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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 강조하다 ‘생명윤리’ 놓쳤다(2020.10.11)

관리자 | 2020.10.22 11:17 | 조회 1727

‘나다움’ 강조하다 ‘생명윤리’ 놓쳤다

여성가족부 추천 ‘나다움 어린이책’ 무엇이 문제인가 - 두 엄마 기자가 살펴봤다


▲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중 아빠편의 한 페이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동성혼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부터 교육문화사업으로 펼친 ‘나다움 어린이책’ 관련 도서가 최근 문제가 됐다.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돕는 어린이책을 선정해 아이들에게 추천도서로 적극 권장한다는 취지였지만, 일부 도서는 교육용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생명의 가치와 의미, 남녀의 다름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윤리적 성찰이 빠진 채 개인의 성향과 자유만이 지나치게 강조됐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됐다. 또 외국 도서를 번역한 책의 경우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말 그런 것일까.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들에겐 어떤 걸 알려줘야 할까.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키우는 본지 엄마 기자들이 문제의 도서들을 직접 살펴본 이야기를 풀어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도서 목록


①「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

②「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고래가숨쉬는도서관)

③「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고래이야기)

④「걸스토크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시공주니어)

⑤⑥⑦⑧「우리 가족 인권 선언」(딸ㆍ아들ㆍ엄마ㆍ아빠편 전 4권/노란돼지)






박수정 기자(닉네임 : 뭉치스맘)



결혼 10년 차. 사랑스럽지만 매일 투닥거리는 사고뭉치 남매(10살 아들, 7살 딸)를 키우고 있음. 남매를 자녀로 두니 성교육에 관심이 많음. 가톨릭생명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생명 분야 담당 기자로서 가톨릭 생명윤리 정신을 아이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지만 사실 다소 막막함.



이지혜 기자(닉네임 : 코딱지 엄마)



결혼 7년 차. 똥팬티와 코딱지라는 별명을 지닌 4살, 7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음. 가정은 엄마와 아빠라는 두 기둥이 한쪽에 기대지 않고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훈으로 여기고 있음. ‘엄마일기’를 본지에 연재함. 남편이 2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며 육아에 전념함.





살펴본 여덟 권의 책은 크게 △성역할(「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 「걸스토크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 △가족과 인권(「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생명탄생(「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 주제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뭉치스맘 : 이거 딸한테 보여줬다가 완전 망했어요. 설명해 주면서 읽어줬는데 그림을 보더니 울더라고요. 너무 징그럽대요. 아이 낳는 게 이런 거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을 거라고요.

코딱지 엄마 : 저도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책 그림이 해부학적이고, 간단명료하다고 하지만 제가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빠져있고, 행위가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됐어요. 덴마크에서는 1970년대에 발간된 책이라는데 우리나라 정서에는 안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뭉치스맘 : 덴마크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봐야 해요. 1969년 세계 최초로 포르노를 합법화했고, 아동 포르노로 악명이 높았죠. 이 책을 본 10살 아들은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했지만, 그림엔 거부감을 보였어요. 호기심만 자극할 소지가 너무 많아요.

코딱지 엄마 : 책에 이런 표현이 있죠. “아기를 만들기 위해선 성교를 해야 돼. 아빠는 엄마의 질에 고추를 넣어. 신나고 멋진 일이야. 재미있거든.” 찬찬히 읽어보는데, 어떤 요리의 레시피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혹은 레고를 조립하는 순서가 적힌 설명서 같은 거요. 이 순서대로 따라 하면 맛있는 음식, 멋진 레고 조립이 완성될 거야. 짜릿하고 재밌어, 너도 해봐. 이런 거죠. 하지만 부부가 사랑하고 혼인을 해서, 생명을 출산하는 과정은 레고를 조립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죠. 부부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수해야 할 고통과 헌신의 크기는 말도 못하잖아요.

뭉치스맘 : 성교육은 아이의 나이와 개인적 특성에 맞게 이뤄져야 해요. 아이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꼭 필요한 것은 알려주지만 접근 방식이 너무 거칠고 유희적이에요. 나조차도 이 책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아이들에게 괜히 보여줬다 싶어요.

코딱지 엄마 :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라는 책도 낯설고 놀라웠어요. 여성인지 남성인지 성 정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그린 ‘이모’라는 캐릭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조카에게 다양한 물고기를 보여주죠.

뭉치스맘 : 그 이모는 ‘남자 같다’ ‘여자 같다’는 말을 엄청 싫어해요. 어릴 땐 남자였다가 커서는 여자가 되는 흰동가리와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수컷이 새끼를 낳는 해마를 조카에게 소개하죠. 암수 구분 없는 물고기와 무성생식하는 물고기에 인간의 성을 빗댄 건 인간생명의 고유성과 특성을 무시한 결과라고 봐요. ‘남자도 해마처럼 임신을 원하면 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가르쳐요. 이게 진정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성윤리일까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딸과 아들, 엄마와 아빠의 인권을 선언한 책으로 흘러갔다. 책에 나온 인권선언의 각 1조를 살펴보면, 딸에게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해도 될 권리”, 아들에게는 “눈물이 날 때 울고, 위로받을 권리”가 명시돼 있다. 마지막 15조에선 엄마, 아빠에겐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딸과 아들에겐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한다.



뭉치스맘 : 남녀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개인의 성향과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봐요. 동성혼과 동성애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묘사했어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성 역할의 구분이 없어지는 시대적 흐름에서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지 참 고민이에요.

코딱지 엄마
 :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선 누군가는 못을 박아야 하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하죠. 그렇지만 남자는 못을 박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대한 반박으로, 남자는 못을 박을 줄 몰라도 된다고 가르치는 게 올바를까요? 타인의 노동에 동참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길러주는 게 우선이라고 봐요.

뭉치스맘 : 맞아요. 이 책은 마치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인 이들을 해방시켜주는 내용을 담은 듯하지만, 실상 이런 방법으로는 가정을 유지하기가 어렵죠. 결혼하고 부모가 되면 알게 되잖아요. 타인을 위한 사랑의 실천은 헌신과 희생으로 쌓아 올리는 행위라는 걸요.

코딱지 엄마
 : 문제가 된 도서들 대부분이 외국 저자예요. 우리나라랑 정서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또 저자들은 생명교육 전문가들이 아니더라고요. 사회학자, 그림책 작가, 인권운동가, 가수 등 다양해요. 생명윤리학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예요.

뭉치스맘 : 성교육 관련 동화책들은 아이가 혼자 읽게 해서는 안 돼요. 부모나 교사가 아이와 함께 읽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줘야 하죠. 생명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교사, 자료가 참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코딱지 엄마 : 생명의 탄생과 성 역할, 인간의 인권을 다룬 책은 사실 우리 인생의 전부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동체에서 소속되어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되죠.



엄마 기자들의 결론은 “이런 책을 굳이 아이에게 보여주진 않겠다”였다. ‘나다움’이라는 말은 다양성 안에서 개인의 다름을 존중해주는 인권 감수성이 높은 용어다. 하지만 나다움을 잘못 사용하면 생명윤리의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의 성향과 자유만 추구하게 하는 길로 확장될 우려도 있다. 부모와 교사 등 전달자가 나다움에 가려진 이면을 볼 줄 알아야, 아이에게도 올바르고 참된 성과 생명의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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