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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처녀 엄마들 "키운 정에 푹, 입양땐 찡…"

관리자 | 2009.08.06 12:59 | 조회 4842

처녀 엄마들 "키운 정에 푹, 입양땐 찡…"

입양 앞둔 아기 돌보는 이화여대 봉사동아리 '아가뽀뽀'

미혼모 오해 받으면 "백일됐다" 너스레도
"여전히 입양천국…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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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일시보호소에서 이화여대 봉사동아리‘아가뽀뽀’ 회원 박보배(오른쪽), 김나리씨가‘아가뽀뽀’의 상징인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아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지난 학기 정치학 수업은 정말 힘들었어." "학점은 잘 받았어?" "난 경제학 입문은 재수강 해야 돼."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일시보호소. 입양을 앞둔 아기들이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대학 강의실에서나 들을 법한 여대생들의 대화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노란 앞치마를 두른 이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하얀 기저귀를 차곡차곡 개고 있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들은 아기들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방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한 가냘픈 아기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자, 노란 앞치마 부대는 부리나케 방으로 달려갔다. 우는 아기들을 안아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달래고 재빨리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이 여느 베테랑 아기 엄마 못지않다.

이 '처녀 엄마'들은 이화여대 봉사 동아리 '아가뽀뽀' 회원들이다. 2001년 4월 5명의 창립회원으로 첫 발을 뗀 '아기뽀뽀'는 9년째 일시보호소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시보호소에는 생후 2,3개월의 갓난아기부터 돌 무렵 아기들까지 10명이 머문다.

동아리 회원 26명은 2명씩 조를 짜 매일 4시간 가량씩 돌아가며 이 아기들을 돌본다. 시험기간, 방학, 휴가철 할 것 없이 1주일에 한 번 반드시 참여하는 것도, 아기들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똥 기저귀까지 빨아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동아리 회장 박보배(21)씨는 "처음엔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전혀 몰라 힘들었는데, 이제 30초 안에 기저귀를 갈아주고, 한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면서 다른 아기들을 챙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고 자랑처럼 말했다.

이들이 '처녀 엄마'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아기들을 '끔찍하게' 좋아해서다. 신입회원 선발 기준도 첫 손에 꼽는 것이 '아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이다. 그만큼 선발 절차도 까다롭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물론 '아기 돌보기 매뉴얼' 암기와 1주일간의 실습 관문까지 통과해야 한다. 또 취업 준비 등으로 바빠지는 3학년이 되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다.

봉사의 특성상 적당히 활동하다 싫으면 그만 두는 식으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가끔 유아교육 전공자가 나중에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지원하는데 이런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4월 선발된 1학년 19명 가운데 벌써 6명이 중도 탈락했다.

2년째 활동 중인 김효영(21)씨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기 쉬운 다른 봉사활동과 달리 아기 돌보기는 책임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꾸준하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김나리(21)씨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면서 "이런 마음이 없이 취업을 위해서 이 일을 했다면 금세 그만 뒀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초보 시절엔 매운 시집살이만큼 힘들었다. "아기를 안는 것도 어색했고 기저귀 가는 것 등도 익숙지 않아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되곤 했어요."(김나리씨) "기저귀를 갈아줬는데 찢어지거나 헐거워져 소변이 옆으로 새어 나오고, 아기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박보배씨)

규율도 엄격하다. 아기들을 돌보려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귀고리를 하거나, 화장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황당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면 미혼모로 알거나 젊은 나이에 아기 낳아 고생한다며 혀를 끌끌 차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땐 '우리 아기 백일 됐어요'라고 한 술 더 뜨죠(웃음)."(김나리씨)

이들은 일이 손에 익는 만큼 아기들을 향한 마음도 성숙해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박씨는 "한 아기를 꾸준히 돌보다 보면 어느새 부모가 되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만큼 행복해진다"고 했다. 김나리씨는 "설이나 추석 때도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다"면서 "이젠 똥 기저귀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진다는 엄마들 얘기에 공감할 정도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 있겠느냐는 복지회 측의 우려도 이젠 든든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김정희 홀트아동복지회 총무는 "주부 봉사자들도 힘들다고 사정 생겼다고 나 몰라라 하고 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가뽀뽀' 회원들을 정말 순순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감도 투철해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소망은 모든 아기들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입양 절차는 까다로운 반면 파양은 쉽게 할 수 있는 등 제도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박씨는 "국내에선 친부모의 출산일, 학력, 혈액형, 성별까지 너무 깐깐하게 따진다"면서 "그래서 아기들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입양되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번은 미국에서 백인 할머니와 동양인 딸과 흑인 사위가 함께 이 곳을 찾아 입양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국내에서도 입양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한국일보] 2009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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