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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낙태 전면 허용’ 판결 아니다

관리자 | 2019.06.24 11:06 | 조회 2008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입법 과제와 관련된 쟁점


▲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형벌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날, 아이들과 여성들이 태아 생명을 수호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2021년 1월 1일이 되면 현행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 형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 개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명시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입법에 대한 공은 국회로 넘어갔고, 여러 차례 토론회가 열리고 있지만, 여성계와 종교계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논란과 입법 과제에 따른 쟁점을 짚어본다.


▨ 자기ㆍ동의낙태죄 형사처벌 존치 여부

국회입법조사처가 5월 22일 토론회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결정에 따른 입법 과제를 발표하면서, “헌재는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김주경 조사관은 “낙태에 관한 기본적 범죄 유형을 형법에서 ‘삭제’할 때 사회적 파장과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낙태죄와 동의 낙태죄를 입법 과정에서 삭제하고, 현행법의 처벌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낙태를 선택할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을 존중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여성이 낙태하지 않을 자기 결정권도 함께 보호받아야 한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국회 토론회를 통해 ‘낙태하지 않을 자기 결정권 보호’를 주장하며, 임신을 유지하려는 여성을 보호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묻지 마 낙태’가 가능한 시기의 결정


지금까지 종교계가 아닌 국회와 여성계 혹은 국회에서 주최한 낙태 관련 토론회에서는 대부분 ‘임부의 요청(사유 불문)에 따른 낙태 시기’를 첫 쟁점으로 다뤘다. 사유 불문하고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을 전면 허용하는 무풍지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으로 보는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태아의 생명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할 수 있는 시기의 결정은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이다. 낙태 시기를 세 시기(마지막 월경 시작일~13주 6일, 14주~27주 6일, 28주~40주)로 구분해, 시기별로 허용 사유를 달리 제한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여성이 낙태로 내몰리게 하는 원인을 해결하고 지원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 주장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 실현을 기본 전제로 삼은 논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주장을 따르면, 태아의 입장에서 모체의 사회ㆍ경제적 형편에 따라 삶과 죽음의 길이 갈릴 수밖에 없다. 상담과 숙려 기간을 통해 여성이 지원받고, 태아를 보호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낙태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태아를 낙태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여성도 보호해야 한다. 이는 입법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가톨릭교회 생명운동가들은 최근 미국에서 도입되고 있는 태아 심장박동법(심장 소리가 들리는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을 눈여겨보고 있다.



▨ 낙태 시술 거부하는 의료인ㆍ의료기관의 법적 존중


산부인과 의사들이 관심을 두는 쟁점이다. 헌재의 결정 후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 시술이 산부인과 의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시술이 된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접을 것이라며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 쟁점 역시 여성계와 종교계의 주장은 맞선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주경 조사관은 “의료인에게 임부를 낙태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후송할 의무를 부여하고,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고시하는 등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낙태를 하지 않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낙태 시술 기관을 안내하거나 알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낙태를 거부하는 의료인이 낙태 시술을 받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후송, 안내해야 한다는 것은 낙태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실현을 위한 권리’, ‘의료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EU 회원국 중 스위스와 노르웨이 등 21개국이 신념에 의한 낙태 시술 거부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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