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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닷컴] 미혼모 위한다며 ‘아빠찾기’?…“정작 필요한 건 지원않고”

관리자 | 2009.07.27 09:25 | 조회 4625

미혼모 위한다며 ‘아빠찾기’?…“정작 필요한 건 지원않고”

ㆍ복지부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비용 지원’ 추진
ㆍ“절실한 건 경제적 자립 지원” 실효성에 의문

생후 8개월 된 딸아이를 둔 이소정씨(20·가명)는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 중이라는 미혼모 지원정책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미혼모를 보호하고 친부의 양육책임을 강화하겠다’지만,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이씨가 보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복지부는 지난 9일 양육책임을 회피하는 친부 때문에 고통 받는 청소년 미혼모를 위해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아이를 낳은 24세 이하의 미혼 청소년에게 40만원 가량의 유전자 검사비용을 지원, 이른바 ‘아빠 찾기’를 돕겠다는 것이다. 내년 시행을 목표로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다.

그러나 미혼모 당사자들과 미혼모 보호시설 관계자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과연 이 같은 정책으로 미혼부의 양육책임이 강화되겠느냐는 의구심과 미혼모에게 절실한 것은 자립지원이라는 답답함 때문이다.

현재 다른 양육미혼모 4가정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미혼모 대부분 아기 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신소식을 알렸을 때 ‘나 몰라라’ 하거나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 폭행을 하거나 낙태를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씨는 “마주치거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싫다”면서 “아기 아빠를 찾는다고 양육비 등을 책임진다고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 오히려 아이와 미혼모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혼모보호시설의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원을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그러나 당장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 법적책임을 주지 않는 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전자 검사를 한다고 없던 책임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차라리 교육비나 양육비 등의 자립지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 한다고 없던 책임감이 생기나”-

미혼모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지원은 어떤 것일까.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지원방안’ 정책포럼에 따르면, 미혼모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취업 및 일자리 지원’(25.4%)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자녀에 대한 보육·교육 지원’(22.6%) ▲‘미혼모 시설 확충’(18.0%) ▲‘미혼모 가족의 주거지원’(14.7%) ▲‘미혼모의 학업복귀 지원’(8.2%) 등의 순이었다.

이씨는 자립의 첫 단계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학원에 다닐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대신 시설에서 소개해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 미혼모의 교육권 보장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6%가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도 정부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와 함께 살 집을 찾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활비와 분유, 기저귀 등을 지원받고 있지만 생활은 빠듯하다. 3년 정도 집을 빌려준다는 모자원 입소를 신청해뒀지만 워낙 비슷한 처지의 미혼모들이 많아 걱정이다. 그는 아기 옷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해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홀트아동복지회 최안녀 국내입양 팀장은 “미혼모들이 혼자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주거문제나 직업교육 등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다. 미혼모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해숙 선임연구위원은 “유전자 검사비용 지원은 미혼모 정책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단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아이를 위한 지원만 하겠다는 것은 미봉책”이라고 말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아기 아빠만 찾아주면 무엇하나”라며 “미혼모 정책의 근본은 청소년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혼모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혼부의 양육책임 강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방안”이라면서 “외국과 달리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우선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자립에 필요한 지원 등도 검토 중으로, 조속히 시행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경향닷컴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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