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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10.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 (하)

관리자 | 2018.10.04 14:19 | 조회 2693
제동장치 없는 과학 기술의 발달… ‘생명윤리’로 폭주 막아야

▲ 독일의 한 체외 수정 수술 클리닉에서 현미경을 사용하여 난자에 정자가 미세 주입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연구에는 ‘맞춤형 아기’를 생산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CNS 자료 사진】



과학기술의 발달이 삶의 질을 향상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지나치게 효율성과 경제성에만 관심을 두는 사회는 고통과 희생을 무의미하게 여긴다.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을 돌보는 일을 소모적인 시간으로 여기며,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생명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생명을 계획 가능하고 통제와 지배가 가능한 대상, 물질로 격하시켰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에서 “이제 인간은 탄생과 죽음의 순간에, 생명에 관하여 자기 실존의 참된 의미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능력을 잃었다”고 한탄했다. 

“인간은 오직 ‘행위’에만 관심이 있으며, 모든 종류의 기술을 사용하여 탄생과 죽음을 계획하고 통제하고 지배하기에만 바쁩니다. 탄생과 죽음은 ‘살아 내어야 할’ 최우선적인 체험이 아니라 단순히 ‘소유’하거나 ‘거부’하여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생명의 복음」 22항)



도구화된 생명, 인간의 기능을 계획ㆍ통제하는 인간

지난해 8월, 인간 배아에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고 교정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논란이 됐다. 한국과 미국 공동 연구진이 국제 과학기술지 ‘네이처’에 인간 배아에서 유전병 난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 우리나라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간 배아 연구에 제한이 있어, 이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이 결과를 놓고 국내 과학계는 인간 배아 연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는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곧 생체 실험”이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한국생명윤리학회도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연구는 ‘맞춤형 아기’를 생산할 위험성이 있다”고 반대했다. 

최근 방영한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는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를 보여준다. 남편이 사온 ‘가정부 로봇’ 아니타는 지친 아내, 엄마와는 달리 아침상도 풍성히 차리고, 청소도 잘한다. 진짜 엄마는 로봇으로 대체되는 자신의 삶에 위기를 느낀다. 아니타는 말한다. “내가 당신보다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기억을 잊지 않고 화내지도 않으며 우울해 하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삶을 주도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하는 인공지능 의사, 범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인공지능 판사 등으로 인공지능 영역이 확장될 것으로 예측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의 출현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표현으로 ‘육체는 단순히 기관과 기능과 에너지의 복합체로서 오로지 쾌락과 효율성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사용될 뿐’인 문화를 형성해 낸다. 이 같은 문화 풍조에서는 육체가 타인과 하느님, 세계와 관계를 맺는 표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육체는 단순한 물질로 격하되며, 자기주장과 개인적 욕망과 본능의 이기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생명의 복음」 23항 참조)



과학기술과 생명윤리의 공존, 가능할까? 

그렇다고 소달구지를 끌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명의 복음이 인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생명의 복음」 101항)이듯, 과학 기술의 발달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공동선 증진을 통해 사회 쇄신에 이바지해야 한다. 

김동광(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01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왜 과학이 어떤 영역보다 다른 영역에서 더 잘 작동하거나, 또는 자주 작동하는지 생명·환경·보건·안전·윤리 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간과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설명했다. 

“지금까지 과학 기술의 사회적 연구는 과학기술의 실행, 수행, 과학 지식ㆍ기술ㆍ인공물의 생산 등에 초점을 맞춰온 데 비해, 과학기술의 비실행, 비수행, 비생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과학과 생명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자본의 논리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과학 지식의 생산 양식의 변화는 오늘날 생명에 가해지는 전례 없는 위협과 죽음의 문화의 구조적 원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생명 분야의 과학기술과 생명윤리를 대립 구조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인간 생명을 담보로,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연구는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한 인간의 독립된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2005년부터 생명 가치 증진에 이바지한 학술 연구자에게 생명의 신비상을 시상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 역대 수상자들의 연구 분야를 보면, 과학기술과 생명윤리가 공존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 위 기사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언론사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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