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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없애면서 자기결정권 외치는 것, 행복한 선택일까요?(2020.12.20)

관리자 | 2020.12.16 17:10 | 조회 1626

생명 없애면서 자기결정권 외치는 것, 행복한 선택일까요?

[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 (6) 생명윤리학자 최진일(마리아) 박사


▲ 평신도 생명윤리학자 최진일 박사는 가톨릭 생명윤리 관점에서 배아 연구,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과 태아, 여성의 존엄과 가정의 의미 등 생명과 가정, 출산이 맞닿은 생명 윤리적 쟁점들을 연구해왔다.



“우리가 언덕 꼭대기에 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꼭대기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은 어렵지 않죠. 이왕 한 발을 뗐는데 주변에서 한 발 더 내디뎌 보라고 합니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한 발 한 발 더 내미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생명윤리학자 최진일(마리아) 박사는 이를 ‘미끄러운 경사길 논변’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진보와 발전에 큰 가치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왜 발전해야 하는지 목적에 대해 성찰을 안 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관이 뿌옇게 흐려지는 ‘회색지대’로 가는 거죠. 불임 부부들이 인공 수정을 할 때 여러 배아를 생성하는데, 배아 세포를 떼어 내 건강한 배아를 찾기 위해 유전자 진단을 합니다. 그런데 그 진단 범위가 점점 확장됩니다. 생명윤리적으로 옳지 않아도 진단하는 범위가 차츰 늘어나는 겁니다.”



자본주의ㆍ물질만능주의가 왜곡한 생명의 가치관

평신도 생명윤리학자 최진일 박사는 가톨릭 생명윤리 관점에서 배아 연구,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과 태아, 여성의 존엄과 가정의 의미 등 생명과 가정, 출산이 맞닿은 생명윤리적 쟁점들을 연구해왔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과 그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밝히면서도, 임부의 권리에 따라 태아의 생명권이 종속될 수 있고, 태아의 성장단계에 따라 국가의 생명보호 정도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결정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줬다. 이후 1년 8개월 동안 여성계와 국회는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싸움으로 끌고 왔다. 그는 올해 서강대 신학연구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학과 철학」에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 연구’ 논문을 기고했다.

“인간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여성들이 자기결정권하에서 태아를 낙태시킬 수 있다고 보는 건 태아를 종속 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기결정권은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합니다. 그래서 타인을 고려하는 성찰적 책임을 지는 도덕적 행위여야 합니다.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면서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것이지 생명을 없애면서 자기결정권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최 박사는 “태아와 산모는 태반을 경계로 두고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체계로 태아는 여성의 몸에서 산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분자 생물학적으로 소통의 주체로 산모와 긴밀하게 소통한다”고 했다. 태아가 임부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입장은 편향적인 시각이라는 것이다. 태아가 생명의 주체로서 임부와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태아는 생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자아실현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 실현을 위해 태아를 걸림돌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자아실현의 의미 자체를 검토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자아실현에 대한 인식이 생명을 짓밟고 약자를 짓밟아 올라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잠식된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태아가 산모에게 직접적인 이득을 주거나, 직접 원했을 때만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사회에서 약자를 바라보는 강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태아와 산모는 의존적인 특별한 관계

이처럼 생명에 대한 근본적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는 것은 시급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이 남녀 간 사랑의 참된 결실의 선물로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없애야 할 짐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을 생성하려고 애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생명에 대해 가진 가치관이 왜곡돼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왜곡된 가치관으로 낙태죄를 합법화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우려가 큽니다. 생명에 대한 가치관 회복이 중요한 시기에요.”

그는 “태아와 산모는 의존적인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산모의 안위와 태아의 안위가 일치한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엄마가 힘들다고 태아의 미래까지 규정지어 놓고 판단하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생명윤리 논쟁에서 많은 분이 인격체의 기준을 존재보다는 능력에 두려고 하죠.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인격체인데, 특정한 능력이 있어야만 인격체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최 박사는 “인간의 존재가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면 인간 생명의 존엄과 권리는 유린당하고, 결국 생명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선교 신학에서 생명윤리학을 공부하기까지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강사이자,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씨는 2013년 로마 교황청립 아포스톨로룸 대학에서 생명윤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앞서 2003년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아일랜드에서 유학했다. 2008년 밀타운대학에서 응용윤리 및 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어 선교 신학 및 인류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그가 생명윤리학으로 방향을 바꾼 건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이자 은사였던 최혜영(성심수녀회 한국관구장) 수녀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로마에서 잠시 귀국했는데 당시 한국은 황우석 박사 논문 사태로 생명윤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을 때였습니다. 최혜영 수녀님은 생명윤리를 공부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생명윤리 공부를 석사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는 박사학위 주제를 ‘착상 전 유전자 진단에 대한 생명윤리학적 연구’를 택했다. 이어 귀국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한 ‘존재론적 인격주의’ 입장에서 생명윤리 분야 연구를 수행했다. ‘부부 일치와 출산의 의도적 분리에 대한 윤리적 고찰’, ‘윤리적 관점에서 본 응급 피임약’, ‘요한 바오로 2세의 관점에서 본 가정의 의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 연구’ 등을 연구 주제로 삼아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해온 그는 최근 제15회 생명의 신비상 인문사회분야에서 장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도 “정진하라는 격려로 상을 받겠다”고 밝혔다.“

▲ 교황청 생명학술원 국제학술대회 때 이동익ㆍ정재우 신부 등 관계자들과 함께한 최진일 박사(왼쪽에서 두 번째). 최진일씨 제공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것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인격체를 규정하려고 하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실현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에 있어요. 수정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인간 존재를 온전하게 보호하고 그 가치를 찾는 데에서 인간의 존엄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최 박사는 물질 만능 시대에 상대화되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가치에 우려를 표하며,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기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존재의 여정을 잘 완성할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 안에서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하고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생명윤리학자로서 ‘뚜벅뚜벅’

그의 계획은 생명윤리학자로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생명을 수호하는 일은 학문적이지만 소명이기도 하다. 생명을 수호하는 것은 이해타산적이거나 명예를 얻거나, 지식 자랑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본질을 바라보는 자세, 그것을 학문으로서 탐구하는 학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생명의 본질과 별개가 아님을 뜻한다.

최 박사는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생명윤리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하며, “생명윤리를 통해 생명문화를 건설하려면 현대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생명문화를 냉철하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생명윤리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 비로소 현실적인 방안과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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