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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존엄 지키며 죽음 맞는 은퇴수녀들

관리자 | 2009.07.14 15:50 | 조회 5438

존엄 지키며 죽음 맞는 은퇴수녀들

‘웰다잉’ 시설로 관심 모으는 ‘세인트 조셉 수녀회’
 
심각한 심장병으로 발이 붓고 식욕을 잃은 채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금년 87세의 도로시 퀸 수녀는 소녀시절부터 몸담아 온 ‘세인트 조셉 수녀회’ 양로병동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70년 동안 친구들과 동료들에 둘러싸여 생활해 왔다. 대학 시절 친구도 있었고 앨러배마에서 셀마 행진을 같이 한 동료 교사도 있었다. 재택 간병인으로, 혹은 소외 노인들을 위한 상담가로 일할 때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접했다.


“인위적 생명 연장은 별 의미 없어”
큰 수술 등 공격적 치료 대부분 거부
병원 아닌 수녀회에서 조용히 임종 맞아



죽음을 앞두고 도로시 수녀는 심장전문의가 처방해 준 23개 약 가운데 심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복용하지 않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약이 과다 처방 되는 경향이 있다는 노인병 전문의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현재 남아 있는 한쪽 가슴의 럼프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 위한 매모그램도 거부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치료를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후가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도로시 수녀의 목표는 불멸이 아니다. 그저 다시 퀼트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꿈이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어가고 있을 때도 그랬다”고 도로시 수녀는 말했다. 수도원은 세상과 떨어져 있는 곳이며 닮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뉴욕 주 로체스터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세인트 조셉 수녀회’는 각종 연구에서 성공적 노화와 편안한 죽음에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진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도 특별한 환경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광범한 사회적 네트웍과 지적 자극, 삶과 영혼에 대한 지속적 관여, 그리고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말기환자 치료와 호스피스 관련 철학 등이 그것이다.

연로하고 노쇠한 가톨릭 수녀들을 위한 이 모든 것은 세속적인 은퇴 커뮤니티처럼 지어진 ‘성모의 집’에서 이뤄진다. 평균 한 달에 한명 꼴로 수녀들은 병원이 아닌 이곳에서 사망한다. 원하면 받을 수 있는데도 생의 막바지에 공격적 치료를 택하는 수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메리 루 미첼 수녀는 “우리는 삶과 죽음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한다”며 “이것이 우리가 사회에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병든 수녀들을 위한 치료는 대부분 로체스터 대학의 노인병 전문의인 로버트 매캔 박사에 의해 이뤄진다. 매캔 박사와 수녀들과의 오랜 관계는 번잡한 중환자실에서는 불가능한, 위기 상황 전에 치료의 목적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 급식 튜브와 산소호흡기가 의미가 있는지, 통증 완화가 정확한 상태 파악보다 중요한지 등이 그것이다. 심폐소생술의 경우 노인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위험하다는 연구도 나왔다. “병원보다는 이곳에서 환자들에게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고 매캔 박사는 말했다.

그렇다고 이곳 공격적인 치료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 수녀는 심각한 형태의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다. 대수술이나 하이텍 검진, 생명 연장 장치를 택하는 수녀는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언제 이곳 수녀가 병원에서 사망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전직 간호사 출신인 메리 루 수녀(56)는 “죽을 때가 있으며 존엄을 지키며 죽는 길이 있다”며 “병원이 죽음의 메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음은 집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 ‘성모의 집’에서는 진료소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건물은 같은 곳에 모여 있다. 150여명의 거주자 중 절반 정도가 독립적 생활을 위해 지어진 서쪽 사동에서 산다. 다른 40여 수녀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스튜디오에 거주하며 또 다른 40명은 양로 병동과 알츠하이머 유닛에 산다. 이들이 있는 동쪽 사동 중앙에는 교회와 식당,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방에 누워 있는 수녀들은 폐쇄회로 TV를 통해 미사를 지켜 불 수 있다.

매캔 박사는 수녀들의 종교적 믿음이 실존적 고통으로부터 이들을 분리시켜 준다고 말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왜 나를?” 이라는 절규를 찾아 보기 힘들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없어서인지 고통과 우울증이 덜하다고 매캔 박사는 밝혔다. 말기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의 양도 병원 환자들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그는 병원과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이면서 너무 대가가 큰 죽음에 진저리를 친 후 수녀원에 왔다가 “정말 인간에게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한다고 들려줬다.

스탠포드 대학 장수연구센터의 로라 카텐슨 박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 손을 들어 ‘노인들을 죽이는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냐’며 반기를 든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는 종종 말기 환자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가톨릭신학에는 과도한 개입을 요구하는 어떤 내용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이곳의 수녀들이 안락사나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시 수녀는 “아주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을 알약 등으로 죽이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과도한 수단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언제 마시기와 먹기를 거부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간호사인 바바라 코실로바는 이곳 수녀들과 다른 병원 노인 환자들의 건강을 비교한다. 수녀들 가운데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금연이 원인인 듯하다) 당뇨 환자도 단 3명에 불과하다. 정신 건강도 양호하다.

매캔 박사는 수녀들이 교육수준이 높고 은퇴 후까지 각종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금년 97세인 버나딘 프리다 수녀는 여전히 기운 넘치고 날카롭다. 그녀는 77세의 마리켈너 수녀와 함께 환자들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두 사람은 모두 과학교사 출신이다.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교직을 떠났던 켈너 수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한 환자를 찾아가 그녀가 고등학교 교장이었음을 상기시켜 준 후 ‘평화는 강 같이’를 불러준다. 환자는 “내가?”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한국일보]   2009-07-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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