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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생어역수(生魚逆水) - 김대영(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관리자 | 2018.03.27 13:58 | 조회 3363




「장자」에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말이 나온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뜻이다. 죽은 물고기는 결코 물살을 거스를 수 없다. 거대한 고래도 죽으면 물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닐 수밖에 없다. 물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지만 때론 시류에 저항하여 생명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도 있다.

남북이 하나 되어 치르는 평창 올림픽에서도 생존을 위한 북한의 몸짓을 엿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제적인 대북제재를 뚫고 나가기 위해 북한의 김정은은 최고의 예술단과 북한을 대표하는 고령의 정치인과 더불어 친동생까지 보내 출로를 찾고자 애썼다. 과거와 다른 북한의 자세에 우리 쪽 관계자들이 놀랄 정도다. 아무쪼록 북한도 살고 핵무기도 없애는 쪽으로 한반도 정세가 잘 정리되길 바란다.

‘생어역수’를 실감하게 하는 또 다른 일로 여성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들 수 있다. 봉건적인 가부장제에 억눌려 있던 한국의 여성들이 자신들을 속박하던 간통죄를 폐지시키더니 이제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폭력에 대항하는 ‘미투(me too) 운동’도 활발하다. 역시 생명은 묶어놓을 수 없고 오랜 가부장제의 인습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몸짓에서도 살아 있는 물고기의 생명력을 느낀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생어역수’도 보게 한다. 산모의 몸 안에서 숨 쉬는 태아들은 전혀 다른 생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연간 9000만 명의 신생아가 출산되는데 그 수의 절반이 넘는 5000만 명의 태아가 낙태로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최소 신생아 수의 절반 정도가 낙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그들이라도 살려내야만 민족의 존립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태아의 ‘생어역수’이다.

1960년대 100만 명에 이르던 신생아 수가 최근 40만 명으로 크게 줄었으나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청년은 결혼을 포기하고, 여성은 임신을 포기하고, 국가는 미래 정책을 포기하는 세태의 물줄기를 거스르는 단호한 대응책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사욕과 안일 속에서 생명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신앙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절망은 없다. 항상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뚫고 나오는 ‘생어역수’의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수백 년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무소불능의 힘으로 백성을 강압할 때 아무도 진나라의 폭정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가난한 병사 진승(陳勝)이 항거의 깃발을 들자 거대한 반란의 대열이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진승의 부하였던 유방은 새로운 나라의 황제가 되기도 했다.

타고난 부귀도 특별한 재능도 없었던 진승이 죽창과 목검을 들자 천하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호응하게 되었는데, 그 원천은 오직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의 생명력일 따름이다. 우리에게도 ‘잘 살아 보자’는 생명력, 민주화의 생명력, 촛불의 생명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태산과 같이 보이는 강고한 욕망의 덩어리가 한 순간에 흩어지는 것을 여러 번 목도한 우리에게 ‘생어역수’는 자연스럽기만 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의 에너지로 죽음을 넘은 위대한 스승이다. 생명이 꿈틀거리면 모든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흩어진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생명의 몸짓 속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찾아본다. 우리가 생명 안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위 기사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언론사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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