못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욕정을 주시고 감각적 생활을 하도록 안배하신다. 욕정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 보호, 성장, 발전을 위한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합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성적 욕망은 자연스럽고 합당한 것이며, 당연히 향유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추구하거나 향유해서는 안 되는 욕망을 충족하려 한다면 욕정을 자제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악한 행위가 성립한다.

쾌감은 감각적 인식에서부터 오는 감각적 욕구의 한 움직임이기에 열정(passio)이라고 볼 수 있다. 기쁨은 이성의 기능이기에 쾌감과 구별된다. 따라서 동물에게는 쾌감만 있고 기쁨은 없다. 물론 이성적 기능 속에는 쾌감이 있다. ‘이성적 욕구’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쾌감은 강하고 격렬한 것이나 영적인 느낌은 더욱 크고 강하다. 지성적 인식이 더 고상하고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이성의 사용은 육체적 쾌감을 견제하고, 영적 즐거움을 촉진시킨다. 쾌감이 악한 것은 아니며, 항상 선한 것도 아니지만 이성에 일치하면 선하다.

그럼에도 최상의 즐거움은 최고선을 즐기는데서 맛볼 수 있다. 인간은 의지의 즐거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된다. 욕정은 하느님을 반대하여 악으로 기우는 인간의 내재적 성향을 지닌다. 욕정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하느님을 거스르도록 충동한다.
[가톨릭신문] 2009-08-02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