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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도 양극화?

관리자 | 2008.12.15 21:47 | 조회 4652

생명에도 양극화?
2006. 8.13 가톨릭 신문
‘공유’가 있어야 ‘공생’도 있다
가족제대혈 보관 열풍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아기의 제대혈(cord blood) 보관하기가 유행하고 있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부터 많게는 백 수십 만원의 돈을 들여서 ‘가족제대혈은행’이라는 곳에 자신의 아이의 제대혈을 냉동보관시켜두는 것이다. 만일의 경우 자신의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이 필요한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난치병에 걸리게 될 때 냉동보관되어 있는 제대혈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략 한달에 약 6000여건 정도, 태어나는 아이들의 약 15% 정도가 제대혈을 ‘가족제대혈은행’에 맡기고 있다고 하며, 이 제대혈은 약 10여개의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제대혈보관 업체의 냉동고에 20여 만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0여년 내에 우리나라에는 50-60만 여개의 제대혈이 보관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제대혈이 무엇인지, 제대혈 은행에 자신의 아이의 제대혈을 보관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제대혈의 정의와 가치
제대혈이란 탯줄을 의미하는 ‘제대’라는 용어와 피를 의미하는 ‘혈’의 합성어이다.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던 생명줄인 탯줄은 출산 후 아이로부터 분리되면 버려졌다.
그런데 탯줄이나 태반의 혈액 안에 혈액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는 조혈모세포나 최근 희귀난치병 질환 치료의 희망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있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1988년에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판코니 빈혈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5세의 남자아이에게 제대혈을 이식해 치료효과를 보게 되면서, 탯줄과 태반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조혈모세포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아주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공여제대혈은행의 필요성
‘제대혈은행’에는 2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가족제대혈은행’이고 다른 하나는 ‘공여제대혈은행’이다. ‘가족제대혈은행’은 말대로 가족만을 위해 제대혈을 보관하는 은행이다. 이곳에 제대혈을 맡기기 위해서는 백 수십만원의 보관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 이렇게 맡겨진 제대혈을 사용하게 될 확률은 만분의 5 정도로 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외국의 상황은 좀 다르다고 한다. 이들은 찾아쓸 가능성이 낮은데도 돈을 주면서까지 제대혈을 저장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부 희귀난치병질환의 유전적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아주 일부 계층에 한해서 ‘가족제대혈은행’에 저장하고 있고, 대부분은 제대혈이식이 필요한 환자 누구나가 사용할 수 있는 ‘공여제대혈은행’에 기증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제대혈은 ‘공여제대혈은행’에 저장되어 있으며, 국민 누구나 필요한 경우 공여제대혈은행으로부터 제대혈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약 10만여 개의 제대혈이 저장된 ‘공여제대혈은행’이 있다면, 국민 누구나 제대혈이식이 필요한 경우에 이식에 맞는 제대혈을 찾아 쓸 수가 있다고 한다.

생명 상업화와 양극화 현상
제대혈을 보관했다고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혈을 보관하는 과정이 잘못되거나, 이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과정의 문제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공여제대혈은행’의 구축은 없이, 백 수십 만원의 돈을 물어가면서 자기 가족들만을 위해 제대혈을 ‘가족제대혈은행’이 보관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가족제대혈’을 보관하고 있는 나라이며 ‘가족제대혈은행’이 가장 활성화된 곳이라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지하철 광고에서 아이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제대혈을 자기네 회사에 저장하라는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돈이 있는 부모들은 쓸 확률이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만일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들여 이들 ‘상업제대혈은행’에 제대혈을 저장하고, 돈이 없는 부모들은 만일에는 고사하고 당장 아이가 중병에 걸려 이식이 필요해도 필요한 제대혈을 구할 길이 없다. 이 어찌 생명에 침범한 상업주의에 의한 극심한 생명의 양극화 현상이 아닐까?

신 앞에선 모두 동등한 생명
생명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어도 다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도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질병치료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생명은 모두 고귀하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잊고 의료라는 틀 안에서 이 생명의 상업화와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작금의 제대혈은행 실태를 보면 여기서 우리는 ‘나와 내 가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 나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김명희 <생명윤리학 박사. 마취전문의> 언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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