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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약자 보호의 기본 질서 파괴

관리자 | 2019.04.23 16:09 | 조회 2669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이튿날인 12일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생명윤리연구소에서 만났다. 많은 일간지는 이날 ‘낙태, 죄가 아니다’ ‘낙태, 죄의 굴레를 벗다’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사진은 환호하는 여성들 모습이 실렸다.

“낙태죄는 태아를 보호하려는 법적 조치였습니다. 여성의 도덕성을 판가름하고, 여성을 판단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동복지법이 보호자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아동을 보호하는 조항이듯….”

정 신부는 헌재의 사실상 위헌 결정에 대해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는 기본 질서를 이루는 가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른과 아동을 보면 아동이 더 약자입니다. 아동에 대한 보호가 더 필요하지요. 태아는 이미 어머니 몸속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이지요. 그런데 법적인 보호는 반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 신부는 헌재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로 ‘임신 22주’를 제시한 데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는 모체에 대한 생존 의존도가 높으면(22주 이전) 인간으로서 부족하고, 생존 의존도가 덜 하면(22주 이후) 인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신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 교회는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ㆍ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잉태된 아이가 보호받고, 임신한 여성이 지지받을 수 있는 정책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교회가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그는 “교회가 반성할 게 많지만,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며, 낙태는 태아를 죽게 만드는 행위이며, 낙태는 여성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는 교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 신부는 “모든 사회ㆍ경제적 여건이 갖춰진 상황에서만 생명에 대한 책임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를 인간답게 이뤄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정 신부는 “교회가 할 일은 더 분명해졌다”며 “임신한 모든 여성이 보호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좀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신과 출산은 개인의 일로 볼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은 공동 책임의 영역으로 봐야 합니다. 아기 아버지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정 신부는 “들판의 들꽃도, 반려동물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고, 귀하게 여기는 생태적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에 태아를 제외한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 신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 “낙태는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일반적인 의료행위가 아니라면서, 국가 시스템이 낙태 시술을 보조하는 것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낙태에 대한 법적 상황이 달라지면 가톨릭 병원들은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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