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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생명이 살린다”

관리자 | 2008.12.15 21:47 | 조회 4607

“생명은 생명이 살린다” 2006. 7.23 가톨릭 신문

기술발달해도 ‘나눔’이 없다면…

누가 돌팔이 의사인 나에게 20세기 현대의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의 ABO식 혈액형과 1940년 Rh식 혈액형을 발견한 것을 꼽을 것이다. 그의 공로는 나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란트슈타이너는 ABO식 혈액형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0년 노벨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함으로써 수혈의학이 발전하였고, 출혈로 인해 죽어갈 수밖에 없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전쟁에서, 혹은 월남전쟁 등과 같은 전쟁터에서 총칼에 찔려 피 흘리며 죽어갈 수밖에 없던 많은 젊은이들을 수혈로 살려 낼 수 있었다.

수혈 의학의 발전

또한 수혈의학의 발전은 출산 중에 출혈로 인해 아이를 두고 먼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어머니들을 살려내 아이를 온전히 키울 수 있도록 했으며, 치료 과정에서 오히려 심한 출혈을 일으켜 진전을 보지 못하던 외과적 치료법들을 발전시켜 약물치료와 대중요법에 의존하던 의학을 한 단계 발전시켜 암, 골절, 기형 등과 같은 질병들에 외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이러한 수혈의학이 바탕이 되지 못했다면 오늘날에 흔히 시행되는 심장수술, 장기이식, 골수이식 등의 각종 최첨단 수술 방법들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만이 수혈의학을 발전시키고 오늘날의 의학을 이만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수혈을 한다는 것은 환자와 혈액형이 같은 다른 사람의 혈액을 환자에게 주사하는 것이다. 혈액은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 유지에 근원적인 물질이다. 수혈이 가능하다는 것은 환자를 위하여 자신의 혈액을 내어 주려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혈액형을 알면 무엇하고, 수만가지 검사가 가능하면 무엇하리. 자신의 혈액을 아픈 이를 위하여 기꺼이 내어주는 이가 없다면. 수혈로 인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혈액을 다른 이들을 위하여 내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의료인들은, 란트슈타이너라는 혈액형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은 기억하고 수혈의 대단한 업적들은 기억하면서도, 수혈을 가능케 하였고 현재에도 가능하게 하고 있는 혈액을 제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매일매일 밥 먹고 잠자고 일어나는 일처럼 일상에서 혈액을 환자들에게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생명인 것을, 한 여고생이 헌혈하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되기까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희생과 사랑이 사람 살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유능한 의사와 훌륭한 의료시설이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이 돌팔이 의사는 믿었고, 내가 쓰던 그 빨간 봉지 혈액은 링거액이나 아스피린처럼 내가 처방하면 내 앞에 대령하는 그저 또 하나의 약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빨간 비닐봉지 안에는 헌혈한 이의 사랑이, 생명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수술대의 환자를 살린 것은 나의 의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 빨간 봉지 안에 들어 있던 한 여고생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혈액이, 그 아이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몸속에 들어가 살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살 수 있었을까?

의학의 발달로 과거에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여러 질병들이 치료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명을 살리고자하는 또 다른 생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혈액을 나누는 헌혈자들, 장기를 기증하는 장기기증자들, 시신을 기증하는 시신기증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의학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 또는 자주 마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나 어느 특정 의료기술자의 덕택인양 보도되는 것을 본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생명을 사랑하는 또 다른 생명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생명을 살리는 생명이 있음을 기억해야하고 그 생명을 주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명희<생명윤리학 박사.마취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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