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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출산율’을 둘러싼 감상 / 배병삼

관리자 | 2009.09.07 10:33 | 조회 4761

[세상읽기] ‘출산율’을 둘러싼 감상 / 배병삼

한겨레
»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전국시대 양나라 임금의 고민은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강동 땅에 홍수가 나면 주민들을 강 건너로 옮겨주고 따로 구호식량도 풀어서 먹였다. 이런 위민정책은 다른 나라에선 행하지 않는 선행이다. 한데도 인구가 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선진국 그룹에 속할 만큼 넉넉해진 대한민국에도 난데없이 출산율 감소라는 걱정이 덮쳤다. 공보기관의 말을 빌리자면 “올해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일 출산율이 1.0 이하로 계속 이어진다면 2018년부터는 인구 감소로 돌아서고, 300년 후에는 지구상에 한국인이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국정방송 K-TV ‘클릭 경제브리핑’) 사십년 전에 비하면 풍요롭기 그지없는 이 나라에 인구가 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맹자는 양나라의 인구가 늘지 않는 까닭을 군주가 백성을 도구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군주가 ‘백성을 위한다’며 내놓는 위민정책이 실상은 ‘군주를 위해’ 목숨을 요구하는 것임을 백성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 구호식량이 전쟁터로 끌고 갈 미끼임을 알기에 사람들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컨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 머릿수로 세어서 ‘많다, 적다’로 헤아리는 군주의 눈길, 곧 사람을 노동력·국방력의 요소로만 보는 눈이 바로 인구가 늘지 않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1970~80년대 이 땅의 기차정거장이나 버스터미널에는 인구 전광판이 서 있었다. 한낮에도 명멸하던 전광판에는 5초마다 10명씩 인구수가 늘어났다. ‘지구는 만원이다’라는 포스터라든지, 본영화에 앞서 상영되던 ‘대한 뉘우스’에 암퇘지 젖꼭지에 매달려 젖을 빠는 새끼들 사진 위로 돌출되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구호가 꼭 사람이 돼지 같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40년 세월이 흐른 오늘, 정부당국이며 여당이며 언론매체들이 함께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 재난이라느니, 큰 위기라느니 하는 말도 섞여 나온다. 한데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다. 국가안보 때문에, 노동력 부족 때문에, 조세 부담 때문에, 노령인구 봉양을 위해서, 또는 내수시장 침체로 인한 경제력 저하를 막기 위해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태어날 아이들의 세상은 없고 아이들이 걱정해야 할 일만 가득하다. 이쯤이면 ‘당신이라면 태어나고 싶겠소’라는 반문도 가능하다.

또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대책이란 게 고작 아기를 낳으면 돈 몇 푼 더 쥐여주겠다는 식이다. 돈을 주면 자식을 낳으리라는 계산법에는, 부끄럽게도 사람을 돼지로 취급하는 생각이 숨어, 아니 드러나 있다. 그러니까 똑같다. ‘사람이 많다’며 머릿수로 세던 옛날이나, ‘사람이 적다’며 돈을 쥐여주려는 지금의 발상이나 사람을 숫자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작 오늘날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출산율이 아니다. 북한에서 온 이주민과 조선족 동포들, 또 ‘다문화 가정’이 깨지면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건사하는 일이다. 먼 나라 사람들도 몰려와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올바른 인구 대책의 출발점이다.

그나저나 출산율로 그렇게들 고민한다면서, 사회지도층이 몰려 산다는 서울 강남지역 출산율은 왜 그렇게 낮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혹 소풍 간 돼지들이 숫자 세는 모양으로 저 자신을 자꾸 빼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한겨례]   200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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