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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에 관한 논쟁

관리자 | 2008.12.15 21:41 | 조회 7017

2001년 3월 30일

안락사에 관한 논쟁 http://myhome.naver.com
(출처: 교회법률상담소 운영자,박영주변호사)

1. 안락사의 개념

「안락사(euthanasia)」는 매우 다의적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로 말하면 죽음에 임박하여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 고통을 없애거나 경감할 목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임의적 조치로 말할 수 있으나,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안락사를 능동적 (적극적)안락사와 수동적(소극적)안락사로 나누기도 하고,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 무자발적 안락사로 나누기도 한다.

① 능동적 안락사와 수동적 안락사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죽음 이외에는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없을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다. 방법에 따라 환자에게 직접 어떤 행위(예를 들면 모르핀, 포타슘, curare 등을 치사량 주사하는 것)를 함으로써 죽도록 하는 것을 <능동적 안락사: active euthanasia> 혹은 <적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적극적 안락사가 좁은 의미의 안락사로 볼 수 있다.

반면, 환자에게 필요한 어떤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자연의 경과에 따라 죽도록 하는 것을 <수동적 안락사: passive euthanasia> 혹은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존엄사(death with dignity)」란 개념을 쓰기도 하는데, 보통 회복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상태의 환자에게 단순한 연명 조치에 불과한 의료행위(인공호흡장치 등)를 중지하여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연적인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다


② 자발적 안락사, 무자발적 안락사, 비자발적 안락사

자발적 안락사란 환자 스스로가 안락사를 원하여 요청한 경우,환자의 의사표현이 없었던 경우를 무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라 하고, 환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될 때 비자발적 안락사(강제적 안락사, nonvoluntary euthanasia)라고 한다.

비자발적 혹은 강제적 안락사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나치의 안락사 프로그램에 의한 유태인의 대량 학살이 있었다.


2. 안락사가 문제된 주요 사건

(1) 퀸란 사건

이른바 [존엄사] 또는 [환자의 죽을 권리]와 관련된 논란은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를 계기로 일어났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일어난 퀸란 사건이 발단이었다.

퀸란(Karen Ann Quinlan)은 21살된 여자로 1975년 4월에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호흡정지가 있은 다음에 혼수상태에 빠졌고,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장착하여 지속적 식물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퀸란의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의식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퀸란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주겠다고 결심하여 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의사가 이를 거부하자, 퀸란의 후견인으로서 생명유지장치를 뗄 권한을 자기에게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뉴저지 고등법원(1975. 11. 10 판결)은 생명유지장치를 뗄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의료적인 문제이므로 주치의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하여 퀸란의 아버지가 낸 신청을 기각하으나 주 대법원은 1976년 3월 31일에 아버지의 주장을 인정하여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① 후견인과 가족이 같은 의견이고, ② 다른 의사가 퀸란은 현재 혼수상태에서 인식있는 지적 상태로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생명유지장치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③ 입원한 병원의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장치를 제거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판결은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존중하여 「개인적 권리(privacy)」를 긍정한 새로운 판결로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생명유지장치는 떼었지만 퀸란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스스로 호흡을 회복하여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로 9년 남짓 생존하다가, 1985년 6월 11일에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2) 케보키언 사건

'죽음의 의사'로 불리운 미국의 케보키언이 박사는 1998년 9월 미시간주에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유크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 사망케 한 뒤 이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미 CBS 방송의 '60분'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했다가 2급 살인죄로 최소 10년 최대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안락사 옹호자인 70세의 케보키언은 지금까지 매년 10여명씩 불치병 환자 1백여명의 자살을 도와주면서 '자살장치' 를 만들어 환자 스스로가 마지막 스위치를 누르게 하여 그동안 자살방조죄로 네 번이나 기소되고도 풀려났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의사 자신이 주사를 놓아 사망하게 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CNN에 방영시키며 "나를 잡아넣으려면 잡아넣어라" 고 사법기관에 공개도전을 했다가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 받았다.


3. 안락사에 관한 각국의 입법

① 미국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안락사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주 (州) 마다 차이가 있지만 40개주가 환자가족의 동의 등 엄격한 요건 아래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존엄사) 행위는 대체로 인정하나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88년 및 1992년 안락사법제화를 위한 주민투표가 시행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워싱턴 주에서는 1991년 '죽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법안을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부결되었다.

미 오리건주는 주민투표를 거쳐 말기환자가 의사에게 극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복용해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尊嚴死)법을 주민투표를 거쳐 97년 10월부터 시행해왔고 1998년에만 15명의 말기환자들이 이 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극약을 삼키고 고통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 미 연방 하원은 1999년 10월 27일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 을 표방하며 극약을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해 존엄사법을 무력화시키는 '고통경감법'안을 통과시켰다.

극약을 자살용으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위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 10월 28일 오리건주 주민들은 포틀랜드에 모여, 하원의 행동은 주의회가 확정해 합법화한 '존엄사법' 을 무시하는 횡포라고 시위를 벌였다.

② 영국

19세기 말부터 안락사에 대한 논쟁을 벌였고,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입법제안이 몇차례 있었으나 지금도 법률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제한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는(예컨대 3년 이상 식물인간상태로 있던 자에게 영양공급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1993년 판결) 판결이 선고되고 있어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③ 호주

호주는 96년 안락사를 법제화했다가 6개월만에 폐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호주연방 8개주 가운데 3개주가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의료행위를 법으로 허용하 고 있고 나머지 주들도 관습법상 이를 인정하고 있다.

④ 프랑스

뇌사상태라도 심장박동이 완전히 멎지 않는 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나라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죽이는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서도 안락사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고 프랑스 정부는 2000년 9월 말기 환자들이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키로 하고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⑤ 독일

"어떠한 이유라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고 형법에 규정하고 있으며, 고의가 인정될 경우 최고 종신형까지 처벌받는다.

⑥ 일본

95년 요코하마 (橫濱) 법원의 판례에 따라▶환자의 참기 힘든 고통▶죽음의 임박성▶본인의 의사▶고통제거수단의 유무 등의 기준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⑦ 네덜란드 안락사 허용

네덜란드는 판례를 통하여 엄격한 요건하에 존엄사나 안락사를 허용해왔기에 안락사에 관하여 가장 관용적인 나라로 알려져왔다.

그리고, 2000.11월 네덜란드 하원은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 법안은 안락사 허용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 즉, 대상자가 불치의 환자여야 하고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하며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안락사에 동의해야 의사가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1996년 이후 위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2천565건의 안락사가 있었던 것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으며 안락사의 90%는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위 법안의 통과는 그동안 네덜란드에서 관례상 묵인돼온 안락사를 사실상 합법화한 것이다.

⑧ 우리나라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소생가능성이 없는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존엄사의 경우에는 실제로 병원등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고, 이를 실정법으로 처벌하는 경우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4. 안락사의 허용론과 불가론

가. 허용론의 논거

안락사 옹호론자들은 엄격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인간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법적.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 생명이 신성하고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 대신 인간 삶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어떤 인간들의 삶의 질은 죽음보다도 못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인간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될 수 없다 하더라도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아래와 같다.

①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말기 중환자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 만약 인간 생명이 신성 불가침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우리가 이들로부터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②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은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료진.병원.사회에도 부담을 주는 일이다.

③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나. 불가론의 논거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고통받은 환자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행동 자체는 명백한 살인 행위인 셈이다.

'살인하지 말라' 는 윤리규범은 전쟁이나 정당방위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모든 인류, 특히 생명유지를 돕는 직업인인 의사들에게 절대적인 가치다.

살인이 일급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기인한다고 할 때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자살이야말로 인간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비이성적인 자기파괴 행위다.

의사가 환자를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 때 생기는 사회적 문제 --- 안락사의 오, 남용,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 등이 심각하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단축할 수 없다.

5. 결 론 --- 안락사의 기독교적 이해와 대안

세계 각국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엄격하게 제한하는 입장이지만,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엄격한 요건하에 법으로 허용하거나 또는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어도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안락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첫째,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도 죄에 해당하므로, 아무리 환자의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 행하는 자살인 셈이며 정당화 될 수 없다.

둘째, 기독교윤리는 상황윤리나 공리주의와는 달라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악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육체적 고통이 너무 심해 죽음이 유일한 해결인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상황에서 환자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행동 자체는 명백한 살인 행위인 셈이다.


셋째, 안락사가 불치환자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먼저 고통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왜 하나님은 고난(고통)을 허용하시는가?

스프라울은 "왜 나는 그리스도교를 믿는가?(요단출판사)"에서

① 타락 전에는 고통이 없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죄나 고통은 없을 것이다. 결국 고통이란 기본적으론 죄(原罪)와 관계가 있다.

② 그렇지만 각 개인의 고통과 죄가 항상 동일한 정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이유 때문에 고난과 고통이 우리에게 있는 경우도 있다{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요9장), 인간의 성화를 위하는 것(욥23:10) 등이 있을 것이다.}

③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원인을 욥의 경우처럼 스스로는 끝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모든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④고통에 대한 궁극적인 문제는 '왜 우리가 행한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지 않는가?'이다. 우리는 늘 아침잠에서 깬 이후 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멸망시키지 않으셨는가를 의아해 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때,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고 또 없애고자 노력하는 것들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각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 거의 맹목적으로 모든 수단(자살, 적극적 안락사 등)을 동원해서라도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지고선(至高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초월적 삶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넷째,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도 무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러나 도저히 소생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막대한 비용이 더는 인위적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엄격한 요건과 사정하에서는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행위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①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로 죽음이 임박한 경우가 명백하여야 한다.

② 죽음을 무의미하게 연장시키는 생명연장장치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환자가 서면으로 밝혀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수액공급 등의 최소한의 일반적 치료만 하면서 자연의 경과를 밟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의식불명에 빠져 자신의 현재 의사를 밝힐 수 없는 경우에는 환자가 생전에 그같은 의사를 밝혔거나 환자 가족이 다른 불순한 동기없이 환자를 위해 내린 결정인 경우이어야 하고 환자 가족들의 견해가 일치해야 한다.

③ 생명연장장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환자 가족들이나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 든 경제적 부담이 되는 경우이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인명경시 풍조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자칫 인명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약자들 특히, 장애인과 노인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안락사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안락사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로 돌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섯째, 안락사 옹호론과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호스피스'(hospice) ' 제도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호스피스의 정신은 인간 삶의 질을 존중한다. 하지만 안락사와 달리 환자의 죽음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말기환자가 품위를 유지한 채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지 소극적인 치료만 제공한다.

불치의 병으로 인한 임종이 가까워 올수록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이 심해지며,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하여 정신적으로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종교적 소망이 없는 경우엔 죽음에 대해 매우 예민해지기도 한다. 임종을 맞아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일반 병원의 딱딱한 분위기와 생명연장장치 등의 최신식 장비들 보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주고, 통증을 적절히 조절해 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호스피스 치료이다.

호스피스는 모든 환자를 거의 본능적으로 살려내고자 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현실이 호스피스에 대한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인 상황이므로 보다 이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은 안락사에 대한 가치판단을 함에 있어서 세상의 시류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에 터잡아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며, 고통과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짐으로서 안락사의 유혹과 딜레마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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